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제비들, 웰빙흙집으로 돌아와~

우리집 제비가 남의 집에 둥지를 틀었네요

등록 2010.08.16 11:54수정 2010.08.1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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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벌리고 어미의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제비들 우리집 제비들이 웰빙흙집을 마다하고 앞 집 콘크리트 벽돌집 처마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 김대호


내 고향 강진군 항골 마을. 참으로 오랜만에 제비가 돌아 왔습니다. 근 20여년을 사라졌던 제비들이 이제는 남도의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됩니다.


그런데 수 년 전 고향집 처마에 지어놓은 집을 마다하고 집 앞 슬레이트 주택 처마에 새집을 지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제비가 우리집 둥지의 주인이라고 믿는 눈치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둥지 위로 노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새끼 4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어미가 날아들면 노란 주둥이를 벌리고 오차 하나 없이 먹이를 받아먹는 폼이 국가대표 골키퍼 이운재는 저리가라입니다.

나 어릴 적엔 제비가 잠자리만큼이나 많았습니다. 새끼가 둥지 위로 배꼼이 나타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반나절은 족히 지켜보곤 하였습니다. 불안한 어미는 '지지배배' 주변을 맴돌며 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치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새끼를 만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알 수 없는 옛날부터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제비를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비는 개나 고양이처럼 한 가족이었습니다.

한 여름에도 깊은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동네 아저씨가 폐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아이들 사이에선 '몸보신 하려고 제비를 삶아 먹어서 그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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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벽돌집 처마 밑에 자리 잡은 두 채의 제비집 왼쪽은 가짜 둥지고 오른쪽이 진짜 둥지입니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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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셔터 소리에 놀라 잔뜩 움추린 새끼제비들 사진을 찍는 내 모습에 놀란 새끼제비들이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립니다. 어미 제비는 불쾌한 듯 날아 다닙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 김대호


제비는 신기하게도 부잣집 기와 처마는 마다하고 꼭 초가집 처마 밑에 2~3개씩 집을 짓곤 했습니다. 제비가 집을 짓지 않은 집은 우환이 닥친다는 속설로 인해 부잣집에선 그 당시엔 귀했던 합판 받침대까지 미리 준비해 놓고 제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인색하게도 겨우 1마리만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어른들은 제비가 물 위로 낮게 날기 시작하고 마른 풀을 물어다 집을 보수하기 시작하면 '큰비'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가지붕에 새끼줄을 다시 동여매고, 소여물을 베어다 놓고, 땔감을 처마 밑으로 쌓아 볏짚 이엉으로 덮고, 염소를 끌어다 마구간에 묶어두고, 우물가에서 물까지 길어다 놓으면 어김없이 남쪽 하늘에서 천둥번개를 시작으로 태풍이 밀고 올라왔습니다. 이렇듯 제비는 복을 전해주는 길조였습니다.

단파 라디오 몇 대와 흑백TV 1대뿐인 산골마을. 이마저도 날씨가 궂으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일기예보를 접할 수 없었던 시절에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비가 올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정확한 건 할머니의 신경통. 허리에서부터 뼈 마디 마디가 쑤시기 시작해 손자 녀석 손을 빌리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죠. 일개미가 알을 물고 보금자리를 옮기고, 물고기가 사생결단하고 물위로 뛰어 오르거나 입을 내밀고 뻐끔 거리고, 청개구리는 앞산 뒷산 가릴 것 없이 귀청이 떨어지도록 울어대죠.

땅속 동물 지렁이가 땅을 박차고 나와 신작로를 방황하고, 잠자리 떼들이 진초록 논 위를 활공하며 높아진 습도에 숨이 막혀 고개를 내민 벼멸구 진수성찬으로 미리 단백질을 보충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며 소, 돼지 같은 가축들은 갑자기 식성이 좋아지고 마른 풀들을 모아 둥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려면 귀먹은 옆집 할머니의 귀청이 뚫렸습니다. 평소처럼 소리라도 지르며 '나 귀 안 먹었어'하시지만 날이 개이면 다시 '뭐라고 잘 안 들려'를 연발 하셨죠. 햇볕은 쨍쨍한데 해거름이 되면 빨래가 눅눅해지고 천개산 꼭대기에 오르면 항상 물 아지랑이에 가려졌던 제주도가 희미하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아침저녁 밥 때마다 군불을 지피는 초가집 뒤뜰에선 연기 한 올이 흩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솟아올랐습니다. 또한 달무리, 해무리가 우울한 무지개 옷을 입었습니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불쏘시개가 비글거리며 꺼지고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  눈에서 눈물 콧물 꽤나 쏟아졌습니다. 평소 냄새가 나지 않던 소똥 냄새도 진해지고 푸세식 화장실 냄새는 몸에 배어 평소 좋아하던 여학생 근처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비설거지가 끝나고 이윽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눅눅해진 흙집 아궁이마다 군불이 지펴지고 우비를 입고 논에 물길을 잡고 오신 아버지는 노곤한 몸을 눕혀 긴 낮잠을 주무십니다.

어머니는 부추에 풋고추 송송 썰어 넣은 부침개를 만드시거나 잘 삶은 팥을 맷돌에 갈아 6남매에게 양껏 칼국수를 먹이셨죠. 그런데 요즘은 태풍도 잘 오질 않네요. 초가집 구들장에 몸을 누이던 농부들의 짧은 휴가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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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째 텅빈 고향집 처마 밑 제비둥지 어머니는 공존을 선택했지만 제비는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내년엔 꼭 돌아 오겠죠. ⓒ 김대호


어머니는 60대까진 제비들이 똥 싸는 것이 귀찮다며 대나무 장대 가져다 제비집을 허물어 버리시던 분이었습니다. 허물면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제비와의 오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끔은 제비가 이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70이 넘어서면서 어머니는 제비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수년째 비어있는 제비집 밑에 합판을 댔습니다. 공존을 선택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작은 자연의 질서도 거스르지 않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가 봅니다.

그러나 제비는 웰빙 흙집을 마다하고 지난날의 악몽 때문인지 바로 앞집에 차들이 씽씽 오가는 큰길가 콘크리트 집 벽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걱정마라. 내년에는 틀림없이 우리 집에 알을 깔 것잉께."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다짐이라도 하듯 제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나 또한 내년에는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제비가 알을 까고 새끼를 쳐서 강남으로 날아가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어머니께 말을 보탭니다.  

"엄마, 내년에는 박씨 말고 박채 물고 제비가 돌아 올 것이요."

감정의 기복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분인데 오늘은 어머니가 오랜만에 흰 틀니를 드러내고 웃습니다. 제비는 뭐가 그리도 바쁜지 비 개인 하늘을 바쁘게 날아다닙니다.  
#제비 #강진군 #항골 #둥지 #일기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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