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이야기

등록 2010.09.23 16:19수정 2010.09.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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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전날 밤 수도권을 중심으로 내린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어수선하게 보냈다. 고향에 도착한 뒤 곧바로 귀경한 사람도 많았다. 비상대기령이 내린 수도권 지역 공무원들이 그랬을 것이고 특히 저지대나 지하셋방 사는 사람들이 물이 가득 찼다는 급보를 받고 차례도 못 지내고 급히 상경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정전으로 활어들이 모두 폐사했고 재래시장 곳곳이 물난리로 추석대목은커녕 한 해 장사를 망치게 생겼다. 디자인 서울 운운하며 외형적 개발에 몰두했던 서울시는 집중호우에 견딜 수 있는 배수시설을 마련하지 못해 5~60년대나 있을 법한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언론을 통해 기상관측사상 최고 강우량이니 물 폭탄이니 하면서 애써 천재지변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직도 차례 준비는 며느리들의 몫

 

추석 전날 이런 어수선한 기상뉴스를 접하면서 이 땅의 며느리들은 다음날 추석 차례를 위해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조상님을 위해서 말이다. 간혹 민주가정이라며 남편도 함께 차례상을 준비한다는 뉴스가 있긴 하지만 명절 차례상을 준비하는 절대적인 시간이나 노력의 대부분은 며느리인 여성들의 몫이 대부분이다.

 

남편이 거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음식을 만들거나 부엌일이라는 게 평소 역할 분담이 되지 않고서는 어설프고 능률적이지도 못하다. 그래서 거들어주기를 바라느니 대개 여성들이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남편들은 조금 거들어주고는 같이 했다고 동네방네 떠든다. 그리고 아직도 지난 시절 못 먹고 살던 시절에 명절이 영양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처럼 과도한 차례음식을 준비하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동네 음식쓰레기통이 넘쳐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어슬렁거리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물론 추석 전날까지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아예 한 잔 걸치고 늦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유교적 전통에 따른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남자들은 제주가 되어 며느리들이 마련한 술과 음식을 조상들에게 올리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며느리들은 차례음식만이 아니라 전날 도착하여 떠나는 순간까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 끼니만 해도 가당찮은 일이다.

 

요즈음은 많이 나아졌지만 대체로 차례를 모시는 경우에도 여자들은 뒷전이다. 남자 중심이고 종(장)손 중심이다. 순서대로 술잔을 올리다 보면 첨잔이 되거나 아예 술 한 잔 몰리지 못하고 집단으로 절만 하고 끝난다. 어떤 집들은 아직도 여자들이 차례상에 절을 하지 않는 것을 풍습으로 여긴다.

 

벌초와 차례 전통의 약화

 

옛날에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귀신이 되기 전에 거의 식모가 되거나 종살이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점차 명절풍습도 바뀌고 있다. 도시에 나가 있는 자녀들 중 상당수가 먹고 살기가 어려워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명절은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는 대신 휴가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에 300만기의 묘가 무연고 묘지라고 할 정도로 벌초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전통도 약화되었다. 자식이 하나 아니면 둘인 조건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명절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유교적 전통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독신자가 늘어나고 딸만 둔 가정의 경우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 하에서 이어져 온 제사나 명절차례는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딸만 가진 부모들의 차례상

 

지금과 같은 유교식 전통의 차례문화라면 딸만 가진 조상들은 차례상을 받을 수 없다. 왜냐면 딸은 남편의 조상을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조상에 감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친지들이 모여 동질감을 확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다. 제사나 차례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나 생각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의식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딸만 가진 늙은 부모들이 차례를 지낼 수 없거나 아무런 도움 없이 외롭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사위가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처가를 방문하는 경우 명절 분위기가 지난 뒤다. 아들이 없는 가정의 경우 명절 때 며느리로서 시댁에 가는 것이 아니라 딸로서 친정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인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전국의 자동차 우측통행을 일시에 좌측통행으로 바꾸는 일만큼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명절이 귀경과 귀성의 교통지옥이 되고, 과소비와 낭비가 되고, 평등하지 못하게 며느리들의 노동만 강요된다면 결코 즐거울 수 없는 일이다.

2010.09.23 16:19 ⓒ 2010 OhmyNews
#추석 #차례상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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