당신의 한표에 아이들의 생명이 달려있습니다

등록 2010.04.30 15:36수정 2010.04.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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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중립적인 행위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분명 가치 지향적인 행위이다. 교육과정 역시 특정 이념과 세계관, 사상, 지식을 담고 있다. 교육 목표라는 것은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전제로 설정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중립적 행위이다'는 논제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중립성은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교실에서 교사가 수업하는 방식에서 요구되는 중립성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전달하지 않은 채 특정 관점만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윤리과 교사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불교에 관한 내용을 무시하거나 감정을 싫어서 전달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사가 특정 정당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는 가르침의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주의해야할 것이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정권으로부터의 중립성이다. 예컨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가르침의 내용이 팍팍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사들이 정권과 상관없이 기존에 합의된 지식과 내용 체계에 대해서 유효하게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 주체들이 정권으로부터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 '교육 자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감이 교과부의 일방적 지시를 받지 않고, 상당한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교육 자치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지금까지 교육감이나 교육위원이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게 했던 이유도 교육의 중립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핵심 도구로서 교육 자치라는 개념은 존재한다. 특히, 지나치게 국가가 교육에 대해서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으며, 중앙집권적 위계 구조가 너무나도 강한 우리 교육계의 모습을 바꾸는 데 교육 자치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헌법상에 보장된 교육 자치의 혜택을 교사나 학부모, 학생이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 혜택은 교육청 관료들이 누리고 있다. 교육청은 일종의 고립된 성과 같다. 교육청은 일반직 공무원과 전문직으로 구성되는데, 학교를 위해 서비스하기보다는 통제를 할 수 있는 감독자, 관리자적 기능이 훨씬 강하다. 장학사 한명이 학교에 오면 청소를 더욱 열심히 하다든지, 당장 보고해야 할 공문 제출 기한을 놓치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교육청의 위상이 학교에 얼마나 큰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이처럼 통제적인 모습의 교육청이 일부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일제시대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관료적 통제의 핵심 고리는 승진 제도이고, 근무평정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교사들이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근무평정을 잘 받아야 한다. 교직원이 80명이라고 가정하면 1등 수는 1명-2명에게 돌아간다. 이 점수를 거의 10년 가까이 잘 받아야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다. 교감은 교장이 평가를 하고, 교장은 교육청이 평가를 한다. 교사, 부장, 교감, 교장이라는 수직적 위계 체제가 존재한다. 여기에 교육청은 장학사, 장학관, 과장, 국장, 교육장, 부교육감, 교육감이라는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성, 대화와 소통, 섬김, 서비스 등의 가치는 실종된다. 명령과 위계, 지시와 복종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런 관료적 구조 속에서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은 상당부분 제약 받을 수 밖에 없다. 교사의 자율성이 없다는 것은 학생의 자율성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가 이렇게 관료주의에 포섭되면서, 지역 사회와 더욱 멀어지게 된다. 학교는 분명 지역 주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운영되지만, 전혀 지역 주민들에게 서비스하지 않는다. 운동장 하나를 빌리는 것,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 학교 교실을 하나 빌리는 것, 학교 주차장을 활용하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들다.

 

  교육자치의 본질은 학교 자치이다. 학교는 그들의 자율성을 가지고 얼마든지 창의적인 교육을 해야 하며, 지역 주민들과 더욱 호흡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이들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아니다. 교장이 학교의 주인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를 해본 사람이라면 학교장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교장 정도 되면 교육청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교장과 교감은 교육청의 관료 라인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다. 모든 것은 교장의 의도 하에 착착 진행된다. 학교운영위원회 조차도 거수기로서 존재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학교 자치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논의와 소통은 먼나라 이야기이다.

