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플 때 읽는 책

[책이 있는 삶 137] 김예슬 님과 고집장이 동생

등록 2010.05.29 18:40수정 2010.05.2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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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김예슬 님과 고집장이 동생

무슨 책을 읽어야 내 넋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려야 내 얼을 곱게 여밀 수 있는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운 목숨 하나 선물받아 이어가는 누리에서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보듬느냐는, 내가 품은 꿈이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매무새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거스른 채 '고졸자'가 되겠다고 외친 김예슬 님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2010)라는 작은 책을 써냈습니다. 대자보 하나 쓴 다음 대학교 앞문에서 한 시간 남짓 서 있으며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대학생들과 대학생이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고졸자로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얼마 나누기 힘들었을 테지요. 김예슬 님 당신 스스로 어줍잖은 몸부림이 아니요 뽐내는 몸짓이 아님을 밝히려 한다면, 이렇게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힌 책 하나를 써내야 했을 테지요.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58∼59쪽)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김예슬 님이 작은 책 하나에 적바림한 이야기는 김예슬 님 당신이 잘나서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한편, 당신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익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알면서 아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야기요, 알고 있기에 등돌리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옳은 길로 안 가고 있는 우리들이요, 알고 있기 때문에 굶어죽을 수 없다고 여기는 우리들입니다.

석유가 펑펑 남아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석유 걱정을 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석유가 바닥나면 다른 뭔가가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자가용 한 대 장만하는 값이란 우리 삶을 얼마나 빛내거나 돌볼 수 있는 돈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차 한 대 뽑아 굴릴 만한 돈으로 책을 사읽는다거나 힘든 이웃을 돕는다든가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할 돈으로 영화를 찾아 본다든지 어려운 동무를 거든다든가 하는 사람 또한 만나지 못합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는 길을 살피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며 알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길을 찾지 않는 요즈음 우리들입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동서문화사,1982)이라는 살가운 어린이문학이 지난 2007년에 <못 말리는 내 동생>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고집 잘 부리는 어린 동생은 이웃집 할매가 뜨개질을 한번 배워 보라는 말에 "배우고 싶지 않아요" 하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웃집 할매는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단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하며 따스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할매 말씀을 듣고 난 고집장이 여동생은 이내 뜨개질을 배웁니다. 한동안 몹시 얌전하고 착하고 조용히 누군가한테 선물할 뜨개질을 합니다. 돈과 앎과 이름값이 아닌 땀과 손길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익힙니다. 이 고집장이 여동생은 앞으로 더는 고집장이에 머물 까닭이 없습니다.

 ㄴ. 아이가 아플 때 읽는 책


아이가 아플 때에 애 엄마는 아이 곁을 지킵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아이 목숨이 크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픈데 다른 무슨 일을 하며, 다른 어떤 곳에 눈을 두겠습니까. 그런데 이때에 여느 애 아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애 아빠도 온마음을 아픈 아이한테 쏟을 수 있을는지요.

하루이틀 새로워지는 우리 터전에서, 아이가 아플 때에 아이 곁을 지키지 않거나 지키지 못하는 애 엄마가 늘어납니다. 그러면 아픈 아이 곁을 내처 지키며 돌보는 애 아빠는 조금씩 늘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가씨들이나 젊은 애 엄마는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청소하기 같은 밑살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요즈음 젊은 사내들이나 애 아빠는 집살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데, 옆에서 재미나다는 책을 읽는다든지 신난다는 연속극을 본다든지 하는 어버이가 있다면, 이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기쁨을 찾고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돌볼 줄 모를밖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 똥오줌을 스스럼없이 치우고 이 손으로 거리낌없이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이이는 어버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이란 이름 또한 알맞지 않습니다.

지난주부터 우리 집 아이가 아픕니다. 그러께에 그러께를 더한 날부터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옆지기는 퍽 예전부터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애 아빠 된 저는 바깥일 때문에 아픈 애를 놓고 움직입니다. 집에서 애 엄마가 몇 시간쯤 더 애써 주기를 바라면서 혼자 바깥일을 봅니다.

집살림이며 돈벌이 때문에 아픈 옆지기한테 살가이 마음 쏟지 못하며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제가 읽은 훌륭하다거나 거룩하다거나 좋다거나 곱다거나 하는 책은 무슨 쓸모가 있을는지 되새깁니다. 성경을 읽어도 성경 말씀이 좋다고만 할 뿐 성경 말씀처럼 살아내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옳고 바르며 고운 삶을 살피며, 옳고 바르며 고운 길을 걷는 정치꾼한테 한 표를 선사하는 사람이란 뜻밖에 퍽 드뭅니다.

애 아빠로서 아픈 아이 곁을 내내 지키지 못한다면 아이 앞에서 들 얼굴이 없습니다. 옆지기로서 아픈 애 엄마 둘레를 언제나 지키지 못한다면 애 엄마 앞에서 들 낯짝이 없습니다. 다른 남자가 어떠하다느니, 다른 집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부질없는 핑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엉성궂거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에 빠져 있든, 좋은 책을 좀처럼 알아보지 못하고 있든, 나는 나부터 내 삶을 옳고 바르고 곱고 착하고 참되어 추스르고 있지 못하는 슬픔을 눈여겨보면서 아파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나한테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할까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부터 내 삶을 참된 맑음과 착한 믿음과 고운 사랑으로 빚고 있지 못하다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이들은 온갖 모습으로 신나게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에 나오는 끔찍한 짓을 저지를 발판을 얻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책읽기 #삶읽기 #책이 있는 삶 #김예슬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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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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