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에게 추석 명절은 없어요"

[현장] 동산의료원 환자식당 해고노동자 농성장을 가다

등록 2010.09.11 17:54수정 2010.09.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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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동산의료원 환자식당 해고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쟁취, 환자식당 직영운영, 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한지 103일을 맞았다. 동산병원은 2007년 6월 환자식당을 외주운영으로 전환하였고, 2010년에는 풀무원ECMD를 환자식당 외주업체로 선정한바 있다. 이후 풀무원ECMD가 인력업체 유니토스에 재하청을 주면서 지난 5월 31일, 환자식당 노동자 50여 명이 해고당하였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삭감됐다.


이에 대해 동산병원 복지증진팀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환자식당 외주화는 경영권의 문제이고 자본가가 구조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외주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며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문제를 원청업체라는 이유로 모두 해결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제시했다"며 "해고 노동자의 순차적 복귀와 임금 10만원 인상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동산병원은 지난 6월,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농성투쟁을 벌이는 노동자에 대해 출입금지가처분신청을 하기도 했다. 

병원 직원들의 천막농성장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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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철거 ⓒ 김연주

천막농성장 철거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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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농성장 천막 ⓒ 김연주

부서진 농성장 천막 ⓒ 김연주

10일 오전 9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외래병동 앞. 작고 푸른 천막 한 동이 가파른 아스팔트 포장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동산병원 환자식당 식사질 보장 및 하청용역 철회 직고용 쟁취를 위한 지역시민 사회단체대책위'(이하 대책위)가 투쟁 100일을 맞은 8일 설치한 천막 농성장이다.

 

두 명의 여성조합원과 다섯 명의 남학생이 철야 노숙 농성을 했던 지난밤은 무던히도 길었다. 9일 오후 7시와 10시, 두 차례에 걸쳐 동산병원 직원 20여 명이 찾아와 천막 철거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탓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병원 측은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 와서 떠들고 있다. 병원 출입구인데 천막을 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침탈에 대한 긴장감이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오전 10시 40분. 외래환자의 발길이 다소 줄어든 시각. 경비업체와 동산병원 직원 30여 명이 "병원 영업에 피해를 준다, 천막을 철거하라"며 농성장에 다시 밀려들었다. 가슴에 병원 직원 확인증을 달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동산의료원 환자식당 외주철회! 직고용쟁취! 지역시민단체 1000인 릴레이농성'을 진행하던 조합원과 활동가 10여 명이 이들을 막아섰지만 투쟁천막은 순식간에 부서졌다.


의료연대 대구지역지부 이정현 지부장을 비롯한 여성 조합원들이 철거를 제지하다 천막 아래에 깔리고, 성서공단노조의 임아무개 조합원이 이들에게 오른쪽 눈을 가격 당했다. 동산 병원의 직원들은 해고노동자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내뱉기도 하였다. 집회 신고가 되어 있었음에도 경비업체와 동산병원 직원 등은 앰프를 발로 차고, 조합원의 사진기를 빼앗으려 했다. 천막 농성장을 완전히 망가뜨린 이들은 오전 11시 반이 돼서야 병원 안으로 철수했다.

 

해고 노동자 "식당 외주화, 식사 질 저하로 이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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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병원 환자식당 앞 농성장 ⓒ 김연주

동산병원 환자식당 앞 농성장 ⓒ 김연주

공공노조 동산병원영양실분회 조합원 박경자(47)씨. 상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병원 안에 있는 환자식당 농성장으로 향한다. 오늘이 농성장 당번이란다. 천장에 아크릴 지붕을 얹어 햇빛이 그대로 비쳐드는 환자식당 통로의 한쪽. 해고노동자들은 스티로폼 위에 돗자리를 깐 두 평 남짓한 농성장에서 유난히 더웠던 폭염의 여름을 보냈다. 농성장을 감시하는 경비업체 직원이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무전기를 든 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해고자에게 추석 명절이 있습니까."


오는 추석을 어떻게 보내실 거냐는 물음에 그가 답했다. "추석은 추석이고, 우리는 농성장을 지켜야지요"한다.


