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예방접종은 '선택된 아이들' 위한 것?

[뉴스 속 건강 110] 선택예방접종, 필수예방접종으로 편입돼야

등록 2010.07.27 13:38수정 2010.07.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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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매일 집에 들어와 예쁜 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기쁨과 설렘은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또 하나의 행복입니다. 이런 행복은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불리며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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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바이러스는 비누와 소독제에도 내성이 있으므로 손을 깨끗이 씻는다고 예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 한국MSD

그러나 기쁨과 설렘의 존재인 아이가 기침이라도 한다면 금세 그 기쁨은 근심과 걱정으로 변하지요. 이 세상 모든 어버이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식들의 '건강'을 걱정할 것입니다.

영유아들을 키운 경험이 있는 부모들은 이틀 정도 고열과 심한 구토를 한 뒤 설사를 심하게 하는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을 종종 봐왔을 것입니다. 잘 먹거나 마시지를 못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이 질환은 심하면 탈수나 영양장애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을 만큼 무서운 질병입니다. 

이 질환에 걸린 아이들은 5~7일간 계속 설사를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부모들은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이 질환은 5세 이하 영·유아의 95%가 한 번 이상 감염될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로타바이러스 장염인데, 비누와 소독제에도 내성이 있으므로 손을 깨끗이 씻어도 예방이 되지 않는 고약한 바이러스입니다.

어린이집에서 한 명의 설사 환아가 나타나면 같은 반 대부분 아이들에게서 비슷한 설사 환아가 생기는데, 그 숫자가 많은 경우 이 바이러스일 확률이 높습니다.


로타바이러스 장염은 일반 감기 등 처럼, 한번 걸렸다고 해서 면역력이 생기는 질환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걸릴 수도 있고, 당장 낫게 하는 치료방법이 아닌 수분공급 등 대증적 치료가 전부기 때문에 부모들의 마음은 타들어갑니다. 물론, 그렇게 치료를 하게되면 치료비도 만만치 않고요.

WHO에서는 '필수', 우리나라는 '선택'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로타바이러스 백신'만 복용하면 예방이 가능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선 소아청소년과에서는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 생후 2개월부터 로타바이러스 백신을 권장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4월 전 세계 국가 예방접종 사업에 로타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포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호주 등에선 필수예방접종으로 95%의 영유아가 설사병의 고통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비용'입니다. 로타바이러스 백신의 경우 2번 또는 3번 복용하는 백신이 출시되어 있는데, 복용이 끝날 때까지 지불해야 할 비용이 30만 원 내외입니다. 지난해 국내 로타바이러스 백신의 접종률은 40%로 10명 중 6명의 부모들은 로타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포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3일 보건복지가족부 주최로 열린 저출산 토론회에서 밝힌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생각은, 과연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한민국의 보건과 저출산을 걱정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은 글로벌 기준인데, (의료기관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예방접종을 너무 많이 권유하는 게 아닌가 한다."

얼핏 전 장관의 말을 들어보면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은 세계적인 기준을 잘 따르고 있어 문제가 없고, 선택예방접종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예방접종을 의료기관에서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약 당신이 전 장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소아청소년과에서 권하는 선택예방접종을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영유아 예방접종은 B형간염, BCG, DPa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폴리오, MMR(홍역, 볼거리, 풍진), 수두, 일본뇌염 등을 예방하는 국가필수예방접종과 폐구균, 뇌수막염, A형 간염, 로타바이러스 등을 예방하는 선택예방접종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에 더해 청소년기에 접종하는 자궁암 백신까지 더해진다면, 선택예방접종의 가짓수는 더욱 늘어납니다. 이 중 국가필수예방접종은 각 지역 보건소에서 무료로 맞을 수 있지만 선택예방접종의 경우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선택예방접종은 '선택된 아이들'을 위한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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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선택예방접종에 포함된 대부분의 예방접종이 선진국에서는 국가 사업으로 무료로 접종되고 있다. ⓒ 한국와이어스


서두에서부터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폐해를 길게 서술했지만, 실제로 국가 필수예방접종에 선택되어야 할 우선순위에서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제일 마지막에 서 있습니다. 지난 달 21일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은화 교수팀이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한 '국가 필수 예방접종 도입 우선순위 설정' 연구결과에 따르면 폐구균, 뇌수막염, A형 간염, 로타바이러스, 자궁암 백신 등 선택예방접종에 포함되는 5개 질환에 대한 조사 결과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5.46점을 받아 중요도에서 뒤에 서 있습니다.

즉 나머지 4개의 질환은 적어도 로타바이러스보다 더 경계해야 할 질환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폐구균 백신의 중요도가 10점 만점에 7.92점으로 5개 질환 가운데 가장 높았고, 뇌수막염 백신이 7.48점, A형 간염 7.35점, 자궁암 백신이 6.01점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비용'이 문제입니다. 청소년기에 맞추는 자궁암 백신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선택예방접종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선택 예방접종인 폐구균 백신 1∼4차가 총 40만 원, 뇌수막염 백신 1∼4차는 총 16만 원, 로타바이러스 백신 1∼3차는 30만 원, A형 간염 백신 1∼2차는 총 8만 원 등으로 평균 94만 원이 소요됩니다.

이에 많은 부모들이 고비용을 버티지 못하고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말 한마디를 의지한 채 백신 접종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실정입니다. 선택예방접종이 '선택된 사람들'을 위한 예방접종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건복지가족부 예방접종과 관계자는 "백신이 효과가 있으면 도입할 수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예산문제와 함께 백신 도입에 대한 추가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라면서 "(선택예방접종에 대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답변합니다.

영유아 예방접종 예산 시급히 늘려야

<삐뽀삐뽀 119 소아과> 저자인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우리나라의 경우 선택 접종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이루어진다"면서 "영유아 예방접종이 가장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95%의 보건 예산이 보육에 치우쳐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 원장은 "의학적으로 영유아들에겐 필수와 선택을 가리지 않고 모든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예방접종은 장기적으로 볼 때 비용편익과 삶의 질 측면에서 유리하고 접종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며 "선진국에서 예방접종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물론이고 의료민영화가 된 미국에서조차 대부분의 영유아 예방접종은 필수예방접종으로 국가적 혜택을 받기 때문에 영유아들이 잔병치례를 하지 않고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출산 대책을 해결한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여러 지원과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명확한 예방접종 사업에 대해서는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아이가 아픈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이 대신 아파주고 싶다.'

이러한 생각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부모라면 한결 같이 공유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저출산 대책에서 과연 어떤 지원이 우선순위로 들어가야 하는지 부모의 마음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선택예방접종 #필수예방접종 #전재희 장관 #로타바이러스 백신 #폐구균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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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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