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중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영웅 안중근 15] 둘째마당 - 하얼빈행 열차를 타다

등록 2010.10.08 14:53수정 2010.11.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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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중국 쑤이펀허, 하얼빈,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장춘, 다롄, 뤼순 등지를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흐레간 답사하였습니다. 귀국한 뒤 안중근 의사 순국날인 2010년 3월 26일에 맞춰 눈빛출판사에서 <영웅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영웅 안중근>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 이미 출판된 원고를 다소 손보아 재편집하고, 한정된 책의 지면 사정상 미처 넣지 못한 숱한 자료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2010년 11월 20일까지 43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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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역에 정차 중인 시베리아행 열차 ⓒ 박도


평양관

15: 30, 아침을 늦게 먹은 탓으로 느지막이 점심을 먹고자 밥집을 가는데 조씨는 평양관으로 안내하려 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남북한 동포들이 함께 살고 있기에 영사관도, 밥집도, 남북한 모두 있다고 했다.

나는 어제 서울관에서 먹었기에 오늘 평양관에서 먹는 것도 괜찮겠다고 조씨 제의에 동의했다. 밥집은 한가한 시간이었는데 우리가 들어가자 귀에 익은 '반갑습니다'라는 노래가 금세 나왔다. 서울관에서 먹은 음식은 어딘가 느끼했는데 평양관에서 먹은 남새볶음밥 맛은 담백했다. 분단 반세기가 넘자 음식에서도 남북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조씨는 나의 저녁밥 준비로 김밥 2인분을 사고는 슈퍼에서 생수 큰 병 하나와 같이 포장해 내 가방에 담아 주었다. 나중에 그 물병과 김밥이 그렇게 요긴할 수야. 그때 나도 그의 정성이 고마워 내 주머니에 남은 루블 지폐는 물론 동전까지 남기지 않고 몽땅 그에게 건넸다. 그것도 나중에 큰 화근이었다. 인생은 모르면 그저 시행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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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역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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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역 플랫폼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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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역 육교에서 바라본 항구 ⓒ 박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승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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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역 광장의 레닌동상 ⓒ 박도

16: 20,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 건너편에는 레닌이 대머리에 비둘기 똥을 잔뜩 맞은 채 서 있었고, 아름다운 블라디보스토크 역 대합실은 러시아 전통 벽화와 전등으로 장식하여 우아하게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시베리아철도의 극동 출발점이다. 플랫폼에 나가자 25량의 객차를 단 열차가 막 들어서는데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탈 객차 번호는 21번으로 애초 내가 선 곳은 앞쪽이라 뒤로 갔으나 20번 다음 22번 객차라 당황했더니 맨 뒤 칸에 21번이 붙어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나 종래 공산주의 국가를 여행해 보면 대체로 관리들이 무뚝뚝하고 친절성이 매우 부족하다. 열차에 오를 때까지 조씨가 곁에서 보살펴 줘 사흘간 언어 불통에 따른 고생은 면할 수 있었다.

16: 30, 러시아 여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객차에 올랐다. 지정된 객실로 가니 4인 침대칸인데 나 혼자였다. 출발시간이 가까웠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번 답사 여행은 계속 행운이 뒤따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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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역 플랫폼에 전시하고 있는 한 세기 전의 증기기관차 ⓒ 박도


열차가 떠날 때 차창으로 조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면서 문이 열린 다른 객실을 둘러보아도 21번 객차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하늘색 제복을 입은 여승무원 둘이 나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바보처럼 멍청히 서 있었더니 "영어는 좀 하느냐"고 물었다. "No speak english"라고 답하자 두 사람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웃었다.

그들은 나에게 제스처와 러시아 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주의를 주는데 아마도 열차가 정거장에 설 때는 화장실 사용을 하지 말라는 뜻 같았다. 나는 잘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답하며 손을 모아 잘 부탁한다는 제스처로 답했다. 그들도 잘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만국 공통어가 손짓 발짓임은 내 이미 익히 터득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르만'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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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5량을 달고 달리는 시베리아열차 ⓒ 박도

17: 00 열차가 소리도 없이 블라디보스토크 역 플랫폼을 벗어났다. 객차에 혼자 타고 간다는 것은 러시아 철도국에는 좀 미안했지만 나에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맨 뒤 칸이라 좌우 차창은 물론 열차 뒤 풍경까지 두루 마음대로 살필 수 있기에 더 더욱 좋았다.

여행 중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 더 없이 좋으련만 사실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원 객차에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의 승객 틈에 꼼짝달싹할 수 없이 오랜 여행을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사실 나는 좀 별난 편이다. 특히 답사 여행 중에는 차를 타고 가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별난 풍물을 보면 차를 세워 카메라에 담곤 하기에 집사람조차 나와 같이 다니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동행하면 상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에 가능한 답사여행은 혼자 다니는 편이다.

