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안상수와 '고달' 이동관 뒤에 숨은 '몸통 VIP'

[정치 톺아보기] 명진 스님 소환조사 미루는 '제2의 사직동팀' 경수대

등록 2010.06.28 11:51수정 2010.06.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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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안상수 전 원내대표가 21일 당 대표 경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봉은사 외압 의혹과 관련 "사실이라면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께 심려를 끼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봉은사 관련, 명진 스님과 김영국씨가 한 발언 내용은 작년 11월의 일이라 오래돼서 자세히 기억하긴 어렵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1일 당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명진 스님(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에게 에둘러 사과했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키로 한 데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지 꼭 3개월 만이다.

명진 스님은 지난 3월 21일 일요법회에서 "2009년 11월 13일 안상수 원내대표가 시내 한 호텔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나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좌파 주지'를 그냥 놔두어서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교(政敎) 분리의 헌정질서를 침해하는 언행이었다.

'메모의 달인' 안상수의 '오래된 기억'

안 원내대표는 당시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조찬 회동을 주선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김영국씨(전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 종책특보)가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명진 스님의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힘으로써 안상수 대 명진의 '1차 진실게임' 승패는 이미 그때 가려졌다.

그런데도 김씨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봉은사 문제와 관련)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면서 '묵언수행'을 자처한 안 원내대표가 3개월 만에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에게 유감을 표명한 데는 집권당의 당대표로 출마하려면 봉은사 문제를 털고 가야 불교계의 반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작년 11월의 일이라 오래돼서 자세히 기억하긴 어렵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이라고 전제조건을 단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메달'(메모의 달인)로 통하는 그가 '오래된 기억' 핑계를 대는 것은 구차스럽다. 신임 총무원장 스님과 함께한 조찬회동 같은 중요한 모임이라면 필시 자신의 수첩에 메모했을 것이고,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수첩만 들춰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봉은사 외압 발언 의혹은 그 자신이 친필로 메모한 수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지난 4월 8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안 원내대표 수첩의 4월 7일, 8일 일정에 '말조심'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말조심'은 '불조심'이나 '개조심'처럼 '있는 것'(존재)과 '개연성'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지 '없는 것'에 쓰는 말은 아니다.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만큼 '말실수'를 했다는 얘기다.

<시사저널> 사진기자가 같은 날 찍은 안상수 수첩의 오른쪽 페이지 하단 'MEMO'란의 메모도 의혹의 대상이다. 제목을 '3/31 대통령'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이날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는 4월 국회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어떤 형식으로든 소통한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 잡힌 '3/31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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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수첩에 적힌 '말조심' '말조심' 4월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수첩에 7일과 8일 연이어 '말조심'이라는 단어가 쓰여져 있다. ⓒ 뉴시스/오마이뉴스 남소연


메모의 일부가 안 원내대표 손에 가려져 있으나, 내용은 파악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 중심 잡고…'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당에서 중심을 잡고 나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6인 중진협의체 충실히…'에서는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한나라당 6인 중진협의체에서 충실히 논의해 달라는 뜻으로 보인다. '봉은사 사건은 신경 쓰지…'는 문맥상 '신경 쓰지 마라'고 위로한 것으로 보인다. 

안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3월 31일은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지 6일째 되는 날이고,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사망(30일)한 다음 날이다. 수첩에 기록된 대통령의 지시를 살펴보면, 당시 MB의 관심사는 천안함 사건과 세종시 문제, 그리고 봉은사 사태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은 국가안보의 근간을 뒤흔든 초대형 안보사건이다. 세종시는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운신을 건 국책사업이다.

그렇다면 봉은사는? 바로 이 대목이 미스터리다. 현재까지 사실이 확인된 바로는 봉은사 외압 의혹은 MB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안상수 사건'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안 원내대표가 봉은사와 관련, "어떤 외압도 없었다"고 '부인 모드'를 유지하던 때 그를 왜 위로한 것일까?

