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그리 살뜰한지...아내가 바로 예수요

예배당에서 하룻밤을 청한 낯선 여행자를 대하는 태도를 지켜보며

등록 2010.07.21 11:17수정 2010.07.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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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7월 16일)의 일이다. 밤 10시 쯤 일어난 일이다. 우리 식구는 밤에 공부를 끝낸 막내 윤경이를 데리고 올 겸 마트에 가서 수요 노년부 예배 식사 재료를 살 겸 해서 출타했다가 막 귀가했을 때였다. 식구들은 짐을 갖고 사택으로 들어갔고, 나는 마당에 차를 가지런히 주차하고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깜깜한 밤이었다. 사택에 켜둔 불빛이 희미하게 물체의 윤곽을 어슴푸레 알아보도록 돕고 있을 뿐 사위(四圍)가 어두웠다. 그 때 예기치 않게 예배당에서 정체불명의 사내가 튀어 나오면서 말을 던져왔다.

 

"교회 목사님이세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이 밤에."

 

침착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상대방이 알아차릴 정도로 몹시 떨렸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얘기이다.

 

사내는 말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오늘 밤 잠을 예배당에서 좀 자면 안 될까 해서요."

 

가끔 노숙자 등 나그네들이 시계(市界)에 있는 교회를 찾아오지만 예배당에서 잠을 자고 가겠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예, 하지만 내일 새벽 기도회가 있기 때문에 그 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겠어요?"

"예, 괜찮습니다. 일어나서 저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겠습니다."

 

하지만 내심 걱정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새벽에 권사님들이 나왔을 때 정체불명의 사내가 자고 있다면 자초지종을 말하기 전 지레 놀랄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나는 내일 새벽엔 보다 일찍 예배당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염려는 다른 데 있었다. 노숙자 비슷한 나그네에게서 느끼는 불안감에서 오는 염려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저녁 식사는 했는지, 또 비오는 하루를 걸었으면 샤워라도 해야 할 텐데 어떨지를 걱정했고, 또 아무리 여름밤이라고 하지만 예배당에서 잠을 청하려면 얇은 이불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저녁 식사는 조금 전 사 먹었다고 했고, 샤워는 극구 고사했으며 이불이 있으면 하나 주시면 좋겠다고 사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내친 김에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몇 가지 물어보았다. 나이는 49세, 미혼, 집은 대구이고 건설 일용직(일명 노가다)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음악, 그 중 작곡을 좋아해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기른 수염에 곱슬머리가 예술적 형상으로 내게 비쳤다.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는 새벽 5시 정각에 시작한다. 30분 전에 나가서 그를 깨웠다. 그는 벌써 일어나 기도하는 것 같았다. 묵상으로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서 권사님이 왔다.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레미야를 강해 중이어서 관련 성구를 읽고 찬송을 했다. 그 나그네는 신앙생활의 연륜이 결코 짧지 않은 듯했다. 성경을 쉽게 찾아 함께 읽었으며 찬송도 곧잘 따라 불렀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그에게 좀 더 쉬라는 말을 하고 들어왔다. 아내는 그 때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불청객이라고 해도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한다며 밥을 다시 하고 국을 끓이며 반찬들을 준비했다. 여름은 낮이 길어 장마 중 뜬 해는 벌써 동녘을 환히 비취고 있었다. 방학을 한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 나그네와 우리 내외 이렇게 셋이 함께 상에 둘러 앉았다.

 

사내에게는 내 식사량의 곱을 담았다. 하루를 또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하는 나그네에게 양껏 배를 채우라는 아내의 배려였다. 그는 맛있게 밥을 먹었다. 어제 밤 저녁식사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적지 않은 양을 다 소화해냈다. 모처럼 먹어보는 잡곡밥이어서 더 맛깔스럽다며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였다. 상을 차려주는 사람은 맛있게 먹어줄 때 기분이 좋다며 아내가 분위기를 돋우웠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씩 나누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랑이고 인정이라며 고마워했다. 그리고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도보여행(?)을 하는 것은 사실 한적한 산촌에 거주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딸린 식구도 없으니 혼자 산촌에 터를 잡아 텃밭에 먹거리를 재배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초라한 삶 속에서 저런 낭만적인 희망을 싹 틔운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이곳저곳 살피며 도보로 영동까지 가면 생각하고 있는 거처지가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라며 얼굴을 화색을 피웠다.

 

그 새 아내는 비닐 봉투 안에 먹을 도시락을 담았다. 현미가 섞인 잡곡밥하며 반찬으로 김치와 멸치 볶음, 식사 후 드시라며 일회용 커피 몇 개와 종이 컵 그리고 생수까지 한 병 넣어 주었다.

 

"도보여행에 물은 필수에요. 그리고 요즘은 냉온수기 없는 데가 없으니 물통 버리지 말고 받아서 드세요. 이 커피도 온수를 받아 타서 먹으면 될 거예요."

 

그는 주시는 선행(善行)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몇 번이나 되돌아보며 고맙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 때 아내는 사내를 잠깐 기다리라며 잡아 세우고 잽싼 동작으로 사택으로 들어갔다. 생각한 먹거리가 빠진 것을 가지러 간 것으로 나는 추측했다. 잠시 후 나온 아내의 손에는 꼬깃꼬깃 접은 지폐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사내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아요. 이만 원이에요. 꼭 필요할 때 쓰세요."

 

전혀 뜻밖이라는 듯, 사내는 어렵게 손을 내밀어 돈을 받았다. 아내는 한 마디 덧붙였다.

 

"다니다가 마땅한 거처지를 만나지 못하면 오세요. 우리 마을에도 알아보면 살 집이 있을 거에요. 지금은 농번기이기 때문에 일손을 필요로 하는 데도 있을 거구요."

 

아내는 손님 접대에 있어서는 나보다 몇 단계 위이다. 나는 현실을 고려해서 손을 대하는 데 비해 아내는 직면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대접한다. 아내와 오래 함께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만날 때는 신선한 감동을 받게 된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 아내는 저들을 대하면서 이 말씀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까운 데서 실천하고 있는 아내 같아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샘 솟는다.

2010.07.21 11:17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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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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