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경제적 동물이 아니다

[가정경제 119] 이미 많은 것을 가진 당신 더 이상 안 사도 된다

등록 2010.06.14 16:23수정 2010.06.1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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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쾌락 때문에 합리성을 잊어 버리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유통구조도 큰 변화를 겪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동네슈퍼와 시장이 아닌 마트 또는 복합쇼핑몰, 백화점이 우리 생활 반경 안에 들어왔다. 여기에 가정마다 차를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트나 백화점을 찾는 쇼핑이 주말의 통과의례처럼 굳어졌다.

"바로 그 순간! 내 손가락이 반드르르하고 빳빳한 새 쇼핑백의 손잡이를 감싸 잡는,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온갖 찬란한 새 물건들이 당신의 것이 되는 바로 그 찰나의 기분이 어떠냐? 며칠을 쫄쫄 굶다가 버터를 바른 따끈한 토스트를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기분 같다. 자고 일어나서 그날이 주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기분 같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쾌락이다."

<쇼퍼홀릭>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세일 간판을 보고 새 스카프를 샀을 때 기분을 묘사한 대목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맘에 드는 물건을 그것도 세일로 사서 그 쇼핑백을 집어 들었을 때의 만족감은 누구나 다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TV 광고 속 사람들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한다. 드라마에서는 "기분전환으로 우리 쇼핑하러 갈까?"라며 백화점을 순례하고 역시나 색색의 쇼핑백을 잔뜩 들고 집에 돌아온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보다는 "아, 나도 저렇게 사고 싶은 것 거리낌 없이 사 봤으면 좋겠다"라는 부러움이 차 오른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적인 전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제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를 대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개념이기도 하다. "경제적 의사결정" 능력이라 함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지향하며 이것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쇼핑이 주는 이 순간의 쾌락으로 인해 인간의 효율적인 의사결정 능력 즉 경제적 의사결정 능력은 퇴화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욕망을 부채질하고 조작하는 대량소비사회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어느 한 작가가 1년 동안 생필품 이외에는 사지 않은 경험의 기록을 책으로 펴낸 <굿바이 쇼핑>은 사실 우리가 너무나 충분하게 이미 소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옷장부터 시작이다. 재킷이 잔뜩 걸려 있고 정장용과 캐주얼용, 맑은 날과 궂은 날용, 달리기와 걷기, 하이킹 등 용도별로 겨울 신발과 여름 신발이 잔뜩 들어 있다. 서랍은 온갖 종류의 셔츠와 속옷이 꽉 들어차 있어 거의 닫히지도 않을 정도다. 거의 듣지 않는 cd가 빽빽히 들어차 있고 부엌의 그릇장은 수십년 동안 쓰지도 않은 접시들로 가득하다. 대개는 그냥 둬도 저절로 치유되는 온갖 질병의 치료약이 수납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모아보면 연방정부 부서 한 군데서 쓸 분량에 맞먹는 사무용품을 갖고 있다. 기름이 6가지, 식초가 9가지 등 향수병에 시달리는 굶주린 유엔총회 회원국 대표들이 모두 들른다 해도 너끈히 대접하고도 남을 양념들이 구비되어 있다. 찬장에는 소금이 3종류나 된다."

저 멀리 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내 주위를 둘러봐도 사정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계절별, 용도별로 꼭 필요할 것 같아 샀던 많은 물건들을 보다 보면 내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눈을 뜨고 살고 있지만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자꾸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보이니까 이미 갖고 있음에도 더 필요한 것 같아 다시 또 산다.

계속 사다 보니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그러다 보니 보관을 위해 또 다시 소비를 해야한다. 접시를 칸칸히 보관할 수 있는 싱크대용 접시 선반, 신발을 켜켜이 놓을 수 있는 신발 정리대, 안 쓰는 가방을 넣어서 장롱 위에 올려놓을 박스, 냉동실 정리 전용 프라스틱 그릇 등 자고로 물건은 맨 처음 소비뿐만 아니라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이 또 든다.

그런데 정작 내가 하루에 쓰는 접시는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신발 정리대에 자리가 남으면 요즘에 유행하는 워킹화를 사고 싶다. 안 쓰는 가방은 사실 안 쓰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음식은 냉동실 보관용 그릇에 넣기 보다는 그냥 먹어 버리면 간단한데 먹을 것이 너무 많다 보니 계속 보관만 하게 된다. 더불어 우리집도 소금이 적어도 4종류나 된다.

내가 가진 것이 이미 너무 많다

필요에 대한 합리적 판단은 경제적 인간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필요한 것을 소비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사지 않는 의사결정능력은 너무나 쉬워 보인다. 그래서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은 다양하다. 신용카드, 대형마트, 물질만능주의 풍조, 기업의 마케팅 등이 한데 어우러져 소비에 대한 개인의 욕구를 다양하게 조작하고 풍선처럼 부풀려서 불필요한 욕망조차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이다.

당장 쇼핑을 중단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만이라도 아는 것으로부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의사결정은 가능하다. 새로운 소유물을 늘이기 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저비용 고효율이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는 것이다. 혹시 나도 부서 하나가 다 쓰고 남을 사무용품이 쌓아 놓고 있지는 않은지, 안 입는 옷을 그저 보관만 하기 위해 새로 서랍장을 사지는 않았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소비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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