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발견했다 해도 쉿!

우리만 아는 비밀 휴가지

등록 2010.08.03 15:56수정 2010.08.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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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봤다(?) 아니 물봤다. 아무로 모르는 그곳을 찾아가세요. ⓒ 오창균


설날,추석 그리고 또 하나의 민족대이동 여름휴가철이다. 일단 서울을 신속하게 벗어나기 위한 출발시간은 새벽 5시. 외곽도로에서는 벌써 정체가 시작되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향하는 화천 방향은 여유있는 드라이브길이다. 8년 전에 귀농한 친구가 있는 강원도 화천으로 해마다 여름휴가를 떠난다. 겨울에는 산천어축제로, 여름에는 쪽배축제로 유명할 만큼 물이 깨끗한 지역이다. 산중턱에 홀로 자리한 친구집에 아침밥 때에 맞춰서 도착했다.


전날 휴가차 온 다른 가족이 있었고, 또 다른 가족이 뒤이어 도착했다. 모두가 초면이라
간단히 인사를 나누지만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불편할 것은 없다. 여름철
이면 이곳(친구집)으로 휴가를 오는 이유가 있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넘어선 가장들은 가족과 조용하게 쉬었다가 올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는데, 이미 알려진 지역은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오히려 휴가가 아닌 노동의 연장이 될 수도 있음을 알기에 한적한 곳을 찾는 것이다.

쪽배축제가 시작된 곳이 가까이 있었지만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일 숨겨진 그곳에 가기로 하고, 몇 년새 인공폭포와 오토캠핑장까지 갖춘 딴산유원지로 내려갔다. 강 양옆으로는 텐트촌이 세워져 있었고, 돗자리 깔 자리를 겨우 찾아 그늘막을 쳤다. 편의시설을 만들어 놓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예전 딴산의 깨끗한 물과 주변의 자연환경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불판에 장작불을 붙여서 빨간숯으로 만든 삼겹살 훈제구이의 맛은 별미 중 별미다. 산중턱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맑은 공기에 운이 좋으면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를 볼 수도 있지만, 이날은 흐린 탓에 까만 밤하늘을 지붕삼아 서로 서로 술잔을 돌린다. 주량보다 많이 마셔도 취하지도 숙취도 없는 것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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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균

아침, 일찍 서두르기 시작했다. 동네사람 정도만 알고 있다는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선착순이다. 트럭에 한 짐과 아이들을 태우고 산길을 내려갔다. 아뿔사,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차 한 대가 서 있다. 피서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냇가를 보고 멈춘 것 같은데 들어가는 길을 못 찾은 듯하다.

우리가 탄 트럭은 그곳은 갈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을 스치듯이 지나갔다가 유턴하여 서서히 올라왔다. 냇가 아래쪽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곳 입구에 도착할 쯤에 먼저 온 이들은 포기한 듯 떠나고 있었다. 아싸! 우리 차지다.


어른키보다 높은 풀숲이 마치 밀림에 들어온 착각도 들고, 발 밑에 뱀이라도 있을 것 같아 소름도 돋는다. 풀숲을 헤치고 나오자 냇가의 푸른물이 바다의 파도처럼 출렁인다. 깊은 곳은 어른도 잠길 수 있을 만큼 물이 많고 맑은 곳이다. 최고의 명당자리로 불리는 그곳을 차지한 우리들만의 피서가 시작되었다. 먼발치서 이곳을 알고 찾아온 듯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우리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임자가 없는 이곳은 무조건 선착순이다.

아이들은 벌써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부인들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수다를 떨고, 남편들은 솥을 걸고 땔감으로 쓸 잔나무 가지와 낙엽을 모아 불을 피워 먹을 것을 준비하였다. 화천의 옛 지명이 '낭천'이라고 해서 우리들도 아마존의 원주민처럼 야생을
하는 '낭천족'이라 부르기로 했다.

한솥 가득 끓여낸 오리탕으로 허기를 채우고 아이들은 잠깐 쉴 틈도 없이 바로 또 물로 뛰어들었다. 부인들은 여전히 쉴 새 없이 수다를 하고, 남편들은 또 다시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위치로 돌아가 물고기 사냥에 나섰다. 이리 저리 헤엄치며 다니는 물고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잡겠다며 견지 낚싯대를 던져보지만 쉽지가 않다.

맑은 하늘에 간혹 여우비가 서너번이나 뿌리며 지나가고, 물 위에 유리를 댄 것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물 속에는 모래무지, 꺽지, 종개 같은 토종 물고기와 다슬기들이 돌 틈마다 붙어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조용하게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누군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고 쉬었다 가더라도 소문은 내지 말아줘요. 쉿!

덧붙이는 글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덧붙이는 글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화천 #낭천 #은하수 #휴가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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