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여름 숲이 육지의 숲과 다른 것은

[3박4일 제주도 여행기 1] 한라산 어리목 코스

등록 2010.06.23 13:39수정 2010.06.2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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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을 물들인 때늦은 철쭉꽃 ⓒ 이승철


"이곳에서는 정상까지 오르지도 못하는데 왜 하필 이 코스를 택했지?"
"그러게 말이야, 관음사 코스나 성판악 코스를 택해야 하는데."

어리목 코스 입구에서 내린 일행들 중 몇 사람이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인솔자가 다음 일정 때문에 정상까지 오를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이 날씨는 맑았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하늘을 가린 숲이 짙어 어두컴컴하다. 날씨가 무더웠지만 그늘이어서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숲속에 들자마자 새소리가 요란하다. 한 두 종류의 새소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서너 종류 이상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숲속의 청량감을 더해준다.

한라산에는 왜 새들이 다양하고 많을까?

"우와~~~ 이 새소리 좀 들어봐요? 웬 새들이 이렇게 다양하고 많지?"
"정말 그러네, 육지에서 산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많은 새소리는 처음인 걸요."

일행 한 사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일행도 맞장구를 친다. 정말 그랬다. 매주 화요일마다 찾는 육지의 산들 그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많은 산새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수많은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그침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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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목 등산로 입구 ⓒ 이승철


산길은 완만한 경사로 바닥은 화산섬 제주도답게 온통 돌과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라산 생태계가 육지의 산들보다 건강하기 때문일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가 보기엔 산새들의 가장 큰 천적인 길고양이들이 없어서 산새들이 많은지도 몰라요" 일행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한라산에 산새들이 많은 이유를 찾아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 두 가지 조건이 다 해당되는 것 같네요. 생태계가 건강한 것도 그렇고. 또 산에서 서식하며 산새들의 번식과 생명을 위협하는 길고양이들이 없는 것, 모두 한라산에 산새들이 많은 이유일 것 같네요."

일행들 중에서 가장 젊은 층인 일행이 결론을 내린다. 듣고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한라산은 분명히 육지의 어느 산보다 생태계가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서울 근교 산에서는 흔하디흔한 길고양이를 단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 쉬어 갑시다. 여기 자리가 참 좋네요."

걷다보니 길가에 쉼터가 만들어져 있는 곳에 이르러 있었다. 모두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내며 쉼터에 걸터앉았다. 울창한 숲속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자 과일 좀 드세요" 일행 한 사람이 귤 몇 개를 내놓는다. 산길을 오르다가 지친 몸을 잠깐 쉬며 먹는 과일 맛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약간 시큼하고 달콤한 귤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한라산에는 왜 모기가 없을까?

"어, 시원하다, 한라산 숲은 다른 산과는 많이 다르구먼, 정글 수준이야."
"요즘 우리나라의 산들 모두 숲이 우거지긴 했지만 한라산은 다른 산들과는 많이 다르구먼, 쭉쭉 뻗어 올라간 저 나무들도 그렇고."

일행들은 너나없이 숲을 칭찬한다, 햇빛을 거의 차단할 정도로 우거진 숲이 육지의 산들과는 수종도 다르고 자라는 모습도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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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한 방울 흐르지 않고 바짝 마른 개울 ⓒ 이승철


"그런데 이상하네. 이렇게 모여 앉아 있으면 모기들이 윙윙 덤벼들 텐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네."
"어~ 정말 그러네, 육지에서라면 지금 쯤 모기들이 덤벼들어 꽤 귀찮게 했을 텐데 모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잖아."

정말 그랬다. 요즘 육지의 숲들은 모기들의 천국이다. 어느 지역 어느 산이든 숲속에 들면 덤벼드는 모기 등살에 배겨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말이다. 소리 없이 날아와 피를 빠는 작고 검은 모기는 여간 매서운 놈들이 아니었다. 한 번 쏘이면 그 자리가 톡톡 부르트는 독한 모기가 바로 숲속 모기다. 그런데 한라산 숲속에선 거짓말처럼 모기 한 마리 덤벼들지 않는 것이었다.

