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쌀 지원, 제대로 된 인도주의에 근거해야...

등록 2010.09.17 20:29수정 2010.09.18 14:41
0
원고료로 응원
정부가 북한에 수해지원 차원에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쌀 5천 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론은 물론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도 더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일부 여당 의원들은 쌀 지원 확대를 막기 위해 미리 조치를 취하려는 모습이다. 북한에 쌀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해하는 많은 여당 의원들의 의견을 대변하듯 정옥임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17일 씨비에스(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 식량 지원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군량미 전용 우려는 물론 인도주의와 인권 문제를 연결시키면서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북한 쌀 지원이 정당성이 없음을 피력하려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현재로선 북한 쌀 지원이 힘들다는 것을 주장하려 했지만 발언의 내용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결국 북한이 맘에 들지 않으니 북한에는 쌀을 지원할 수 없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재고가 많기 때문에 북한에 쌀 지원을 해야 된다는 것은 인도주의의 취지하고는 좀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재고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서 농민의 시름을 잠재워 드리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은 쌀을 북한에 보낸다, 그러면 받는 쪽에서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조금 그렇구요."

위의 언급처럼 정부가 단지 쌀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북한 수해지원을 명목으로 쌀 5천 톤을 보내기로 했다면, 또한 향후 쌀 지원의 확대도 재고량 감축 목적이 우선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의 말대로 인도적 지원은 남는 것을 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의 경우는 남한에서는 충분한 생산으로 여유가 있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쌀 생산량이 적은 북한에서는 항상 부족한 주식이다. 그러니 천만다행으로 양쪽의 필요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남한에 쌀이 충분하지 않다면 이번 수해지원과 관련해 북한이 남한에 쌀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 점은 양측에 모두 이해가 된 사항이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쌀을 보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상황인식이 부족하거나 국민을 호도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굶어죽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 충분한 음식이 있는데도 나눠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얘기를 신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북한에 보내기로 한 쌀 5천 톤은 쌀 재고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향후 정부가 쌀 지원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적정 비축량을 축내면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올해 말까지 쌓이게 될 쌀 재고량은 적정 비축량(72만 톤)의 배가 넘는 149만 톤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북한에 쌀 5천 톤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정부가 추가 쌀 지원을 결정한다 해도 이전 정부들처럼 당장 40만-50만 톤씩 지원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쌀 지원을 대폭 확대할 의지도 없고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북한 쌀 지원을 재고량 감소와 연결시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지난 몇 년간 이웃인 북한의 식량 부족을 외면하다가 현 정부 들어 처음 수해지원 명목으로 쌀을 보내기로 했지만 이전 정부들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적은 규모의 쌀을 보내면서 향후 쌀 지원이 확대될까봐 이런저런 논리를 만들려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북한에게는 결국 남아도는 것도 주기 싫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릴 것이다. 정말 비인도적인 태도다.

"인도주의적 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북한의 인민들에게 가는 그런 지원인 만큼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죠. 그런데 보통 이런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때에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인권문제랑 상당히 깊이 연동이 돼가지고 인권도 개선하면서 인도주의적 지원이 대량으로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북한에는) 실제로 그런 일이 별로 없었죠."

이 발언 또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인도주의에 근거한 지원은 정치적 목적을 동반하지 않는다. 인도적 지원은 인도적 재난에 처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며, 그들의 최소한의 먹고, 자고, 입을 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이뤄진다. 국제적으로 인도적 지원에 정치적 조건을 다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지진, 쓰나미, 전쟁 등 심각한 인도적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당장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해당 국가 정부의 도덕성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이 이뤄진다. 다만 정부들이 인도적 지원을 할 때는 드러내지는 않지만 흔히 정치적 고려가 동반될 수 있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정도다.

인도적 지원과 달리 개발 지원의 경우에는 인권 개선이나 부패 척결과 같은 조건을 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대홍수가 있었던 1995년 이후 계속해서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북한 수해지원도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계 해결을 돕기 위해 이뤄지는 인도적 지원으로 삶의 질 향상과 사회 환경 개선에 맞춰지는 개발 지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오해도 있다. 인도적 지원의 맥락에서 인권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식량, 입을 것, 그리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거처의 확보라는 기본적 인권의 보호다.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이 얘기한 인권 개선은 기본적 인권을 넘어선 인권 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 인도적 재난 상황에서는 꿈꾸는 것조차 힘든 수준의 인권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언급하면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식량의 확보라는 기본적인 인권은 무시하고 인권 향상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상황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인권 향상은 기본적 인권이 충족되고 난 후에 거론할 수 있는 문제다. 

"북한의 인민, 즉 노약자나 여성이나 어린아이들한테 가는 게 아니라, 인민들한테 가는 게 아니라 군의 비축미로 쓰인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의구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나름대로 전략적 고려를 하고, 그런 투명성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위의 발언은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동안 쌀이 군량미로 전용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쌀 지원을 못하고 있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앞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현 정부 들어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을 한 번도 하지 않다가 수해지원 명목으로 5천 톤 지원하는 것을 계기로 군량미 전용 의혹 문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뒤바뀐 느낌이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쌀 지원을 위해 장애물을 없애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고려한다면 먼저 결정을 하고 투명성 등 장애가 될 수 있는 문제는 북한과 정치적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정치적 고려를 배제시켜야 하는 인도적 지원을 언급하면서 전략적인 고려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인도주의와 인도적 지원의 의미를 호도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한식량지원 #대북 지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