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녹아드는 삶과 사진으로

[골목길 사진찍기 8] 살짝 열린 대문 틈으로

등록 2010.05.23 11:15수정 2010.05.23 11:1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햇살이 알맞게 스며들며 알맞게 따스하고 조용한 골목동네에서는 따스한 느낌 그대로 사진에 담으면서 즐겁습니다. ⓒ 최종규

햇살이 알맞게 스며들며 알맞게 따스하고 조용한 골목동네에서는 따스한 느낌 그대로 사진에 담으면서 즐겁습니다. ⓒ 최종규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면서 사진도 함께 찍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진찍기를 놓고 따로 어떤 갈래나눔이 없습니다만, 저는 이러한 사진찍기를 '삶사진'이라 일컫습니다. 살아가며 찍는 사진이기에 말 그대로 '삶사진'입니다.

 

옆지기하고 혼인하고 난 다음 옆지기 어릴 적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제 막 스물두 달째 살고 있는 우리 집 아이 나이였을 옆지기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난날 가난한 골목동네 사람들 삶과 삶터란 모두 이러했음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가난하며 수수하고 스스럼없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란 거의 없습니다. 무언가 더 잘나 보이거나 나아 보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합니다. 사진기 앞에서는 더 예쁜 옷을 차려입는다든지 더 그럴싸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 듯 잘못 생각합니다.

 

나중에까지 식구들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진이란, 따로 꾸미지 않고 찍는 사진 한 장입니다. 살아가는 결 그대로 담는 사진이 식구들이며 살붙이들이며 오래오래 좋아하고 즐기는 사진입니다.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을 통틀어 숱한 사진쟁이들이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이야기를 억지로 짜내거나 맞추는' 데에 있습니다. 사진쟁이가 바라보며 담는 사진이야기란 다름아닌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 삶'이어야 하고, 누구보다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 스스로 당신 삶을 즐거이 얘기하며 돌아볼' 사진으로 찍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진찍기를 할 수 있으면 굳이 다큐멘터리이니 무어니 하는 이름이 없어도 살가우며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무슨무슨 상을 못 받거나 어떤어떤 이름값을 얻지 못할지라도, 사진을 찍는 이하고 사진에 찍힌 이하고 웃고 울며 두고두고 나눌 만한 사진이야기를 엮습니다.

 

좀 흔들린 사진이면 어떻고, 살짝 틀이 엇나간 사진이면 어떻습니까. 사진이란 오늘 바로 이때 이곳에서 함께 살을 부비며 복닥이는 삶자락을 알맞게 잡아채어 오랜 흐름과 결을 바탕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도록 이끄는 예술입니다. 사진이 예술이라 한다면 예술답게 바라보고 익히며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사진기를 들고 돈벌이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이 예술하고 동떨어집니다. 돈벌이는 돈벌이이지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을 예술 그대로 즐기면서 이러한 예술을 하는 가운데 저절로 돈이 따라오도록 사진을 할 수 있는 마음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그릇이 안 된 채 돈벌이를 한다든지, 마음그릇을 채우지 않았으면서 섣불리 '멋진 골목 풍경'을 찍겠다고 나선다면 겉치레 사진조차 찍지 못합니다.

 

a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36. 인천 중구 송학동3가. 2010.5.21.13:39 + F14, 1/80초

햇볕이 몹시 따사로운 날 아이하고 둘이서 골목마실을 합니다. 홀로 골목마실을 할 때하고 아이하고 골목마실을 할 때에는 다릅니다. 아이 걸음에 맞추고 아이 눈높이에 따라 동네를 다시금 살피고 새롭게 둘러보면서, 어른 눈높이와 어른 발걸음으로는 지나쳤을 법한 골목 터전을 차근차근 되새깁니다. 무지개문(홍예문) 위쪽 한켠에 동네사람이 일군 텃밭에서 다리쉼을 합니다.

 

a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37. 인천 중구 송월동3가. 2010.5.21.14:10 + F16, 1/100초

지난가을부터 동네 우물자리에 쇠가시그물이 쳐졌습니다. 지난여름께 이 동네 우물자리 무자위에 어떤 아이들이 수정액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낙서를 하얗게 발라 놓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어른들부터 산이며 문화재이며 갖가지 낙서를 아로새기고 있으니, 예전 모습 고스란히 남은 동네 우물이라 할지라도 아이들한테는 낙서거리일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은 이 우물자리를 문화재로 삼기보다는 아이들이 장난질 못하도록 막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입니다.

 

a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38. 인천 중구 송월동1가. 2010.5.21.14:18 + F16, 1/100초

꽃다지가 고개를 내미는 나즈막한 골목집 옥상마당 난간을 올려다봅니다.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찍느라 셔터빠르기를 높입니다. 홀몸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조리개값은 무한대로 열고 셔터빠르기를 좀더 낮추었을 텐데, 어떻게 찍든 밝은 햇살이 스며드는 골목집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이 동네에는 2층집조차 없이 모조리 1층집이라 서로서로 밝고 맑고 따순 햇볕을 골고루 나누어 받습니다.

 

a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39. 인천 중구 송월동1가. 2010.5.21.14:24 + F16, 1/100초

예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예쁜 매무새와 마음을 선물받습니다. 저절로 예쁜 골목사람이 되고 시나브로 예쁜 눈길을 트며 사진 한 장마다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스며 놓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퍽 어린 아이는 자전거에 달린 줄을 끌어 살짝 비알진 골목 위쪽으로 올라선 다음 아래쪽으로 자전거를 달리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우리 아이도 머잖아 이 아이마냥 스스로 자전거를 끌고 다니면서 즐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a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40. 인천 중구 송월동1가. 2010.5.21.14:20 + F11, 1/80초

추위가 모두 물러선 5월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는 골목집 대문이 활짝 열리거나 살짝 열린 모습을 어디에서나 찾아봅니다. 이렇게 골목집 대문이 어느 만큼 열려 있는 동안에는 천천히 골목을 거닐며 골목집 안살림을 살며시 엿봅니다. 골목길에 꽃그릇을 내어놓거나 골목 한켠 땅을 파서 나무를 심는 집이면 집 안쪽에도 어김없이 꽃잔치를 이루어 놓기 마련입니다. 집안만 예쁘장하게 꾸미는 집이란 없고, 집밖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집이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23 11:15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사진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