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쓰러진 자리에 안중근 동판 새기자

[영웅 안중근 21] 셋째 마당 - 침략자의 심장을 꿰뚫다

등록 2010.10.21 09:59수정 2010.11.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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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경술국치 100년을 앞두고,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러시아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브라니치나야, 중국 쑤이펀허, 하얼빈,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장춘, 다롄, 뤼순 등지를 지난해 10월 26일부터 11월 3일까지 아흐레간 답사하였습니다. 귀국한 뒤 안중근 의사 순국날인 2010년 3월 26일에 맞춰 눈빛출판사에서 <영웅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습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에 즈음하여 <영웅 안중근>의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 이미 출판된 원고를 다소 손보아 재편집하고, 한정된 책의 지면 사정상 미처 넣지 못한 숱한 자료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2010년 11월 20일까지 43회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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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얼빈 역 ⓒ 박도


[제6일 2009년 10월 31일]

새벽 02:00, 잠에서 깼다. 열차는 헤이룽장 성 대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철거덩철거덩'거리는 소리로 짐작건대 어느 철교를 지나는 듯했다. 하지만 초행길이고 한밤중이라 어디를 지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기는 그 철교이름을 굳이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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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주는 홍차와 베이컨 ⓒ 박도

오전 06:00, 오랜만에 열차가 정차하기에 차창을 내다보니 '평산(平山)' 역이었다. 헤이룽장 성 지도를 펴보자 평산 역과 하얼빈 역은 그리 멀지 않았다. 세면실로 가 그새 무척 자란 수염도 깎고 얼굴도 닦았다.

승무원이 출입문을 두드리기에 문을 열자 활짝 웃으며 홍차와 빵, 그리고 베이컨 서너 조각을 담은 쟁반을 건넸다. 아마도 우수리스크에서 비스킷을 한 봉지 선물한 답례인가 보다. 세상만사 "Give and Take"이다.

이틀 간 비스킷에 생수만 마시다가 뜨거운 홍차에 빵과 베이컨을 먹자 꿀맛이었다. 쟁반을 비운 뒤 승무원실로 돌려주면서 승무원들의 이름을 묻자 '마리나'와 '시바에따'라고 했다. 기념으로 사진 한 컷 찍겠다고 했더니 두 여자 다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질겁하며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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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근교 고층아파트 앞의 자탄장 ⓒ 박도

어느 나라 여성이나 비슷했다. 여성들은 대체로 젊고 예쁘다면 좋아하고 얼굴화장에 몹시 신경을 썼다. 하기는 요즘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아성(阿城)'이라는 역에 열차가 정차하는데 창고건물에는 '火警119'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불조심 119'라는 뜻인가 보다. 도시가 클수록 고층아파트가 많았다. 지구촌 곳곳이 고층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다. 몇 해 전에 가본 압록강에 접한 단둥(丹東)도 온통 고층아파트로 강을 가렸다.

하얼빈 부근은 검은 유연탄 저장 터가 많았다. 철도 언저리 주택 굴뚝에서는 노랗거나 검은 석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도심에 가까울수록 고층아파트가 시야를 가렸다. 꼭 9년 만에 다시 찾는 하얼빈에는 그때보다 훨씬 고층아파트가 더 많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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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열차가 도착한 하얼빈 역 플랫폼 ⓒ 박도


마침내 하얼빈에 도착하다

하얼빈은 북만주 벌판, 동북 평원 중앙에 자리 잡는 헤이룽장 성 성도(省都)로 인구 550여 만의 도시다. '하얼빈(哈爾濱)'이란 지명은 여진족어로는 '명예', 만주어로는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 이 도시는 19세기 무렵까지는 송화강 연변에 어민이 옹기종기 몰려 살았던 자그마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작은 어촌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러시아가 동청 철도를 부설하여 교통 중심지가 된 이후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약 5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이미 정착하고 있는 러시아인들과 함께 러시아타운을 이루기도 했다. 지금도 하얼빈에 러시아 색깔이 짙게 남아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 하얼빈은 근대 중국 역사와 같은 풍운의 도시로, 청나라에서 러시아 점령시대를 거쳐 1932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점령지였다. 이 하얼빈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귀에 익게 된 것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플랫폼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장쾌하게 쓰러뜨린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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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까지 마중 나온 김우종 선생 ⓒ 박도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얼빈 하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연상케 한다. 또한, 이 도시는 일제강점기에 대륙침략 거점으로 남쪽 교외에는 인간 생체 실험을 한 마루타 부대(제731부대)가 있었던 음울한 곳으로, 겨울이면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북국의 고장이다.

