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띄운 'MB 아바타', 국민이 내쳤다

[정치 톺아보기] 여론으로 본 8.8개각과 인사청문회

등록 2010.08.31 17:06수정 2010.08.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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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개각이 현 정국에 끼친 영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찬물'이다.

8.8 개각에 이어 이른바 '8.15 구상'으로 집권 후반기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정국 구상이 '개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29일 발표된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의 8월 정기여론조사 결과가 그렇다.

8.15 구상에 '찬물' 끼얹은 8.8 개각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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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정국구상 여론 인사청문회 전에 8.15 경축사에서 제시한 친서민-공정 사회 국정기조에 대한 여론은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 EAI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 구상을 담은 8.15 경축사의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친서민-중도실용주의의 재점화였고, 다른 하나는 '공정한 사회'였다.

전자(前者)는 사실 서민과 중도층이 보기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의 재탕이었다. 새로울 게 없었지만 약간의 '호언'과 '실천'이 대중의 호기심을 끈 것이 사실이다. 서민을 울리는 대형카드사의 고리대 관행과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갑을(甲乙) 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질타와 대기업 때리기가 그것이다.

후자(後者)는 전두환 정권이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것만큼이나 뜬금없어 보였다. 그래도 두루마기를 입고 나온 대통령이 열정적으로 연설한 덕분인지, 아니면 여전히 종합편성 채널에 목을 매고 있는 조중동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덕분인지 모르지만, 두 메시지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EAI-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평가를 묻는 설문에 '긍정적'(50.8%)이라는 응답이 '부정적'(44.0%)이라는 응답보다 더 많았다. 또 8.15 경축사에 제시한 '공정한 사회 구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응답(55.2%)이 부정적인 응답(37.8%)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이같은 친서민-공정 사회 국정기조가 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8.8개각에 따른 공직후보자 9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세가 꺾였다. 인사청문회 초반에만 해도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노무현 차명계좌' 및 '천안함 유족 비하' 발언이 공개되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더니 김태호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 이르러서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를테면 EAI-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응답자의 84.8%가 이번 인사청문회를 직접 시청하거나 관련 뉴스를 접했다고 답했다. 반면에 청문회를 시청하지 못하거나 관련 뉴스를 접하지 못한 응답자는 15.2%에 불과했다(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800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표집오차는 95%신뢰수준±3.5%p)

청문회 보거나 관련 뉴스 접한 사람일수록 김태호 내정에 부정적

문제는 이런 국민적 관심이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청문회 초기인 8월 21일 조사(서울신문-한국리서치)에서 48.7%로 50%에 근접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청문회 종료 직후인 8월 28일 조사(EAI-한국리서치)에서 43.7%로 5%p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함의는 인사는 잘하면 만사(萬事)이지만 잘못하면 망사(亡事)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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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총리 임명에 대한 평가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46.9%(21일 조사)에서 66.0%(28일 조사)로 급상승했다. ⓒ EAI


공직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평가에서는 청문회 전후의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를테면 "40대 김태호 전 지사를 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21일 조사에서는 '적절한 인사'라는 응답이 30.3%, '부적절한 인사'라는 응답이 46.9%였다. 그러나 이틀간의 청문회(25~26일)를 거치고 난 28일 같은 질문에서 '적절한 인사'라는 응답은 19.9%(10.4%p ↓), '부적절한 인사'라는 응답은 66.0%(19.1%p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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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의 효과 청문회를 시청하거나 관련 뉴스를 접한 사람일수록 김태호 총리 후보 내정이 부적절하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 EAI


특히 청문회를 직접 보거나 뉴스를 통해 접한 사람들일수록 김태호 총리후보자 내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이를테면 같은 조사에서 청문회를 시청하지 않았거나 관련 뉴스를 접하지 못한 응답자(113명)에서는 '부적절한 인사'라는 응답이 53.7%였으나, 청문회를 직접 보거나 뉴스를 통해 접한 응답자(687명)에서는 '부적절한 인사'라는 응답이 70.5%로 16.8%p 더 높았다.

결국 이번 여론조사는 인사청문회가 유권자들로 하여금 공직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함과 동시에 김태호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일각에서 제기된 인사청문회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는 필요하다는 명분을 제공한다.

더러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청문회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오히려 김태호 총리후보자의 잦은 말 바꾸기가 낙마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청문회에 선 공직후보자들의 쇼(show)가 계속되는 한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과 운용의 묘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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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후보자 부적격 사유 국민은 공직후보자의 정책능력보다는 상대적으로 도덕성 기준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EAI


이를테면 같은 조사에서 국민들이 생각하는 고위공직자의 자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청문회에서 자주 등장한 의혹 및 정책 관련 기준을 제시하고 부적격 사유를 복수로 고르게 했다. 그 결과, ▲탈세(90.3%) ▲부동산투기(79.1%) ▲논문표절(77.7%) ▲투기목적 위장전입(73.4%) ▲교육목적 위장전입(62.9%) 등 도덕성 기준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정책과 비전의 결여(61.9%) ▲전문성 결여(61.9%) 등 정책능력 부족엔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청문회, 예비심사와 2차 청문회로 나눠 실시해야

현재의 청문회가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 진출을 위한 '4대 필수 스펙'이라는 조롱을 듣는 도덕성을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현행 인사청문회를 사전 예비심사와 본격적인 청문회로 나눠 단계별로 진행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청문회를 두 단계로 나눠 도덕성 검증과 함께 정책능력 검증에도 내실을 꾀하자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30일 발간한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청문회의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짧은 인사청문 기간 ▲자료 미제출 및 증인 불출석 ▲후보자의 허위진술 문제 ▲도덕성 검증에 치중 ▲당파적인 질의 등을 꼽았다.