"이 병원 식당에서 9년 일했어요. 처음엔 정규직·비정규직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비록 우리가 사회에서는 하류 인생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동산병원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식품위생법 12조에 따르면 '집단급식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면서 특정 다수인에게 계속하여 음식물을 공급하는 곳'으로 '기숙사, 학교, 병원, 기타 후생기관 등'이 이에 속한다. 매 끼마다 평균 7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했던 박씨는 식당 외주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식당이 외주화 되면서, 자발적으로 출근 시간을 1시간 당겨 오전 5시에 와도 아침 배식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졌어요. 항상 재료가 부족해서 조리하다가 서문시장 가서 장 봐오고… 환자 식당이 직영일 땐, 과일도 제철 과일을 냈고 재료가 모자라는 적이 없었어요. 모든 식재료를 지역에서 생산된 걸로 사다 썼어요. 지역 경제를 살리는 거죠. 그런데 외주를 주면서 풀무원 본사에서 식재료가 다 내려왔어요. 이건 지역민들 덕분에 운영되는 병원이 지역을 배신하는 거예요."


안타까움과 분노를 숨기지 못한 그는 말을 이었다.


"당뇨 환자들이 내가 왜 이 음식을 먹어야 하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을 해줘야 해요. 그만큼 이 일은 전문직이에요. 치료식에 대해서 내가 완벽하게 알아야 되기 때문에 혼자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런 우리가 해고 당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박씨는 "용역업체에서 파견 나온 임시직 노동자들이 환자식을 조리하고 배식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식사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전문 영양사 9명...식사 질에 문제 없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입원 환자 김아무개씨(57) 등은 "병원 환자식에 반찬이 다섯 가지 정도 나오지만 먹을 게 별로 없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하청 업체가 밥을 거저 해줄리 없다, 밥은 당연히 병원에서 해야 제대로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환자식당 외주화 이후 배식 시간이 불규칙해졌으며, 무균실 병동에 유산균 음료가 나오거나 정신병동에 젓가락이 지급되는 등 다단계 하청으로 인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병원 측의 의견은 이와 달랐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이 입맛이 없을 수 있다. 지금 환자식당의 전문 영양사가 9명이다. 식사 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 외주화로 남는 수입은 영양사의 임금 지불과 배식카 구입비, 시설 운영비로 사용된다"며 "식당 노동자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농성을 하면서 직영운영 전면 실시, 임금 인상 등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후 2시. 다시 동산병원 외래병동 앞.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의료연대 경북대분회 등 대책위 소속 20여 개 단체 5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막농성장 폭력침탈'을 규탄하는 집회가 시작되었다. 공공노조 손소희 활동가는 "병원 안에서 수많은 용역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며 "병원 측이 욕설을 하고 탄압을 하더라도, 그에 지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이 투쟁에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산병원 영양실분회 신순이(45) 조직부장은 "나도, 이웃들도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언제 이 병원에 신세를 질지 모른다. 그때 지금 같은 병원 밥을 어떻게 먹겠나. 그걸 막기 위해 여기서 더 열심히 싸울 것"이라며 결의를 밝혔다. 그는 "해고장을 받고서 우리 아니면 누가 밥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투쟁 이기라고 응원해주시는 환자분들이 많다. 꼭 이겨서 밥 잘 해드리겠습니다, 했던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규탄 집회를 마치고, 오후 3시에 이르러 가을 하늘빛처럼 파란 새 천막이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에 다시 세워졌다. 올해로 병원 건립 111주년을 맞은 동산병원. 1백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지역의 수많은 이들의 아픈 몸을 치료해왔다. '나눔과 섬김, 믿음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이 병원에 환자와 노동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평화가 다시 찾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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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침탈 규탄 집회 ⓒ 김연주

천막농성장 침탈 규탄 집회 ⓒ 김연주
2010.09.11 17:54 ⓒ 2010 OhmyNews
#동산병원 #직접고용 #외주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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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을 알리기 위해 가입했습니다. 평택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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