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시험하는 중-러 '만만디' 국경 열차여행

[영웅 안중근 19] 셋째 마당 - 침략자의 심장을 꿰뚫다

등록 2010.10.17 16:37수정 2010.11.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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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중국 쑤이펀허, 하얼빈,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장춘, 다롄, 뤼순 등지를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흐레간 답사하였습니다. 귀국한 뒤 안중근 의사 순국날인 2010년 3월 26일에 맞춰 눈빛출판사에서 <영웅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영웅 안중근>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 이미 출판된 원고를 다소 손보아 재편집하고, 한정된 책의 지면 사정상 미처 넣지 못한 숱한 자료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2010년 11월 20일까지 43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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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이펀허 역 ⓒ 박도


쑤이펀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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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이펀허(수분하) 역을 알리는 플랫폼 기둥의 표지, 답사자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찾아가는 지명을 알리는 표지다. ⓒ 박도

17: 20, 중국 땅 쑤이펀허 역에 도착했다. 승무원이 객실로 와서 짐을 모두 싸들고 역으로 가 통관절차를 받으라고 했다. 또 한 번, 짐을 많이 싸들고 온 것을 후회했다.

다행히 승객도 적은 데다가 통관절차도 번거롭지 않아 17: 50분 다시 객차로 돌아왔다. 곧 남녀 두 사람이 내 객실 문을 두드리더니 중국 돈과 계산기를 흔들어 보였다.

쓰고 남은 러시아 돈을 중국 돈으로 바꾸라는 제스처로 알고서 주머니를 뒤지니 종이 돈 280루블과 동전 20루블 정도가 나왔다. 그들은 종이돈만 낚아채고는 50 위안을 주고는 동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쑤이펀허 역 플랫폼에는 '安全高效打造黃金通道'라는 글이 붉은 바탕에 황금색으로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내 옅은 한자 실력으로 풀이해 보니 "안전과 높은 효율은 황금을 만드는 길과 통한다"라는 말로 이해되었다. 러시아도 그랬지만 중국 전역은 온통 황금, 곧 돈과 부(富)를 표어로 많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문득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기는 지금 중국은 세계의 달러를 긁어모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인내심을 시험하는 열차여행

쑤이펀허에서 또 열차머리 기관차가 바뀌는 모양이었다. 객차를 앞으로 뒤로 끌더니 오던 철길과는 다른 철길에 세웠다. 승무원이 오더니 두 손을 귀에 대는 제스처로 나에게 자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마도 여기서 또 오래 묵을 예정인가 보았다. 연해주와 중국은 두 시간의 시차가 있기에 손목시계를 끄르고는 시침을 두 시간 앞으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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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이펀허 역 앞 언저리 ⓒ 박도

나는 안중근이 열차에서 내려 정대호가 머물렀다는 역 구내 선로 위에 있는 일등객차의 세관 숙소가 어디였을까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기도 했다.

또, 그날 정대호를 만나지 못하자 쑤이펀허 역 가까운 곳에 살았다는 한의사 유경집(劉敬緝)의 집이 어딜까 머릿속에 그리며 통관절차를 밟고자 역으로 오가면서, 돌아와서는 차창을 통해 쑤이펀허 역 앞 동네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 지금 쑤이펀허에서 일백년 전 그때를 제대로 증언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객차 안에서 쑤이펀허 역 언저리를 일대를 살피니 공장과 주택 굴뚝에서 노란, 또는 회색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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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이펀허 역 뒷편 마을로 저녁 준비로 석탄 연기가 자욱했다. ⓒ 박도


19: 40, 쑤이펀허 도착 4시간 20분 동안이나 꼼짝도 않은 채 그대로 역에 머물고 있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중국 - 러시아 '만만디' 국경 열차여행이었다. 승객 식사대책은 전혀 없는, 각자 미리 알아서 하라는 모양이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는 우수리스크 역에서 산 비스킷과 생수를 야금야금 먹으며 요기를 했다. 선물용으로 남겨둔 비스킷 한 봉지마저도 비상 대용식이 되었다. 이나마 준비치 않았더라면 객차 안에서 쫄딱 굶을 뻔했다. 여행지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으면 시행착오가 많기 마련이다. 아마도 우리 인생 길도 이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안중근 행장 (12회)

안중근과 우덕순이 탄 우편열차는 1910년 10월 21일 오후 9시 25분에 쑤이펀허에 도착했다. 하얼빈행 우편열차는 10시 30분에 발차한다.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안중근이 우덕순에게 말했다.

