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전수검사, 무엇이 문제인가

학교문화 바로 세우자

등록 2010.06.21 11:00수정 2010.06.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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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걷어서 검사 ⓒ 김광선


난 초등학교 교사다. 하지만 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숨이 탁 막힌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바로 평교사인 나를 지치게 만드는,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한 가지 문화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전수검사'라는 걸 한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이 잘 하고 있나 확인하여 부족한 학생에겐 격려나 따끔한 말 한마디를, 최선을 다하는 학생에겐 칭찬을 해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 전수검사는 교감선생님이 담임교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어디 빠뜨린 데는 없나, 사인은 잘 해주고 있나, 첨삭지도는 잘 되고 있나 등등을 검사하는 것이다. 각 반 책 맨 위에는 반에 몇 명이 있고, 그 중 몇 명이 있고, 전출자는 누구인지 상세하게 A4용지에 정리해서 올려둬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 행해지는 한문, 아침 영어교재, 학력프로젝트, 독서록이 모두 수거되어 일일이 교감선생님의 전수검사를 받고 있거나 받을 예정에 있다. 각 반의 책을 걷어 모든 책을 전수검사하시려는 교감선생님의 그 열성을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수업, 공문 처리, 방과후 수업 등으로 인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 검사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의 부담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바로 그 전수 검사가 가지는 이면의 의도와 그 전수 검사 방법의 획일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내가 느끼는 우리 학교 전수 검사의 몇 가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제를 위한 전수검사라는 점이다. 정말 선생님들이 성의껏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 있게 자신의 명령이 잘 이행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둘째는 교사의 재량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의 내용 중 필요치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볍게 보고 넘어가고, 중요한 부분이나 학생들이 어렵게 생각하겠다고 하는 부분을 더 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다. 책의 모든 부분을 다 채워야 하는 것이다. 그로인해 학생들의 정서적인 부분이 될 수 있는 책 읽는 시간, 음악 감상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셋째, 아이들의 개인적 학습 능력 차이나, 개성을 무시한다. 글씨 쓰는 게 유난히 느려 한 장을 다 채우는 것을 버거워 하는 학생이 있고, 이미 다 아는 내용이어서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한 장을 채우는 학생도 있으며,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해 글을 쓴다기 보다 그림을 그리는 듯한 학생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교사가 재량껏 반쪽만 하게 하거나, 수준에 맞는 부분을 하게 할 수 있게 해야 학생들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된다. 그러나 교감선생님께 전수조사를 받으려면 이런 저런 사정없이 모두가 같은 부분이 완성 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그래서 교감선생님께 잔소리 듣기 싫어 아이들을 재촉하고 밤새워서라도 다 하게 만들고 있다.

공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올바른 사회인이 되도록 하는 전인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공교육의 시작되는 초등학교에선 전인교육이 우선시 되어야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사이 초등학교는 작게는 같은 구, 크게는 전국의 초등학교와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경쟁 속에서 전인교육처럼 당장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은 뒷전으로 밀리고, 눈에 보이는 전시 행정이 우선시되고 있다. 우리학교 사교육 받는 학생의 비율은 몇 %이며, 학력능력평가가 얼마나 우수하며, 얼마나 다양한 방과 후 학습이 있고, 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 보여주기 행정의 목적이 정말 아이들이 행복하고 선생님들이 즐겁게 수업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함일까? 그러한 과정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모두 행복한 학교는 존재하기 힘들다. 수업 시간에 공문처리 하라고 연락하여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관리자, 꼭 필요치 않은 일을 만들어 퇴근 시간 못 맞추고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리자, 대화를 통한 의견수렴 없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관리자, 그러한 통제와 억압방식 속에서 수업하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다.

우리 학교에서 행해지는 전수검사도 바로 그러한 억압과 통제를 통한 교사 길들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검사도 제대로 안하고 자신을 도장을 돌려 다른 사람이 찍어 마치 검사한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 책들 다 수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엄포를 놓은 그 역설적인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넘어 안스러움을 느낀다. 차라리 그러한 쓸데없는 전수검사보다는 반 아이들 중 특별히 주목할 만한 학생들(행동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특정 과목에 우수함을 보이는 학생들)을 상시 보고하게 하여 학교차원에서 차후로 생길 문제를 어떻게 예방하고, 어떻게 우수성을 키워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

업무가 많아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을 테니, 그 업무가 관리자 중심의 보여주기가 아닌, 학생중심의 업무였으면 좋겠다. 결코 사양하지 않고 힘들어도 기꺼이 하겠다. 교사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거나 감시와 감사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지금의 전수검사 같은 업무라면 정말 거절하고 싶다.
#전수검사 #교육 #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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