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째 내 생일은 '마음의 깁스'를 푸는 날

등록 2010.10.17 16:13수정 2010.10.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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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의 일이다. 지하철 계단에서 무리하게 점프를 하다가 다리를 헛딛는 바람에 데굴데굴 굴렀던 적이 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넘어진 채로 한동안 엎드려 있어야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야밤에, 정장을 입은 채로 엎드려 있는 내 모습이 타인의 눈에는 취객쯤으로 보였나 보다.

 

뒤늦게 현장에 온 승객들은 날,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슬금슬금 피해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차마 입밖으로 나오질 않던 "저, 좀 부축해 주세요"라는 말, 그렇게 가만히 엎드려 누군가가 먼저 손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깨달았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내게 손내밀어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참 단순한 사실 하나를 깨달은 난, 혼자서 땅을 짚고 일어나 깨금발을 하고 지하철을 탑승했다. 아픈 통증땜에 집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의사 선생님 왈. 얼른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리에 한 깁스만큼, 마음에도 깁스를 한 것 같았다.

 

그렇게 깁스를 하니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갑갑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것도 쉽게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 속상한 것은, 그 우울한 기간에 오늘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28번째 내 생일, 마음의 깁스를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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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째 생일. ⓒ 곽진성

28번째 생일. ⓒ 곽진성

오늘 17일, 일요일은 28번째 내 생일이다. 내게 있어 오늘은 365일 중, 단 하루뿐인 특별한 날이지만 기분은 유난스럽지 않다. 파티를 하자는 작년 이맘때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치료를 받으며 담담히 생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미리 생일 파티도 하고, 맘에 쏙 드는 선물도 받았건만, 오늘은 유독 '축하해'라는 인사 한 마디가 그리워지는 하루다. 하지만 문자 메시지함은 비어있고, 평소엔 자주오던 전화 한 통 없다. 그래서 어느 CF 광고처럼 '오늘이 내 생일이야'를 떠들고 싶어지는 하루.

 

하지만 안면있는 사람한테 차마 그럴 용기는 없고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생일 축하'에 관한 이야기를 투덜거리고, 반강제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얻어낼 요량을 부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지나친 욕심이다. 친한 친구의 생일에 '남자끼리 뭔 축하?'라고 모른체하고, 아는 동생의 생일은 바쁘다는 이유로 잊었던 내가, 꼼수를 부려 '생일 축하' 받을 생각을 한 것에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생각 속에 문득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넘어져 다리에 깁스를 했던 그때처럼, 난 항상 누군가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니, 내 자신의 소홀함으로 인해 아직도 마음의 깁스를 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싸운 친구, 연락이 뜸해진 지인 그리고 아직 어색한 사이인 동생, 어쩌면 그들과의 불편한 사이가 내 마음에 기약없는 깁스를 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식이 궁금했으면서도 먼저 안부를 묻는 '용기'가 없어서 멀어졌던 사람들.

 

그래서 작은 다짐을 한다. 앞으로는 먼저 손 내밀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축하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오늘 28번째 생일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 마음이 통한 것일까? 글을 쓰고 핸드폰을 보니 문자 메시지 하나가 기분 좋게 도착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생일 축하' 메시지일까? 괜한 기대에 마음이 들뜬다. 사소한 문자 하나인데도 말이다.

 

덕분에 우울했던 아침은 한결 설레는 오후로 변해 지나가고 있다. 2010년 10월 17일. 오늘 28번째 내 생일은 다리 깁스보다 먼저 마음의 깁스를 푸는 날이 될 것 같다. 

#생일 #28번째 생일 #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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