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찾으시나요? 이집 결함 많습니다"

집보러 오는 이에겐 말 못한 비밀, 고해성사합니다

등록 2010.09.29 15:50수정 2010.09.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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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던 전화가 요즘은 불이 나고 있다.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하루걸러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복덕방 대표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매번 공손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건다. 물론 그 대표가 살고 있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마천동이 아니다. 옆 동네 거여동이다. 우리 동네 전세금이 그곳보다 더 싸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자주 보러 오는 이유일 것이다.

전세 대란, 그래도 꼼꼼히 살피세요

사실 어떤 때는 짜증이 난다. 밖에 나갔다가도 집에 들어가야 하고, 또 집을 보러 올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셋도 뭔가 신이 난 듯 덩달아 야단법석일 때가 많다. 헌데 어떡하랴. 세입자로 사는 처지에 물리칠 수도 없는 노릇임을. 놀라운 건 2년 전 5500만 원에 살던 전세금이 6500만 원을 넘어 7000만 원이 다 된다는 거다. 나로서는 더 얹어줄 돈이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교회 안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고해성사를 하기 위함이다. 사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새로 살게 될 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집을 보러 와도 대부분 그것만을 확인한다. 방이 몇 개고, 얼마나 큰지, 화장실은 적당한지, 베란다는 있는지, 또 부엌은 잘 되어 있는지. 그 정도 선에서만 볼 뿐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는다. 나도 현재 살던 이 집을 둘러 볼 때 그랬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들어와 살고 있는 집은 다세대 연립 주택이다. 집을 보러 왔을 때 방도 두 개나 있었고, 거실 겸 부엌도 넓고 좋았고, 화장실도 쓰기에 넉넉했고, 뜻하지 않게 베란다도 있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대궐 같은 집이었다. 그것에 반해 덥석 계약을 해 버렸다.

헌데 며칠을 살다 보니 처음 대하던 그 좋던 마음은 완전 사라져 버렸다. 싱크대 밑에 있는 호스에서는 물이 새고 있었고, 싱크대 물을 사용하면 화장실 물이 졸졸졸 떨어졌고, 어쩌다 화장실 변기의 물이라도 내리면 온 사방의 물이 마비될 정도였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네


그건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보일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안방과 보일러는 벽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한 달 동안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보일러가 돌아갈 때마다 쇠를 갉아 먹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던 나는 수리를 하여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비용을 받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보일러와 관련해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1년 반 넘게 그 집에서 살고 있을 무렵, 보일러 호스에서 물이 새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하는 수 없이 보일러 분배기를 교체했고, 집 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집 주인이 새로 바뀌었던 것이다. 세입자로 사는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게 집 주인의 권한이라 하니,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결국 새주인과 힘겹게 연락이 닿았는데, 분배기를 교체한 비용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서야 받게 되었다.

지금은 문제가 없을까? 보일러를 점검했으니 보일러는 문제가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보일러는 낡고 닳았다는 게 문제다. 보일러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은 괜찮을까? 아니다. 난방과 온수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또 문제는 없나? 싱크대와 화장실 물을 한꺼번에 쓰기에는 여전히 짜증이 난다. 그것 때문에 여름철 수도사업소에서 공사비용을 절충해 보수공사를 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집 주인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보일러와 물만 해결되면 끝일까?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다세대연립 주택에는 다단계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거여동 어느 곳엔가 그 본부가 있다고 한다. 마천동에는 그곳을 본업삼아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그네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거처가 다세대 연립주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네들이 밤 12시까지도 잠을 자지 않고 밖에 나와 전화를 해댈 때가 많고, 여름철에는 새벽 1시까지도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말 못하는 냉가슴 세입자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떡하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러 오는 분들에게 줄줄이 그 상황을 이야기해 줄 수도 없는 노릇임을. 물론 집 주인과 부동산 대표에게는 이미 모든 설명을 마친 상태다. 그렇다면 부동산 대표는 집을 보러오는 이들에게 그걸 다 말해 주는 걸까? 그건 미지수다. 그걸 미리 이야기한다면 누구든 집을 보려고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하나하나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동산 대표가 그걸 좋아할 리 없을 것이고, 그랬다가는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에 세 들어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 전세금도 막연해질 수 있을 것 같고.

어떤가? 이게 비단 나만의 문제일까? 전세로 살다가 전세금을 받고 나가야 하는 세입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그들도 나처럼 답답한 사실을 토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 미안함 때문에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고해성사를 하려는 것이다. 부디 다세대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려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로 꼼꼼하게 집을 살폈으면 한다.
#전세금 #세입자 #다세세연립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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