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노교사의 충고 "조전혁 의원, 이건 아니다"

[인터뷰] 교원노조 활동 50년 만에 무죄 판결 받은 이목 선생

등록 2010.05.17 11:47수정 2010.05.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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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 선생 . ⓒ 임정훈

"그러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지난 4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특수반국가행위'로 기소돼 징역 10년형을 선고(1961년)받았던 이목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주역들이 제정한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에 의해 설치된 혁명재판소의 선고로 5년의 징역살이를 한 지 50여 년 만의 일이었다.

4·19혁명으로 조성된 새로운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 결성된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 1960년 당시 교육연감에 따르면 총교원수 8만3천여 명 중 1만8천여 명이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에 가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참여했던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4만 명이 넘는 인원이 가입했다고 하니 상당히 많은 교사들이 이에 동참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961년 당시 이목 선생은 대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 사무국장의 일을 맡고 있었다. 4·19혁명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상황에서 교원들의 자주적 조직인 교원노조를 결성해 막 활동을 시작하려던 무렵, 5·16 군사쿠데타 세력의 눈 밖에 난 교원노조활동으로 이목 선생은 '특수범죄처벌에 관한특별법' 위반죄로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5·16 직후인 1961년 5월 18일 오전,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대구경찰서 정보과 형사 2명에게 연행돼 160일간 불법 구금을 당한 직후였다.

"이승만 하야로 새 세상이 온다니 모두 얼마나 흥분했겠나. 당시만 해도 선생이 어떻게 노동자냐 이런 분위기가 우세적인 상황이었고 노동자를 천시하는 의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대한교육연합회('한국교총'의 전신) 말고는 다른 단체에 가입 못하도록 했다.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단체는 만들려고 알아보니 노동조합법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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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 선생 . ⓒ 임정훈


지난 4일, 전교조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선생은 정갈한 양복에 중절모까지 챙겨 온 '신사'였다. 1922년에 나셨으니 올해 우리 나이로 89세인데도 당시의 상황과 사람들의 이름을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를 만들게 된 이유를 말하면서 선생은 "4·19 당시 거리로 나섰던 제자들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라는 말로 제자들도 챙겼다.


"대구에서 2·28(대구학생민주의거-3·15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됨)이 안 일어났으면 모르는데 대구에서 일어났고 내가 있던 학교의 아이들이 가장 열렬히 뛰어들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경북대 사대부고에 '이행오'라는 학생이 있었다. 2학년 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밖으로 못 나가게 하니까 나를 보더니 '선생님, 나 좀 봅시다' 했다. 좋은 음성이 아니더라.

그래서 인기척 뜸한 데로 갔더니 이 제자가 손을 옆구리에 끼고 '선생님, 저희를 왜 말립니까. 수업 시간에는 민족과 정의를 위해서는 싸워야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왜 막습니까' 이랬다. 가르친 제자한테 힐난 받으니 무슨 할 말 있겠나. '우리는 비겁하지만 너희는 용감해야지'. 그렇게 말하고는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4·19 당시를 회상하는 선생의 마른 눈매가 잠깐 젖어들었다. "우리는 4·19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4·19혁명 과업은 우리(교사)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게 선생의 말이다. 제자들에게 부끄러운 선생이 되지 않기 위해 교원노조를 만들게 됐다는 의미다.

당시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선생은 "북괴의 음계수행에 이익이 된다는 사정을 숙지하면서 반공임시특별법안과 데모규제법안에 대한 비판문을 산하 교원노조가 도연합회에 배부케 하는" 등의 일을 한 것으로 있다. 당연히 상소했으나 이는 기각됐고 10년형이 확정돼 1965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될 때까지 5년여를 복역하게 된 것이다. 선생은 지난해 말 재심을 청구했고 대구지법은 이것을 이유있다고 받아들였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법률로 제정됐다. 그 결과 알아보니 범죄 사실에 해당 안 되는 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과거사위에서 조사하니 그런 것이다. 과거사위에서 정부에 권고했다. '국가 권력이 이렇게 나쁜 행위를 저질렀으니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게 민주주의다'라고. 그래서 내가 재심을 신청했다"는 것이 50여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게 된 까닭이다.

선생의 말은 이어졌다.

"재심 심판하는 검사, 판사들이 30~40대들이더라. 50여 년 전의 일이니 보지도 겪지도 않은 사건을 재판하는 것이다. 재심받으면서 50년 동안 쌓인 회한이 오죽했겠나. 마지막 선고할 때 판사가 내게 무죄를 선언하고 '할 말 없습니까' 묻는데 가슴이 먹먹해서 '할 말 없습니다' 했다. 그런데 법정을 나오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다른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 젊은 검사·판사들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싶다는 말을 하지 못 한 것이다. 그래서 주심 판사에게 편지를 써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선생의 가슴에 50여 년 전의 억울함이 얼마나 큰 상처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알고도 남는 말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한다는 평생의 신념은 손자뻘의 판·검사들에 대한 애정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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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목 선생은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종이에 직접 써온 걸 읽어내려갔다. ⓒ 임정훈


그러면서 선생은 지난 1989년 30여 년의 교원 운동을 정리해 직접 저술한 <한국교원노동조합운동사>의 한 부분을 펼쳐 손으로 가리켰다. 교원노조운동 태동 무렵인 1960년 대구시 교원조합 결성 준비위원으로 위촉받아 쓴 '전국 교원 동지의 분기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격문이었다.

"격문은 지금 읽어도 피가 끓는다"며 글자를 하나씩 짚어가며 돋보기 너머로 선생은 낭독을 해 나갔다. 미수(米壽)의 연세인데도 음성은 맑고 카랑카랑했다.

이목 선생은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등 교원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게 아니다. 이승만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국회의원이 어떻게 법에 저항하나? 차라리 항고를 하지. 법을 만드는 이가 법의 심판을 안 따르면 그에게 어찌 법을 맡길까. 우스운 이야기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종이에 써온 걸 읽어 내려갔다. "이 땅에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이 꽃피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교직원들의 운동이 우리 사회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단, 역사의 전진은 자연의 시혜물이 아니고 반드시 그에 따른 희생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선생은 거듭거듭 "민주주의는 그냥 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이다. 희생이 따른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는 언제나 전진한다. 진실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자유와 평등·인권 이것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가지 그 반대로 흐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잠시 역류할 수 있지만 오래 못 간다. 선생님들이 역사가 전진한다는 신념을 안고 활동해주면 좋겠다"는 것이 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는 후배 교사들에게 백발의 선배가 당부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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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 선생 이목 선생은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종이에 써온 걸 읽어내려갔다. “이 땅에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이 꽃피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교직원들의 운동이 우리 사회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단, 역사의 전진은 자연의 시혜물이 아니고 반드시 그에 따른 희생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 임정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 실린 것을 고치고 다듬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 실린 것을 고치고 다듬은 것입니다.
#교원노조 #이목 #419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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