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나라들, '21세기 사회주의' 이렇게 실현하다

중남미 민주주의 실현의 길, 제헌의회와 국유화

등록 2010.05.21 17:22수정 2010.05.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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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정권의 실정이 심각한 가운데 다시금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저 한줌의 패악질 패거리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국민 누구도 '민주주의'가 한층 더 발전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강연을 할 때 가끔 청중들에게 '민주주의가 뭘까요?'라는 약간은 짓궂은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을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민(민중)이 주인 되는 것이 민주주의지요'라는 취지의 정확한 답을 한다. 바로 그 순간 필자는 더욱 짓궂은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다.

 

'국민(민중)이 주인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이죠?'

 

이 질문에 도달하면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왜냐면, 대부분 여기까지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학자들이 얘기하는 다당제,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국민투표, 지방자치 같은 용어들을 언급하면서 민주주의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벌써 알고 있다. 그런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식의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국민이 뽑은 머슴 이명박은 대다수 주인들(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면서 패악질의 벌이고 있지만, 주인들은 그저 머슴이 휘두르는 방패에 쳐 맞고 닭장차 투어를 하면서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주의', 그러니까 국민(민중)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사회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얘기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 사회의 경우 크게 노예와 노예주인의 두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연히 그 사회의 주인은 노예주인일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생산수단(경제권력)과 국가주권(정치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주들은 토지나 노예를 자신이 직접 소유하면서 그것들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경제권력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예제 사회인 로마에서 국가 원로원 구성원이나 집정관들, 그러니까 국가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 역시 노예주들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틀어쥐고 사회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누가 그 사회의 주인일 수 있겠나.

 

봉건제 사회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봉건제 사회의 지주계급과 농노계급 중에서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틀어쥔 계급은 지주계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의 주인은 지주계급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떨까?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규모의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재벌들이다. 그리고 국가권력기관들은 대부분 이런 재벌들과 직간접적으로 선이 닿아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296명 중에서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6명뿐이고 나머지 290명이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정치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은 소수의 자본가들이다. 그들이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국민(민중)이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답이 나와 있지 않나. 생산수단(경제권력)과 국가주권(정치권력)을 틀어쥐는 세력이 그 사회의 주인이므로, 민중들이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틀어쥐어야 진짜 '민주주의', 국민(민중)의 민주주의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만의 것이라 우기던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민중의 것으로 바꿔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선거 등의 과정을 통해 민중운동세력이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한 방향이라면, 또 하나의 방향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손아귀에 있는 생산수단을 민중의 소유로 바꿔내는 과정일 것이다. 중남미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제헌의회'와 '국유화'는 중남미의 민중들이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어떻게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국가주권(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제헌의회'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 ⓒ venezuelanalysis.com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 ⓒ venezuelanalysis.com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이미 외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듯이 중남미에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하는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중남미를 단결시키고 자본주의를 넘어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정치적 목표에서만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이라는 목표를 추진하는 방법에서도 매우 주목할 만한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헌의회 소집'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주요한 공약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내걸었다. 그리고, 당선되자마자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사업 또한 제헌의회 소집이다. 왜 차베스, 모랄레스, 코레아 이 세명의 대통령은 제헌의회 소집에 모든 힘을 쏟은 것일까? 제헌의회 소집을 가장 먼저 추진한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우고 차베스는 1999년 취임 후 곧바로 제헌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6개월간의 절차에 들어간다. 제헌의회의 임무는 기존의 헌법을 대체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역할은 기존의 의회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제헌의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국민투표를 통해 제헌의회 소집을 승인받은 차베스 정권은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전국적 선거를 실시한다. 131명을 선출하는 이 선거에서 차베스 진영은 의석수의 대부분을 석권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의회는 차베스 진영의 혁명적 사상을 담은 새로운 헌법안을 만들고 국민투표를 통해 신헌법을 승인받았다.

