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안장된 '주체사상의 대부' 황장엽

MB의 '훈장'과 보수의 딜레마... "인간중심철학 가르쳐 준 큰 스승"

등록 2010.10.14 21:10수정 2010.10.1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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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2시 55분 경.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안장식이 시작됐다. ⓒ 심규상

14일 오후 2시 55분 경.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안장식이 시작됐다. ⓒ 심규상

"정일권 선생과 박정희 대통령은 동갑이면서 두 분이 군에서 선후배 사이였습니다만, 5·16후에는 외무장관 국무총리 공화당의장 국회의장직을 맡는 동안 박 대통령을 지성으로 보필하였습니다. 6·25 전란 중에는 나라를 지키는데 목숨을 걸고 앞장서 주셨고, 또한 개발시대에는 외교 분야에서 행정수반으로서 큰 업적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적을 외면 한 채 그분을 부정적인 말로 평가하려는 것은 온당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1월 당시 김종필 민자당 대표가 고인이 된 정일권 전 국무총리를 추모하기 위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 중 일부다. 박정희 정권 초기 6년 7개월 동안 '최장수' 국무총리를 지낸 정 전 총리는 1940년 일본 육사를 마치고 만주로 건너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박 전 대통령 아래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정일권 전 총리와 문익환 목사의 서로 다른 '마지막 길'

 

그러나 당시 김종필 대표는 1월 22일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거행된 영결식에서도 "선생이 남기신 훌륭한 발자취는 누가 뭐라고 말하든 언제까지나 살아서 빛날 것입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정 전 총리의 영결식과 같은 날 같은 시각, 한신대 교정에서는 고 문익환 목사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문익환형, 문형은 이 고난의 현실에 태어난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문형이 좋아하시던 윤동주의 서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사신 것이 그것입니다. 또 문형은 오늘날 우리들이 처한 이 고난의 현실에 가장 앞장 서 대결했다는 점에서 민족의 모범을 일구었습니다. 분단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굳혀가던 유신독재, 전두환 노태우 독재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민주화 물결을 저버렸습니까. 그러나 문형은 앞장 서 그 분단독재와 싸우셨습니다."

 

문 목사와 민주화 투쟁을 함께 했던 계훈제씨의 조사 중 일부이다. 계씨는 "문형은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며 "분단의 지뢰밭을 맨발로 넘나드는 동안 갖은 박해와 혹 비난도 받았지만 통일되는 그날까지 당당히 서계실 줄 알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1994년 1월 17일과 18일 하루 차이로 타계한 정 전 총리와 문 목사는 만주 용정의 광명중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두 고인의 장례식이 같은 날 치러졌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그들의 삶만큼이나 극단적으로 갈렸다. '사회장'을 치른 정 전 총리는 곧바로 국립묘지 장군묘역에, '겨레장'을 치른 문 목사는 노제를 통해 국민들과 작별을 고한 뒤 모란공원 민주투사묘역에 각각 안장됐다. 당시 두 고인에 대한 사후 평가는 엇갈렸지만, 두 고인의 장례식의 형태나 내용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일사천리로 결정된 '훈장'과 '현충원 안장'... 보수층도 "과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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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에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조의를 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14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에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조의를 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0일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이 14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통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북한 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주체사상의 대부'로 명성을 떨쳤던 황 전 비서는 1997년 탈북해 북한 정권 반대 활동을 해오다가 공교롭게도 김정은 3대 세습이 전 세계에 공표되던 북한의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마감했다.

 

이날 영결식이 끝난 뒤 황 전 비서의 유해는 운구차에 실려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됐다. 현행법 상 고인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훈장 추서 등을 추진하면서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지난 12일 이명박 정부는 황 전 비서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그 다음날 고인의 시신을 현충원에 안장하기로 결정하는 등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배경에는 "황장엽 선생은 역사의 아픔이지만, 고인에 대해 생전과 사후 모두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 안전하게 영면하실 수 있게 조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깔려있었다. 맹형규 행자부장관도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려 안보 태세 확립에 기여하고, 북한 민주화 발전과 개혁개방에 헌신한 것을 인정해 무궁화장을 추서했다"며 "국무회의에서도 이의 없이 훈장 추서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인의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고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대립했다. 특히 북한 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대부분의 삶을 북한 체제의 유지를 위해 보냈던 인물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이 적절하냐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훈장 추서나 국립묘지 안장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됐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전 비서에게 훈장이 추서된 것과 관련 "법령에는 국민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는데 무궁화장을 받을 공적이 있는지 의문을 표한다"고 말했다.