입법조사처는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 내실있는 청문회가 되기 위한 방안으로 후보자로부터 제출받은 서류를 중심으로 각종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예비심사를 거친 뒤 이를 바탕으로 2차 청문회를 진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후보자의 자질이나 정책수행 능력에 대한 심층적인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요구한 자료제출을 거부한 경우와 불출석한 증인을 고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후보자의 허위진술이 매번 반복되고 있지만,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는 증인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후보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과 운영의 묘에도 불구하고, '정답'은 권력자의 눈높이가 아닌 국민의 눈높이로 공직후보자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번 8.8개각을 앞두고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엠바고(보도유예)를 청구해 언론의 사전검증을 봉쇄함으로써 '불행의 씨앗'을 뿌렸다. 참신한 40대 총리라는 '깜짝쇼'를 극대화하기 위한 꼼수였다.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권력의 눈높이로 뽑은 총리후보자

청와대는 8월 8일 개각을 단행하면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선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농민의 아들로서,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특유의 성실함과 도전정신으로 극복, 36세에 도의원, 40세에 전국 최연소 민선 군수를 역임하였고, 42세에 도지사 선거에 당선·연임에 성공하여 젊은이들에게 성취에 대한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

○ 지방행정의 CEO로 재임하는 동안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각종 현안들을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따뜻하고 진솔한 리더십으로 서민생활의 복지와 공감행정을 일선에서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누구보다 잘 이해ㆍ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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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국무총리로 내정된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 들어서며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보수언론은 대부분 이같은 인선 배경을 충실히 반영해 보도함으로써 상징조작에 기여했다. 특히 <조선일보>(8월 9일자)는 <"성장과정이 내 분신 같다"… '차세대 주자'로 키우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친이 진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후보를 오래전부터 찾아왔다"고 전제하고, "정치권에서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로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지명한 것을 놓고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았다"면서 그를 '박근혜 대항마'로 치켜세웠다.

"친이 주류들은 '대통령이 세대교체를 위해 영국 보수당 원로들이 캐머런을 키웠던 것처럼 과감하게 젊은 인물을 키워야 한다'고 해왔다. 실제로 친이 소장파들 쪽에서는 김 내정자를 차기 후보감으로 오래전부터 강력하게 추천해 왔다." (<조선일보>, 8월 9일자)

김태호 총리 후보자도 총리관저로 출근하는 캐머런 총리를 연상케 하는 '번쩍 든 손'으로 청와대의 상징조작 각본을 충실히 연기했다. 그 무엇보다도 이 신문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입을 빌려 김태호 임명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쇼(show)가 계속되는 한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조선일보> 8월 9일자 기사 파격 40대 총리... MB의 김태호 선택, 무엇을 뜻하는가 ⓒ 조선일보PDF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총리 내정자 임명에는 대통령이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8월 9일자)

이명박(MB) 대통령이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모두 담겨 있는 분신, 즉 'MB의 아바타'라는 얘기다. 그러나 청와대의 인선 배경과 판단과 달리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눈높이로 본 김태호 후보자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징적 인물도 아니었고,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누구보다 잘 이해ㆍ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도 아니었다.

MB가 '속성 재배'하려고 한 그는 생물학적 나이만 젊을 뿐, 참신하지도 친서민적이지도 않았다. 그가 총리 자리를 내락 받은 상황에서 급조한 트위터에 올린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트위트 글은 오히려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숙소에서 냄비에 태운 계란 프라이 사진이 대표적이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청와대의 세대교체 메시지와 달리, 트위터에 익숙한 20~30대에서 더 반감이 심한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결국 8.8 개각 및 인사청문회 후폭풍으로 인사 추천 및 검증 라인에 대한 문책론이 거세지만 따지고 보면 8.8개각의 후폭풍은 언론에 빗장을 걸면서 '깜짝쇼'를 원한 청와대와 청와대의 엠바고를 덥석 받아들여 사전검증을 포기한 보수언론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국민은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손을 잡고 상징조작으로 설정한 'MB의 아바타'인 그 합작품을 거부한 것이다.

그럼 점에서 이번 청문회 후폭풍은 국민의 눈높이와 다른 이명박 정부 인사 풀의 한계와 대통령의 안이한 태도가 자초한 것이다. 임명권자인 MB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인데 누구를 원망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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