 

새로운 헌법이 발효되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한 민주적 체계를 세우는 의미를 가진다.  남한의 사례를 보면 개혁적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개정조차 안 되고 있는 현실이나, 개혁적 법안들이 기득권 세력의 방해 때문에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모습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1999년 제헌의회를 소집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였다. 헌법 자체를 새로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낡은 헌법과 법률들은 한꺼번에 폐기되었다. 제헌의회 의원 대부분이 진보적 인사들로 구성되었고, 제헌의회를 통해 새로 제정된 '볼리바리안 헌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담게 되었다. 이렇게 제정된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헌법의 기초위에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률들이 제정되었다.

 

둘째, 근본적인 정치권력의 교체가 가능한 국면을 만든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진영은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국가기구를 한꺼번에 접수하고 세력관계를 단번에 역전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구헌법이 폐기되고 신헌법이 발효되는 순간 차베스는 대통령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변경된다. 왜냐면, 차베스는 구헌법을 근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차베스가 대통령일 법적 근거가 없다. 그것은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의회도 해산된다. 사법부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국가기구는 구헌법의 폐기와 함께 해체된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서 새로운 국가기구를 건설한다. 차베스 진영은 새로운 헌법에 의거해서 2000년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 등 모든 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렀으며, 사법부도 새로 구성을 하게 되었다. 차베스 진영이 모든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고 차베스는 다시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국회의원 의석수의 과반을 차베스 진영에서 장악하게 되었다.

 

이처럼 근본적인 정치개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제헌의회 소집의 진정한 위력이라 할 수 있다. 1999년에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기존 의회의 세력분포는 보수세력이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서 의회 및 사법부 등의 국가기구를 접수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기존의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는 1970년대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 승리로 행정부는 장악했지만, 보수적 의회에 발목 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제헌의회에 대한 고민이 나오게 되었다. 차베스는 1992년 자신이 만든 군부 내 혁명조직 MBR-200을 통해 좌익 쿠데타를 일으킬 때도 제헌의회를 소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쿠데타는 실패하고 감옥에 갇혔지만, 감옥에서 학습하고 연구하면서 선거참여를 통한 제헌의회 전술을 준비하게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제헌의회 소집의 핵심은 대통령 선거 승리의 공간을 이용해 전면적 사회개조를 수행하는 혁명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있다. 제헌의회 소집은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이다.

 

생산수단(경제권력) 획득을 위한 '국유화'

 

2004년 8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소환투표를 앞두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2003년 4월에 매우 중요한 일련의 '미션(Mission)'들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 미션 메르깔, 미션 로빈슨, 미션 수크레 등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들은 빈민가에서 병원을 개설해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고, 문맹을 퇴치하고,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중등 및 고등 교육 및 대학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시중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빈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제공한다. 각 미션들은 대중들로부터 열렬하게 환영받았으며 혁명 과정에 새로운 동조자들을 얻었다. 이러한 미션들을 통해 차베스는 2004년 8월의 소환투표에서 200만표 차이의 압도적인 승리한다.

 

이런 미션들이 가능했던 것은, 형식적으로는 국영회사이지만 실상은 미제국주의 자본가들과 국내 과두지배세력의 배만 불리던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의 부패한 이사진을 몰아내고 진정한 국유화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삼성과 현대를 합친 것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PDVSA에 대한 민중의 통제를 강화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재원들을 민중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환투표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차베스 대통령은 2005년 5월 1일 노동절 기념식에서 놀라운 선언을 하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노동절 집회에 모인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향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 및 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가 강화되고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업들이 속속들이 국유화되고 있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등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나라들에서는 자원 및 핵심산업의 국유화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되고 있다.

 

이렇듯 국유화 과정을 통해서 중남미의 사회주의 정부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소수의 기득권 층에서 민중의 품안으로 옮겨오고 있다. 국유화를 통해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 이전에는 개인의 소유였던 생산수단이 국가의 소유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 어느 자본가가 자신이 소유하던 생산수단을 국가에게 내주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가 국가에 생산수단을 내어주는 국유화가 가능한 이유는 국가라는 기구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에 따라 집행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과 물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주권(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국유화' 조치를 취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헌의화'와 '국유화'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패키지 정책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민족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5.21 17:2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민족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헌의회 #국유화 #중남미 #21세기 사회주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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