 

현충원 안장에 대해서도 정 최고위원은 "이 분은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닦았고 오늘날 북한 현실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남한에 와서 주체사상을 부정한 바가 없다"면서 "현충원에 안장된다면 대한민국 정체성에 혼란을 제기할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황 전 비서가 김정일 독재를 비판했지만 자신이 이론적 기반을 다진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사무총장도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무슨 훈장이다, 현충원 안장이다 하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며 "분단의 희생자로서 애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훈장이나 현충원 안장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일성 유일사상을 만들고, 노동계급 지배를 수령의 독재로 바꿔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향도 안 한 분이 대한민국 현충원에 안장된다?"고 반문한 뒤, "이참에 '현충원'에 혁명열사릉을 하나 만들죠"라고 꼬집었다.

 

보수성향인 <동아일보> 역시 14일 "'훈장·현충원 예우 과하지 않나' 右右 논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보수진영 일각에서도 '우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12일 주재한 당 국정감사 점검회의에서 일부 참석자는 '황 전 비서에 대한 정부의 훈장 추서는 부적절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 당직자가 전했다"며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독재를 공고히 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황 전 비서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면 참전용사나 국가유공자 유가족들의 반발을 사 보수진영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보수진영이 북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황 전 비서의 죽음을 활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보수진영 내에서도 정부의 대응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보수성향의 대북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부정적 여론 있는 것 잘 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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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4일 오후 3시 10분 경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됐다. ⓒ 심규상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4일 오후 3시 10분 경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됐다. ⓒ 심규상

이런 와중에 눈길을 끈 것은 이날 황 전 비서의 영결식에서 낭독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조사였다. 황 전 비서의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 전 의장은 "황장엽 선생님이 역사에 남을 두 가지의 큰 일을 하셨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둘째는, 황장엽 선생님이 개척하신 인간중심철학을 많은 분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황 선생님의 좌우명은 "개인의 생명보다 민족의 생명이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 전 인류의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세계공동체. 황 선생님은 후대들을 위해 그 꿈을 만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일생과 자신의 철학을 일치시키는 삶을 일관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이와 같은 '시대의 큰 스승'과 이별해야 하는 슬픈 시간에 와 있습니다."

 

실제로 황장엽 전 비서는 망명 이후 남한에서 주체사상을 더 개선해 파급시키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황 전 비서는 생전 마지막 강연이 된 지난 9월 30일 강연에서도 "믿을 것은 집단이며 개인이 죽어도 집단은 죽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가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자신이 이론의 토대를 구성한 주체사상을 옹호했다.

 

이날 영결식이 끝난 뒤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황 전 비서의 훈장과 현충원 안장 논란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 것을 잘 안다"며 "그것이 우리 민족의 아픔"이라고 일갈했다.

 

'주체사상의 대부', '배신자', '분단의 영웅', '탈북자의 아버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의 '훈장'이 불쏘시게 역할을 했다는 점도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한편 북한은 황장엽 전 비서의 영결식이 엄수된 14일 고인의 죽음을 두고 "하늘이 내린 저주"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황 전 비서가 사망하고 닷새 만에 나온 북한 측의 첫 반응인 셈이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배신자의 운명'이란 논평에서 "유례없는 고난의 시절이 닥쳐오자 우리 당과 제도를 등지고 혈붙이(피붙이)들까지 다 버린 채 일신의 향락과 안일을 찾아 남쪽으로 뺑소니쳤던 자"라며 황 전 비서를 맹렬히 비난했다.

 

북측은 이어 "일점혈육도 없는 타향의 차디찬 곳에서 누구도 모르게 명줄이 끊어졌으니 이보다 비참한 최후가 어디에 있겠느냐"며 그의 죽음을 조롱했다.

2010.10.14 21:10 ⓒ 2010 OhmyNews
#황장엽 #황장엽 훈장 #황장엽 현충원 #이명박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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