열차가 아무르만을 끼고 북으로 달리자 왼쪽 차창으로는 장관이 펼쳐졌다. 곧 수평선으로 넘어갈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열차 뒤로는 곧게 뻗은 시베리아 철도가 뒤따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체첸의 비애가 담긴 '백학'이 들려오는 듯하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를 찬미하는 이 노래는 약소민의 아픔이 물씬 묻은 노래다. 가사에는 '돌아오지 않은 병사'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꼭 일백년 전 열차를 이 길을 달렸던 안중근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전사'가 아닌가.

18: 00, 갑자기 차창에 비가 뿌렸다. 어둠으로 창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자 차창에는 내 얼굴이 점차 선명해졌다. 사나이로 태어나 할 일도 많지만 이 늘그막에도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버린 전사의 자취를 찾아가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갑자기 이번 답사 중에 죽어도 조금도 억울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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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만 풍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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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만의 낙조 ⓒ 박도


"나는 바보다"

19: 00 열차가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는 걸 보아 객차를 분리시키는 것 같았다. 소리가 잠잠해 그제야 밖을 내다보니 내가 탄 객차만 따로 분리시켜 역사 옆 외진 철로 위에 떨어뜨려 놓고 본 열차는 북으로 달렸다.

그 열차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인 모양으로 거기서 하바롭스크 방향으로 달리는 모양이었다. 곧 승무원이 왔다. 그들은 손짓 발짓에다 내 취재수첩에 숫자를 써가며 설명을 하는데 한참 들으니 이 객차는 여기서 머문 뒤 내일 아침 10시 20분에 이 역을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화장실 문을 다 잠갔으니까 용변이 보고 싶으면 자기들에게 말하면 역 구내 화장실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절대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순간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는 나머지 쓴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는 바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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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리스크 역 ⓒ 박도


우수리스크 역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3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철도가 국경도시 포브라니치나야를 지나 중국 목단강, 하얼빈으로 가는 동만 철도와 갈라지는 교차점이기도 하다. 이곳은 1870년 이래 한인 개척 이주지로 이상설이 작고할 1917년 무렵에는 일천여 호가 넘는 한인 밀집 지역이었다. 이와 같은 한인 사회를 배경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나는 별 수 없이 객차에 갇힌 채 평양관에서 산 김밥을 맛있게 먹고는 잠을 청했다. 무려 15시간을 우수리 역 철로 위 객차에서 갇혀 지내자면 잠보다 더 좋은 게 있겠는가.

안중근 행장 (11)

안중근은 이석산에게 강제로 여비를 빼앗다시피 마련하고는 동지 우덕순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갔다. 거기서 1909년 10월 21일 오전 8시 50분에 출발하는 우수리스크 역까지 3등 열차표 두 장을 산 뒤 열차에 올랐다. 동행 우덕순은 안중근이 목적지인 하얼빈까지 차표를 사면 더 값이 쌀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는가를 캐묻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가슴 속에는 브라우닝 8연발 권총을 깊숙이 품고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차창 밖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무르만 동쪽 기슭을 달리는 우편열차는 계속 북으로 향했다. 우덕순은 민요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자네의 <아리랑>은 언제 들어도 좋아."

맞은 편 안중근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노래에 취하더니 곧 잠이 들었다. 우덕순은 잠든 안중근을 바라보며 거사를 앞두고도 태연 담백한 그의 모습에 새삼 존경심이 우러났다.

1910년 10월 21일 오후 3시 6분, 완행 우편열차는 우수리스크에 도착하였다. 우수리스크에서 국경 포브라니치나야 행 열차가 오후 4시 8분에 출발하기에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내가 차표를 사올 테니 자네는 그대로 있어."

안중근은 승차권 판매소로 가서 차표를 사오고는 우덕순에게 이등 승차표를 내밀었다.

"잠을 자 둬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비싼 이등 차표를 샀구먼."
"아니, 쑤이펀허 세관에서는 이등객 이상의 짐은 검사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우덕순은 안중근의 세심함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안중근은 매사에 신중했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 행 표를 바로 사지 않고 중간 역 표를 샀다. 일본 고관의 하얼빈 방문을 눈앞에 둔 시점이라면 국경에서 엄중한 검사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들 가슴 깊숙한 곳에는 브라우닝 8연발 권총이 숨겨져 있지 아니한가. 그들은 이등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오후 4시 8분 열차가 출발했다. 차창 밖 이국 풍물에 취하다가 잠이 드는 등 그들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동청철도를 마냥 즐겼다.
- 사키류조의 <광야의 열사 안중근> 74~77쪽 요약 정리

이때 동지 우덕순을 불러 거사 계획을 비밀히 약속한 다음 각각 권총을 휴대하고, 곧 길을 떠나 기치를 타고 가면서 생각하니 두 사람이 다 러시아말을 전혀 모르므로 걱정이 적지 않았다. 
- <안응칠 역사>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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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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