모기가 덤벼들지 않는 숲속 쉼터에서 편안하게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등산로는 여전히 햇빛을 가리는 나무 숲 터널이었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여전했다. 가끔씩 안개구름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리 습하지 않아 상쾌한 기분으로 산행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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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선 열매가 자라는 계절에 뒤늦게 꽃피운 한라산 보리수나무 ⓒ 이승철


"아, 알았다. 바로 이거였어. 여길 봐요? 이 개울, 바짝 말라 있잖아?"
무슨 말인가 싶어 살펴보니 숲속을 흐르는 개울이었다. 그러나 개울엔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제주도가 화산섬이어서 비가 내리면 잠깐 물이 흐르다가  바닥으로 모두 스며들어 곧 말라버리기 때문이었다.

한라산 숲속에 모기가 없는 이유였다. 모기가 알을 낳아 번식할 수 있는 웅덩이나 개울물이 전혀 없으니 모기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모기들의 천국인 육지의 숲과 달리 제주도의 숲에는 모기가 서식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걷자 갑자기 앞이 환하게 툭 트인다.

드문드문 키 작은 나무들이 서있는 개활지가 드넓게 펼쳐진 것이다. 개활지를 뒤덮은 것은 역시 키 작은 산죽나무들이었다. 키 작은 나무들 중에는 보리수나무 몇 그루가 섞여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보리수나무들이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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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산죽들이 뒤덮인 개활지 ⓒ 이승철


육지에 있는 보리수나무들은 이미 꽃이 지고 열매가 자라고 있는데 이곳 한라산의 보리수나무들은 이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제주도가 육지보다 훨씬 남쪽인데 철늦은 보리수나무 꽃이라니, 모두들 놀라워한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자 더욱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철쭉꽃이었다. 진분홍 철쭉꽃이 드문드문 나타나다가 1600고지 부근에 이르자 드넓은 개활지가 온통 키 작은 철쭉꽃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북쪽 육지의 산들보다 뒤늦게 꽃피운 한라산 보리수나무와 철쭉

"우와아~~~ 저 철쭉꽃 좀 봐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남쪽 섬에 때늦은 철쭉꽃이라니 북쪽의 육지에는 철쭉꽃이 이미 져버렸는데…."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1600고지에 있는 만세동산 주변일대와 1700고지인 윗세오름에 이르는 드넓은 개활지는 그야말로 철쭉꽃 천지였다. 저 멀리 깎아지른 절벽으로 불쑥 솟아 있는 백록담 봉우리와 정상을 잇는 능선에는 짙은 안개구름이 휘감고 지나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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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고지 구상나무 숲과 멀리보이는 한라산 정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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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동산 전망대에서 필자 뒤로 바라보이는 윗세오름 오르는 길을 뒤덮은 철쪽꽃들. 발그레한 풍경이 모두 철쭉꽃이다 ⓒ 이승철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정상 쪽 왼편 한 쪽엔 웬일인지 이유도 모른 채 한라산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구상나무 숲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른편 능선에서 흘러내린 개활지는 분홍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키 작은 철쭉꽃들이 아름답게 수놓아 있었다.

"히야~~ 정말 대단하구먼, 한라산에 올라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보기는 처음이네요."

제주도와 한라산을 자주 찾는다는 일행 한 사람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름답고 멋진 꽃풍경을 시샘이라도 하듯 하늘표정은 변화무쌍했다. 쨍하고 맑은 하늘인가 하면 어느새 아래쪽에서 휘몰아쳐온 안개구름이 온산을 뒤덮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일행들은 예상치 못했던 황홀한 철쭉꽃에 취해 윗세오름까지 올랐다가 다시 원점으로 하산했다. 정상은 오르지 못할지라도 영실이나 돈내코 코스로 하산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행사의 다음 일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라산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귀와 눈을 호강시킨 수많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황홀했던 철쭉꽃은 오랫동안 아름답고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한라산 #어리목 #윗세오름 #이승철 #철쭉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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