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장구에 미친' 경상도 가스나

광주 박순례 장구 교실 대표의 삶

등록 2010.10.17 14:00수정 2010.10.17 16:42
0
원고료로 응원
인생에 운명이란 것이 있을까?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숙명적인 관계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더구나 우리들 세상살이 속에서 이미 사라져가는 것들의 혼을 불러일으켜 세울 때, 고단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일을 꼭 해야만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또 운명이라고 여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래서 늘 순수하다. 자신이 계획하고 자신이 누리고 싶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을 밑바탕으로 하는 목적된 길을 가는 것이겠지만,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세상이 주는 영광과 부유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의 길과 인연이 많다.


10월 셋째주에 만난, 광주에서 장구교실을 열고 장구와 전통춤과 함께 살고 있는 박순례씨도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아닌가 싶다.

박순례씨의 고향은 전라도가 아닌 경상남도 진주다. 그녀는 왜 이곳 광주에 와서 장구와 인연을 맺고 살아야만 했을까? 그것은 전라도 사람들이 인정이 많고 사람이 좋아 20살 때 기타리스트 김기범씨에게 운명처럼 시집을 와서 살게 된 것이 인연이었다고 한다.   

a

박순례 설장구,노래가락장단,무용,장구춤 박순례 장구교실 대표 ⓒ 강형구


시집을 온 후로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18년 동안 모범적인 가정주부 역할만을 해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몸이 아프고 우울증 증세가 있어 시작한 것이 장구였다고 한다. 소리놀이라는 장구 가르치는 곳에 나가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장구에 신들린 듯 빠져 들었다.

"장구에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어떻게나 좋든지 하루 종일 장구만 쳤지요."

박순례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미쳐버려야 한다는 속설이 있듯이 박순례씨도 그렇게 장구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박순례씨가 장구에 매료되어 장구에 미친 사람처럼 장구를 치고 노력을 했던 것은 타고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6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난 박순례씨는 다섯 살 무렵 마을 할머니들 모여 노는 곳 앞에서 천 조각을 들고 무용을 하였는데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어도 춤을 곧잘 추었다고 한다. 살풀이 춤이었는지는 몰라도 춤을 추면 할머니들이 잘 춘다고 박수를 쳐주었고 또 당시 장구를 치는 할머니가 있어서 그 가락을 듣고 장구채를 들고 치면 그대로 쳤다고 한다.

굿거리장단이나 유행가 장단도 한번 들었다 하면 그대로 가락을 쳐냈던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춤과 장구와 인연이 깊었던 박순례씨는 광주로 시집오기 전 20살 무렵까지 계속 장구를 치고 춤을 췄던 것이다.

그런 타고난 재주를 세상에 풀어먹지 못하고 살림만 하고 살았기에 몸에 병이 난 것일까? 모처럼 장구를 다시 만난 박순례씨는 당시 장구를 1시간 공부하면 집에서 가까운 인적이 드문 산에 올라가 5시간 동안을 연습했다. 장구 소리만 들으면 기분이 좋았고 또 마음이 편안하고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소리놀이에서 4년 3개월 동안 배우고 나서 꽹과리와 장구에 뛰어난 실력을 소유하고 있는 문한준 선생에게 사사를 받고 내친김에 전통무용까지 배우게 된다.

전통무용은 한국의 살풀이춤의 1인자인 이매방 선생님의 제자인 박은하 선생님에게 풀이, 입춤, 장구춤, 한량무 등을 배웠다. 박순례씨는 우리 전통무용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전통무용 중에서 핵심적인 춤 10가지만 뽑아 한국무용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는 춤의 깊이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박 겉핥기식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춤의 묘미를 깊이 알 수 있는 전통무용을 되살려 우리 춤의 명맥을 올곧게 이어가는 길을 박순례씨는 고민하고 있다.

a

박순례 ⓒ 강형구


장구에 미친 여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장구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 공부를 하면서 해가 져야 내려오던 박순례씨의 장구공부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향림사 절에 들어가 1년간 장구 공부에 또 전념했던 것이다. 장구에는 우도가락 좌도가락이 있는데 그 우도가락을 또 공부했던 것이다.

