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마다 다른 삶 다른 이야기

[골목길 사진찍기 7] 빨래집게에 깃든 손길 읽어내기

등록 2010.05.22 12:58수정 2010.05.2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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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오동꽃과 오동꽃을 줍는 아이. ⓒ 최종규

바닥에 떨어진 오동꽃과 오동꽃을 줍는 아이. ⓒ 최종규

 

사람들이 저마다 살고 있는 동네가 다르니, 다 다른 동네에 다 다른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언뜻 스치는 눈길로는 다 똑같아 보일 골목길이라 할 수 있으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골목길이며, 모두 다른 사람들 삶터입니다.

 

모두 다른 사람들 삶터이기에 모두 다르면서 모두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찾거나 느끼며 나눌 수 있는 삶터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모두 다른 이야기를 느끼거나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날마다 찾아다녀도 날마다 새로우며 즐거운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동네에서 서른 해 쉰 해 일흔 해를 살아가고 있는 분들부터 날마다 새로운 삶을 꾸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엮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하루 햇볕과 오늘 하루 햇볕이 같지 않습니다. 어제 하루 밥상과 오늘 하루 밥상이 같지 않습니다. 어제 하루 구름하고 오늘 하루 구름이 같을 수 없습니다. 어제 하루 마주친 사람하고 오늘 하루 마주치는 사람이 같을 수 없어요. 톡톡 튈 모습 하나를 바란다면 나날이 부대끼는 삶자락에서는 그리 눈길을 끌 만한 모습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곱게 이어지는 흐름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둘레에서 우리 스스로한테 기쁘며 즐거울 좋은 사진감을 넉넉히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내 살붙이와 내 삶자락이 얼마나 기쁘며 즐거운 사진감인가를 찾아내고 느끼며 신나게 사진삶을 일굴 수 있습니다. 내 이웃과 동무야말로 얼마나 멋지며 고운가를 새삼스레 밝히고 받아들이며 반갑게 사진삶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 가고 티벳에 가야 아름다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도에서 찍는 사진이 무엇이며, 우리가 티벳에서 무슨 넋을 사진으로 담느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디에서 무슨 장비로 찍느냐는 하나도 돌아볼 대목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떠한 넋으로 담고 싶은가 하는 대목을 깊이 되새길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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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31. 인천 동구 송현1동. 2010.5.16.17:16 + F8, 1/100초

밝은 햇살 내리비치는 때에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빨래집게가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상큼하다고 느낍니다. 뉘엿뉘엿 햇살이 기우는 때에는 가을이든 봄이든 빨래집게가 잔뜩 걸려 있는 빨래줄이 고즈넉하다고 느낍니다. 봄꽃이 지면서 푸른 잎사귀가 싱싱함을 더하는 날, 지난 겨우내 물고기를 잔뜩 말리고 있던 빨래집게가 푹 쉬는 모습을 올려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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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32. 인천 중구 용동. 2010.5.16.13:30 + F16, 1/100초

모든 빨래는 어떤 손길을 거쳐 어떤 햇볕과 바람을 먹으며 마르는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시골집에서 산과 들판을 바라보며 고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르는 빨래 한 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풋풋하며 맑습니다. 도시에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먹어야 할 빨래일 텐데, 이 빨래 한 점한테 시멘트 아닌 나무내음을 선사하고 아스팔트 아닌 꽃내음을 베풀려는 분들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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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33. 인천 중구 경동. 2010.5.16.13:26 + F10, 1/80초

비어 있는 집은 쓸쓸하다고 합니다. 예쁘고 그윽한 집 한 채 버려지는 일은 몹시 안타깝습니다. 살짝 손질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살기 좋은 보금자리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비어 있는 집에는 사람만 빌 뿐, 온갖 풀과 나무가 하나둘 씨앗을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새 집식구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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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34. 인천 중구 답동. 2010.5.17.13:57 + F13, 1/125초

어른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일은 아이들한테 그다지 도움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삶을 바로 오늘부터 새삼스레 꾸리며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합니다. 추억이 깃든 얼음과자 장수가 아니라, 아이들 더위를 씻어 주는 반가운 얼음과자 장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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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35. 인천 중구 내동. 2010.5.17.14:17 + F18, 1/80초

키가 큰 어른 눈높이로 골목에서 바라보더라도 골목집 한 채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읽을 수 없습니다. 길가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보일 뿐 아니라 다 똑같아 보일 껍데기 허름할 집일는지 모르나, 속내를 살짝 들여다보면 더없이 곱고 멋지게 돌보고 있는 좋은 살림살이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2 12:5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사진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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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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