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스캇 펙의 윤리학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등록 2010.07.21 10:51수정 2010.07.2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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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은 그럴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순재네 식구들과 식모살이를 하는 신세경과 어린 동생, 순재네 집에 과외를 하러 오는 황정음의 하숙집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이 유머러스한 대사, 인물 각자의 고민과 엇갈린 애정전선들로 어우러진다. 관객이 극에 몰입을 할 때쯤엔 시트콤 특유의 신호음이 울리고 장면이 전환된다.

브레히트의 연극이론 중에 자기소외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극으로부터 현실을 소외시킴으로서 관객이 극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물에게 최대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되 관객에게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시트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 그래서 현실은 시트콤 밖에 따로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트콤의 윤리학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윤리학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

스캇 펙은 기독교인이고 정신과의사로서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이 종교적인 것과 겹쳐진다고 보았다. 이 책에는 상담 사례들이 마치 소설처럼 자세하게 언급되는데 스캇 펙과 상담 이후 교회에 나가게 된 사람과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사람의 사연이 동등하게 나온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읽는 것이다. 만약 돈을 잘못 벌면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 해야 할 급한 일이 있는데 손도 못 대고 있으면서 영화 볼 약속이나 잡고 있다면 아마 마음이 먼저 불편할 것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무의식이 문제를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문제를 설정하지 않고 다른 볼일을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부족한 사랑이다. 나는 내가 크게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잘 되는 것이 싫다는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 마음을 이겨내고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자신에게 사랑을 줘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고 그에 알맞은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 자신에 대한 경청인 것이다. 그래야 남의 말도 더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과 있으면 편안하다. 그는 내 말을 끊고 자기식대로 질문을 던져 내 말을 흐트러뜨리지도 않으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에서 찾아낸 힌트로 내 앞에 대안을 놔주기도 한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의존하고, 자신의 선택을 미루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게으름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자기보호나 변명을 위해 게을러질 때 악이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에 대해 그가 건드린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그가 한 번 더 말한 것뿐이다. 시트콤에서 신세경은 순재네 의사 아들을 좋아하는데 그 사랑은 쉽게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관객들은 속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신세경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교통사고가 난다. 감독은 시트콤을 현실과 박아버린 것이다. 현실을 만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만나야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최미양 옮김,
율리시즈, 2011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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