 

  학교라는 데가 왜 이렇게 갑갑하고, 변화가 느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관료주의로 답할 수 밖에 없다. 교육청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간선 교육감 선거 체제가 그런 시스템을 유지시켰다. 그동안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들을 중심으로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이른바 간선 체제였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 출신 관료 또는 전문직 출신들을 중심으로 교육감이 배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관료들이 교육감을 옹립했고, 자연스럽게 특정 학맥이 작용했다. 선거이후 전리품처럼 교육장, 장학관, 장학사, 명문고 교장 등의 자리가 결정되었다. 간선 체제에서 제시되었던 공약들을 보면, '화장실 개선 사업' 등 그 생각의 범위가 매우 제한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육감 직선 이후에 변화는 오고 있다. 특히,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경우, 관료출신이 아닌 교수출신으로서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교육감이 갖는 위상과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해서 전국민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당선 이후 나타났던 여러 가지 변화를 놓고 볼 때, 대다수의 후보들도 주목받을 만한 공약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교육감 선거를 제한적 직선 내지는 간선으로 돌리려는 흐름도 일부 있는데 그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행위이다. 그 속내에는 과거의 간선제 하에서 이익을 봤던 세력들의 계산이 숨어 있을 뿐이다.

 

  대규모 유권자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방식은 분명 학벌이라든지 특정 세력의 조직력으로 교육감을 배출할 가능성을 낮추게 된다. 다만, 교육감 후보들은 나름 진보, 중도,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이념적 성향은 드러나게 된다. 지난번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후보들이 파란색 잠바를 입고 돌아다녔다. 사실, 교육감 후보는 정당 후보와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후보들은 한나라당의 가치를 어느 정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낸 것이다.

 

  만약 유권자들만 깨어 있다면, 사실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감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후보는 경쟁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제고사를 통해서 각 학교의 학력을 공개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와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다. 반면, 어떤 후보는 협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줄 세우기식 일제고사는 바람직하지 않고, 표본 조사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통한 진단을 하고, 부족한 학생을 도와주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입장이 존재할 것이다.

 

  평준화는 어떠할까? 어떤 후보는 요즈음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서 시험을 통해서 개인과 학교 간 경쟁을 촉발하자고 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학생들에게 입시 고통을 더 이상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평준화를 더욱 확대 적용하자고 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교장 공모제를 더욱 확대 도입해서 유능한 교사들이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교장 공모제는 기존의 승진 체계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방식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학생들의 인권을 더욱 보장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두발자유화, 체벌 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을 약속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신중론을 펼 것이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후보를 뽑을 것인가는 분명 독자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가? 둘째,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복지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가? 셋째, 기존의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있는 학교 개조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는가? 넷째, 학교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다섯째, 교육청 관료주의를 깰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인가? 여섯째, 실현 가능한 공약인가?

 

  서울교육감의 경우 6조원, 경기교육감의 경우 8조원의 예산 편성권을 갖는다. 아울러, 교육청 관료들의 인사권을 갖게 된다. 이는 곧 교장과 교감들의 지향점을 새롭게 설정함을 의미한다. 예컨대, 지역 교육청 교육장을 공모제 형태로 뽑는다고 가정해보자. 교육청 관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그 여파는 일선학교 교장과 교감에게 미치게 된다. 알게 모르게 교육계에는 크고 작은 비리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지점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서 이런 비리는 얼마든지 쉽게 척결할 수 있다.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것 역시 교육감의 의지에 달려있다.

 

  한국 교육에 대해서 절망하는 이들이라면, 교육감 투표와 교육위원 투표에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 2007년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보니, 우리나라 10대 자살자는 300명을 넘어섰다. 많은 부모들이 사교육비 때문에 자신의 노후 대비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수능 끝나면 잊어버릴 지식에 많은 교사들과 학생들이 매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는 너무나 보잘것 없다.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 대한민국 전체가 교육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교육을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그 첫걸음으로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된 교육감을 뽑는 것이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될 후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될 후보를 고르는 것이다. 예컨대, 특정 학교를 세워서 우리 집 아파트 값이 오르냐 안오르느냐는 식의 계급적 판단이 아닌, '우리 교육 이래서는 안된다'고 평소에 말하던 양심의 소리를 듣고 투표해야 한다. 당신의 한 표가 2011년에 통계청이 발표할 10대 자살자 수를 0명으로 만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복음과 상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30 15:3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복음과 상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육감 #김상곤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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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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