MB 대신 '악역' 자처한 '고소의 달인' 이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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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 남소연

이 같은 의문은 MB의 핵심 참모인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영국씨의 기자회견 전날인 3월 22일 김씨와 통화하면서 '기자회견을 하지 마라'고 회유했다는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석은 "그날 김씨와 함께 있던 박○○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김씨가 내일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뿐, 김씨와 전화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문제는 "어떤 외압 발언도 없었다"는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굳이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가 직간접으로 나서 김씨더러 기자회견을 하지 마라고 회유하거나, 대통령 직속 G20정상회의준비위 소속 박○○ 국장으로부터 기자회견 관련 보고를 받을 까닭이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발언과 메시지를 관리하는 직책이지 안 대표의 발언을 '마사지'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봉은사 외압'은 청와대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게다가 이 수석은 지난 4월 13일 명진 스님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했다. 사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종교인을 상대로 고소한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적어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는 그런 일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개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고소라고 설명해도, 사람들은 대통령 핵심 참모의 형사고소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석은 5월 7일 김영국씨까지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가 그 전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기자회견 전날(3월 22일) 이동관 수석이 내 사면복권을 해결해주겠다고 회유했다"며 명진 스님의 주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수석은 '마달'(마사지의 달인)에 이어 '고달'(고소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청와대 수석 2년여 동안 고소만 5번 해서 붙은 별명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홍보수석이 왜 오지랖 넓게 원내대표 발언까지 개입하려고 한 것일까? 또 그는 왜 '고달'이라는 별명을 감수하면서 MB와는 무관한 '안상수 사건'에까지 개입한 것일까? 이 의문 역시 이 수석이 MB 대신 '악역'을 수행한 것이라면 쉽게 풀린다.

명진 스님 "제발 나를 불러 조사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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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 권우성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제발 고소를 취하하지 않고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

지난 4월 13일 명진 스님에게 이 수석에게서 고소당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반목과 갈등을 치유해야 하는 종교인의 입장에서 이 수석에게 고소를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바라던 바라는 것이다. '고소를 취하하지 않고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는 말은 기소되어 법정에서 '봉은사 외압' 의혹의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기 바란다는 뜻이다.

"제발 나를 불러 조사해 달라"는 명진 스님의 간절한 뜻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동관 대 명진 고소 사건은 현재 70일 넘게 별다른 진척이 없다. 경찰은 고소인 이동관의 대리인(청와대 직원)과 김영국씨만 조사했을 뿐, 현재 피고소인에 대해서는 소환조사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봉은사 측은 이동관 수석의 회유압력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김영국씨의 기자회견 전날 이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김씨에게 통화해보라고 바꿔준 박○○ 전 행정관-이동관 통화내역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을 법원에 냈고 이것이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봉은사 측은 기자회견 전날 서울 광화문 카페에 동석해 박씨가 이 수석과 통화한 내용을 현장에서 전해 들은 목격자 3인의 진술을 확보해 공증 받는 등 소환조사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수석은 검찰이 아닌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해 경제범죄특별수사대(이하 경수대)에서 수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관련, 고소한 지 70일이 넘었는데 피고소인 조사를 안 하는 이유를 묻자, 장우성 경수대장(경정)은 "종교 지도자여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7월 초에 출석 여부를 타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경수대'는 대통령 하명사건이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의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제2의 사직동팀'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아래 관련 기사 참조).

청와대 행정관 "VIP에게 보고해야 하니 빨리 기자회견 안 한다고 말해 줘요"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을 왜 대통령 하명사건을 처리하는 '사직동팀' 의혹을 받는 '경수대'에서 수사하는가 하는 의문은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목격자 3인의 진술서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진술서에 따르면, 김영국씨의 친한 대학 후배인 박○○ 전 행정관은 김씨의 기자회견 전날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이동관 수석과 통화한 뒤에 김씨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박○○ : VIP에게 보고해야 하니 빨리 기자회견 안 한다고 말해 줘요.
김영국 : 아니, 이런 일을 무슨 VIP한테까지 보고를 하냐, 이동관이가 그래?
박○○ : 지금 VIP가 기다리고 있대요. 아유, VIP가 형을 알지 않아요, 그러니까 관심이 있는 거겠죠.
김영국 : 알기야 알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문제를 VIP가 직접 챙기는 게 말이나 되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박○○ : (동석했던 3인에게 김영국과 얘기하게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해 3인은 카페 밖으로 나감. 3인이 나간 후 기자회견 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하던 중) 형, 기자회견 못 막으면 저 쫓겨납니다.
김영국 : 야, 니가 이동관에게 엄청 시달리나 보구나.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가 이동관에게 전화해서 기자회견 안 한다고 해라. 내일 아침 10시에 통화해 최종 확인하기로 했다고 해라.

박○○씨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다. 현재도 대통령 직속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가 말한 'VIP'는 누구일까? 결국 '메달' 안상수의 '오래된 기억'과 '고달' 이동관의 '개인의 명예' 뒤에 숨어 있는 '봉은사 외압' 의혹의 '몸통'인 'VIP'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봉은사 #명진 #이동관 #안상수 #사직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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