"여기서 한 사람이 새로 가담할는지도 몰라."
"내가 아는 사람인가?"
"글쎄, 아직 누구라고 정한 건 아니야. 아무래도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이 필요해."
"그건 그래."
"출발 전까지 돌아올 테니까 여기 꼼짝 말고 기다리게."
"알았네. 잘 다녀 와."

안중근은 먼저 세관 숙소로 갔다. 역 구내 선로에 있는 일등차가 세관원 숙소였다. 세관주사 정대호(鄭大鎬)는 진남포에서 청국의 무역사무소에 근무하여 알게 된 사이로, 1908년 9월에 단신으로 이곳에 부임하여 근무하고 있었다.

원래 정대호는 의병투쟁에 비판적이었다. 그저 가족과 더불어 지내면서 자녀 교육에 전념하는 것이 어른 된 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안중근이 1909년 6월에 정대호를 만났을 때 "자네도 처자를 불러들여 평온한 생활을 즐기는 게 어때?"라고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정대호는 진남포에 두고 온 아내 아려는 두 아들을 떠맡고 망연자실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했다.

그때 안중근은 정대호에게 "국가를 잊고 나 자신의 안락을 구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1909년 9월 안중근이 다시 쑤이펀허에서 정대호를 만났을 때는"자네가 진남포에 갔을 때, 내 아내가 이곳으로 오고 싶다면 데려다 주게"하고 부탁했다. 세관원 숙소에서 정대호를 찾았지만 관리인 중국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정씨는 휴기를 얻어 보름 전에 한국에 갔어요."
"무슨 일로 갔지?"
"가족을 데리러 갔는데 월말에는 돌아올 것 같아요."

안중근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역 가까이 있는 한의사 유경집을 찾았다. 안중근은 유경집을 정대호를 통해 알게 된 사이다.

안 의사가 하바롭스크에서 의병투쟁을 할 때 의견 차이로 한 동지에게 뺨을 맞아 귀병(중이염)을 앓았는데, 그때 쑤이펀허의 한의사 유경집에게 치료받은 적이 있었다.(이 부분 독립기념관 박민영 연구위원 증언)

"정대호가 제 처자를 데려오기 때문에 하얼빈으로 마중 가는 길입니다."

안중근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자네도 이제 정착한다니 다행일세. 부인과 아이들이 기뻐할 걸세."
"그런데 어르신, 제가 아내를 마중을 간다고 해도 하얼빈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러시아어도 몰라 걱정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아드님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데 저의 통역으로 붙여 주지 않겠습니까. 아드님 왕복 여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마침 잘 됐군. 하얼빈에서 약재를 사와야 하는데 아들이 어려서 혼자 보낼 수 있을까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유경집은 아들 유동하(劉東夏)를 불렀다, 열일곱 살로 몸집이 작고 앳된 얼굴 탓인지 어린아이같이 귀여웠다.

"빨리 하얼빈 갈 준비를 해. 그동안 사야 할 약재는 적어둘 테니."
"네? 하얼빈에 간다고요."

유동하는 영문도 모르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원산 태생으로 15세에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었다. 유동하가 금세 차비를 갖추고 나왔다.

"그럼 어르신, 아드님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가능한 빨리 돌려보내 주게나."
"네, 염려 마십시오."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83~87쪽 요약 정리

도중에 쑤이펀허에 이르러 유동하를 불러내어 부탁하기를 "지금 내가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얼빈으로 가는데, 내가 러시아 말을 몰라 답답하네. 자네가 거기에 같이 가서 통역을 해주고 여러 가지 일을 주선해 줄 수 있겠는가?" 하였더니 유(劉)의 말이 "나도 역시 약을 사러 하얼빈으로 가려는 참이라 같이 가는 것이 참 잘 된 일이오"하므로 곧 길을 떠나 동행케 되었다.
 - <안응칠 역사>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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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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