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생각못한 것 말할 때, '그래 바로 그거야'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 2] 책읽기, 그 긴장 속에 행복이 있었네

등록 2010.09.09 08:48수정 2010.09.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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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에 관심 갖기 시작한 것은 1999학년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교특색사업으로 <주제별 글쓰기>를 담당하면서다. 그전까지는 독서의 중요성만 아이들에게 말했지, 책 읽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저 학창시절에 책을 많이 읽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니 책 읽기를 열심히 해라 하면서, 내가 읽은 몇 권의 책을 이야기 해 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독서교육이 내 일이 되고 보니 말이 달라진다. 어떻게 해야 되지. 나름대로 고민해 보았다.

일단 아이들이 읽어야 도서를 고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 가르치고 있는 담당 교과목 선생님들에게 추천을 받아 권장 도서를 선정하였다. 그래야 아이들이 책에 쉽게 다가서고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 글 쓰는 형식을 다양하게 했다. 그것을 통하여 아이들의 창의력을 길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써낸 독후감 가운데는 기발한 형식의 독후감이 많았다. 그 가운데 친구와 전화하면서 대화가 자연스레 책으로 이어지면서, 책 내용 가운데 자기와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너는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책에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너 이 부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 또는 '00에게 불어 볼까' 등등으로 생동감 있게 쓴 독후감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뒤 2000학년도에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에서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연구 논문 모집에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독서지도'가 당선되면서 독서교육에 한 단계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제별 글쓰기>에 우리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한 사이버공간을 도입하였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 아이들의 글을 누리집에 올리도록 하여 수행평가에 반영하였다. 이것은 당시 아이들이 독후감을 베껴 쓰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다. 자기의 이름이 공개되니 함부로 베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토론자들이 방과 후 특정한 한 장소에 모이기 어렵고, 토론자와 바로 대면하고 있지 않으면 표현을 좀더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살려 사이버공간을 활용하여 토론을 시도하여 보았다.

남과 조금은 다르게 한다고 하였지만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독서교육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 내용을 공유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할지 고민도 하지 않았다. 또 그 내용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단지 아이들의 글을 검사만 하고 있었다. 교육이라 할 수 없다.

대학 수시 입학 전형에서 논술이 확대되고 아이들의 독서 능력도 중요한 전형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논술이 무엇인가? 논술은 아이들의 사고력을 확대하고자 한데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제시문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대한 비판 또는 발전을 서술하면 되는 것이다.


독서교육만 제대로 하면 이것은 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 책 내용을 정리하고, 거기에 발전적인 생각을 펼쳐 보이면 아이들의 사고력은 자연스레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논술은 끝이다. 굳이 기출문제를 풀고 학원에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논술심화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책 한 권을 선정하고 아이들과 함께 책 읽기를 하였다. 이렇게 한 지도 3년이 되었다. 첫해는 <대담>(도정일, 최재천)을 읽으면서 통합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이왕주)를 읽으면서 우리의 삶에는 철학이 녹아 있음을 알고 그 깊이에 다가서고자 했다. <생각의 오류>(토마스키다)를 읽으면서 잘못된 믿음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바로 볼 수 있는 이성을 지니기 위해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알았다.

함께 헤매고 고민도 하면서 책 읽기를 마쳤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지적 능력 한계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난날 책을 좀 더 가까이 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나는 이 수업이 좋다.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잘된 점과 고쳐야 될 점을 지적하고, 아이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을 말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수업에서 신뢰가 무너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발표할 때 나의 모든 감각은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러면 뭔가 하나 걸려든다. 그러한 긴장감이 좋다.

또 이 수업은 일방적이지 않아 좋다. 언제 무슨 말로 나를 당혹스럽게 할지 모른다. 그것을 기다리는 긴장감도 좋고 방어했을 때는 더 좋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즐거운 것은 아이들이 나를 넘어설 때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아이들은 말한다.

"그래 바로 그거야."

마치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속으로 뜨끔함을 느끼지만 그 뜨끔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읽어야 할 책이 참 많다. 읽고 싶은 책도 참 많다. 다음에 어떤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또 헤매볼까. 다시 고민에 들어간다.

<생각의 오류> 읽으며 아이들과 함께 헤매며 고민한 주제

[1장]
대중매체는 개인의 믿음과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대중매체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2장]
우리 주변에서 비과학적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이라 믿는 사례를 찾아 이것이 사이비과학임을 증명하여 보시오.

[3장]
과학의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4장]
운과 우연의 일치를 간과한 사례를 들고, 사실 그것은 우연의 법칙에 의해 일어났음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5장]
일상생활에서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예시를 찾아 오류를 범하는 이유를 서술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

[6장]
잘못된 통계 자료나 잘못 분석한 통계 자료로 형성된 생각의 오류를 찾고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시오.

[7장]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여 일어난 문제점을 서술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

[8장]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여 변화를 가져온 사례를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

[9장]
간편 추론을 야기하는 언론 보도 형태를 비판하고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서술하시오.

[10장]
올바를 판단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 중 한 가지를 골라 그 장애물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예시를 들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시오.

[11장]
불완전한 기억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서술하고 이와 같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술하시오.

[12장]
유행에 따르는 것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들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

#독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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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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