박순례 장구교실에 장구며 전통춤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은 80여명쯤 된다. 교실 한 켠에 붙어있는 칠판에는 빽빽이 시간표가 숨 돌릴 틈 없이 적혀있다. 멀리 목포나 완도, 신안에서까지 장구와 무용을 배우러 온다. 이러한 결과는 오직 박순례씨가 끝없는 연습을 통해 이룩한 일이었다.    

a

박순례장구교실에서 장구 치는 단원들과 함께 ⓒ 강형구


서양춤, 서양의 악기, 서양의 음악이 우리 시대를 다 점령해 버린 듯싶어도 우리의 피 속에 면면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가락과 정서는 몇몇 선구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들의 밑바탕을 차지하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부산사람이 광주로 직장이 1년간 발령이 나서 근무하면서 장구교실에 와서 배우는데 부산에서는 배우고 싶어도 가르치는 곳이 없다고 해요. 부산에서 이렇게 장구교실을 열면 더 많은 학생들이 몰릴 거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그쪽에는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가락이며 춤이며 노래가 사장되어버린 것 같아요. 전라도 광주는 말 그대로 예향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가는 곳마다 그림이 있고 우리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참 좋은 곳이지요."

a

박순례장구교실 단원들과 시내공연하는모습 ⓒ 강형구


박순례씨의 광주 사랑은 끝이 없다. 경상도 사람이면서도 광주에 와서 우리 장구와 전통무용을 배워 계승, 보급하고 있으니 박순례씨는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셈이지 않겠는가. 그런만큼 해마다 열리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기념행사에도 애정이 많고 또 그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인데 해마다 5·18 행사다 하여 온통 즐거운 날인 양 축제를 벌이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일인 것 같아요. 그분들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 무력에 항거하여 맨몸으로 대항하다 죽었는데 그분들을 조용히 기리는 행사가 되어야지, 온통 먹고 마시고 시끄럽게 즐기는 건 숭고한 뜻을 간직하고 비명에 죽은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날에는 영령들의 진정한 뜻을 기리고 민주화에 대한 정신적 각성을 촉구하는 날로 경건하게 지내자는 박순례씨의 말은 그 뜻이 자꾸만 희미해져가고 있는 이때에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무용을 하고 장구를 치면서 항상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기에 박순례씨의 나이는 10년이나 더 젊게 보인다. 장구를 치면서 우울증을 나았고 또 건강하게 생활하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다 나에게 오라고 그래요. 장구치고 무용하고 하다보면 다 낫게 되요."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앓는 스트레스 우울증을 해소하는데도 장구나 전통무용이 특효약이라고 말하는 박순례씨의 말은 스스로가 겪은 일이기에 더욱 신뢰가 간다.

남도예술회관, 무각사,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서구문화센터에 장구교습을 출강하면서 그 수강생들을 한곳에 불러 장구를 가르치게 된 박순례씨는 어쩌면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의 가락과 춤을 현장 속에서 꽃피워내고 있는 살아있는 공로자가 아닐까 싶다.

밖으로 비치는 명예와 부와 화려함만을 쫓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록 거칠고 가난하지만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며 생활 속에다 자신의 예술혼을 뿌리 내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곧 한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도 광주 정신도 바로 그런 자기 헌신과 실천 속에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a

박순례장구교실 단원들과 함께 ⓒ 강형구


박순례씨의 마음에는 전라도네 경상도네 하는 우리 시대에 넘어야할 야만적인 지역감정이란 조금도 없다. 오직 사람과 장구와 춤과 만남만이 존재하고 있다. 전라도 남자가 좋아서 결혼해 광주에서 살게 되었고 또 장구를 배워 가르치는 장구교실의 선생이 되었다. 그런데다가 광주 사람이 아니면서도 더 광주 정신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제 1회 광주 서창 만들이 축제도 당당이 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장구와 함께 운명처럼 광주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장구가락 속에서 잊혀져가는 우리 조상들의 혼을 일깨워,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며 가락과 춤과 함께 혼연일체가 될 줄 아는 '물찬 제비' 경상도 가스나 박순례씨, 그 장구 가락과 멋들어진 춤사위에 무한한 감동 있으라!

덧붙이는 글 | 경상도 진주에서 태어나 예향 광주에서 당당히 장구교실의 선생으로 자기보다 나이 은 광주의 나이든 분들을 가르치며 사는 박순례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덧붙이는 글 경상도 진주에서 태어나 예향 광주에서 당당히 장구교실의 선생으로 자기보다 나이 은 광주의 나이든 분들을 가르치며 사는 박순례씨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장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