오전 07: 45분, 열차 승차 뒤 꼬박 40시간 45분(시차 2시간 포함)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 생애에 가장 긴 열차 여행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끌거나 들고서 출구로 가는데 역 구내 계단에 낯익은 노인이 손을 번쩍 치켜들고 반겨 맞았다.

김우종(사학자, 헤이룽장성위당사연구소장)  선생이었다. 검은 오버코트와 털모자에 장갑을 낀 방한 복장으로 흡사 마오(毛) 주석 같은 모습이었다.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분하(쑤이펀허)를 거쳐 하얼빈에 오는 박 선생의 정성에 감읍했소."
"이른 아침에 마중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평생 숱한 하얼빈 답사자를 만났지만 선생처럼 해삼위에서부터 곧이곧대로 열차를 타고 온 이는 처음이오. 그 열정에 나도 여기까지 마중을 나오지 않을 수 없었소."

안 의사의 의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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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 거사 자리에서 권총 사격자세로 그날을 재현하는 김우종 선생 ⓒ 박도


우리는 곧장 거기서 멀지 않은 역 구내 안중근 의사의 의거 터로 갔다. 내가 처음으로 하얼빈을 답사했을 때인 1999년에는 의거 장소에 아무런 표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안중근이 총을 쏜 자리는 세모표로,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자리는 다이아몬드 꼴 표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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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가 총을 쏜 위치 표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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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위치 표지 ⓒ 박도


만주국 시절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안 의사의 총에 맞아 쓰러진 그 자리에다 1미터 높이로 유리 집을 지어놓고 전등을 켜서 표지를 해두었다고 하지만, 중국이 해방된 뒤 그 표지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하얼빈에 사는 민족혼을 지닌 우리 동포라면 어찌 그 지점을 지울 수 있으랴.

우리 겨레의 역사를 연구하는 서명훈 선생은 당신의 가슴속에 또렷이 그 표지를 새겨놓고 지난 역사를 증언했다. 서 선생은 당신이 발걸음으로 재면서 대합실 개찰구에서 정확히 5 간〔약 9미터〕거리 지점이 안 의사가 총을 쏜 자리요, 그때 안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사이의 거리는 2.5 간이라고, 당신이 발걸음으로 가늠하면서 우리 일행에게 정확한 지점을 알려주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서 선생의 증언으로 정확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이야 어찌 그 지점을 적확히 알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우리나라 국가보훈처나 광복회가 나서서 헤이룽장 성 인민정부의 양해 아래 이 자리에다 '안중근 의사 의거 터'라는 동판이라도 바닥에 새겨둔다면, 뒷사람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적확히 알리는 귀중한 기념물이 될 것이다.
- 박도 <항일유적답사기> 24쪽

아무튼 역사가 있는 의거 터가 새로이 표시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었다. 내 욕심 같아서는 그 바닥에 동판으로 '안중근의사의거구지(安重根義士義擧舊址)'라는 글씨까지도 새겨 놓았더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비단에 수를 놓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런 소망을 말하자 김우종 선생은 이 일을 성사하기 위해 중국 당국과 교섭하는데 많은 공이 들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이 일(동판 새기는 일)도 추진해 보겠다고 희망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김 선생은 "안중근 의사야말로 이념을 초월하여 남북한에서 다 함께 추앙하는 인물이다, 안 의사는 어디 흠 하나 없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매우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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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이토의 마지막 사열 장면을 재현하면서 거사 현장을 가리키고 있는 김우종 선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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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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