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오류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오류다

[서평] 이어령, 그리고 이어령의 <이것이 한국이다>

등록 2010.10.27 17:05수정 2010.10.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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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칼럼은 세 번씩 놀래킨다

이어령의 칼럼은 읽는 이를 세 번씩 놀라게 한다. 우선 제목이다. 1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목차를 보자. "윷놀이의 비극성," "백의 시비," "춘향과 헬렌," "피라밋과 신라 오릉" 등은 겨우 몇 예일 뿐이다. 2부의 <한국인을 위한 칵테일파티>에 가면 점입가경이다. "드롭스와 스태미너," "왼손잡이와 독탕," "친절 무용론," "독서 무용론," "뉴스 부재론," 등 끝없을 듯 이어진다. 매우 자극적이다. 이런 글제를 보면 일단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는 호기심을 일으킨다. (아마 이정도의 간략한 소개만으로 벌써 호기심을 갖고 그의 책을 찾는 이도 있으리라.)


둘째는 소재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인의 느낌과 경험은 물론 광범위한 자료가 동원된다. 특히 놀라운 건 인용의 범위다. 호메로스에서 박제가와 야나기 무네요시 등을 거쳐 월트 디즈니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헌 인용에는 거침이 없다. 불과 2-3쪽의 칼럼이라도 거기 언급된 이어령의 인용문헌은 많고 다양하다. 사서삼경과 후한서, 일리어드와 신통기를 자유롭게 인용하고, 이순신과 윤선도와 박지원과 이익 등도 자주 불러낸다. 20세기 저자로 타고르와 임어당과 앙드레 모로와 윈스턴 처칠, 심지어 다소 낯선 미국의 사업가 겸 행정가 맥켈로까지 동원된다. 한마디로 그의 자료와 기억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결론이다. 동떨어져 보이는 소재들을 한데 얽어서 내놓은 결론이 놀랍다. 때로는 감탄스럽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도 있기는 하다. 예컨대 수청을 거부하다가 사또 앞에 널부러진 춘향에게 감탄하는 한국인과 밤이면 트로이 왕자와 잠자리를 즐기면서도 낮이면 성벽 위에서 그리스 병사들을 내려다보던 헬레네에 경탄하는 서양인들을 비교하면서 저자는 한국에서는 "선한 것이 곧 미였으며 추한 것이 곧 악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 이상의 <권태>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관찰과 패이디먼과 파푸아 뉴기니의 뉴아일랜드 풍습을 한데 묶어서 "완구가 없는 역사, 그것은 미래가 없는 역사와 다를 것이 없다"고 단정한다.

그래서 <이것이 한국이다>는 글마다 충격의 연속이다. 제목에 놀라고 문헌에 놀라고 결론에 놀란다. 이어령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한국과 한국인을 너무 몰랐다. 예컨대 "은근하다"고 알려진 한국인의 정서는 "미덕이면서도 동시에 악덕일 수 있"으며 한국인들의 삶은 "숭늉처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삶"이었을 뿐 아니라 "흰옷을 즐겨 입은 것은 운명애와 순응의 그 슬픈 풍속"에 불과하다.

이어령 시각에는 맹점(盲點)이 있다

그러나 이어령 칼럼글을 돋보이게 하는 바로 그 요소가 글의 힘을 죽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과유불급. 오바가 심하다는 말이다. 튀는 제목이야 뭐라 할 수 없다. 문학적 배경 못지않게 저널리즘 배경이 강한 저자로서는 그게 몸에 밴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재와 결론의 오바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이어령이 동원하는 문헌은 동서양과 고금을 종횡하지만 거기에는 눈의 맹점처럼 빠진 게 있다. 그의 글에는 동시대 한국인 저자들의 인용이 거의 없다. 20세기 전반의 문인 중 몇은 이름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나마 본문이 아니라 난하주로 처리되곤 했다. 그와 동시대 한국인 학자나 문필가들의 이름은 거의 없다. 이건 사뭇 재미있는 점인데 그것은 저자의 소속감과 시각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해부하는 이어령의 문장은 대체로 "외국은 이러이러한데 우리는 저러저러하다"는 것이다. 그 외국은 때로 중국이나 일본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서양이다. 그리고 이어령의 서양은 주로 서유럽과 북미의 나라들을 가리킨다. 멕시코나 브라질이나 에집트나 이스라엘도 때로 등장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동등비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준이 특정 서양일 때는 대개 한국이 모자라거나 못났으니 고쳐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물론 당시 대부분의 학자와 문인들이 그랬고, 일부는 아직도 그러고 있기는 하다.

이어령의 우열 비교가 그 자체로 옳으니 그르니의 문제는 제쳐두자.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비교의 틈바구니에서 이어령이 차지하는 입지다. 그는 다른 한국인들처럼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그 "우리" 속에 자신은 포함되는 것일까?

나는 <이것이 한국이다>를 읽으면서 내내 "크레테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사악한 짐승이고, 먹을 것만 찾는 게으름뱅이"라고 했다는 크레테 출신의 에피메니데스를 떠올렸다. 이발사의 역설 혹은 거짓말장이 역설이라고도 알려진 이런 식의 진술은 결말이 똑같다. 그의 말이 참이라면 그의 말은 거짓이게 된다. 이어령 역시 한국인이며 그가 비판하는 한국 문화에서 길러진 사람이라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그의 해석과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일까?

이어령이 에피메니데스 역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와 의견이 다른 한국 저자들의 의견을 검토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 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문인과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고 검토했다면 역설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판의 맥락이 아니면 동시대 저자들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제 머리를 스스로 깎을 수도 없고 안 깎을 수도 없는 역설에 빠져든 것이다. 역설은 재미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중이 제 머리 깎는 역설을 해결하기는커녕 이어령은 아예 모순으로 내닫기도 한다. <독서 무용론>이 그렇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책을 읽어 봤자 잘 사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책을 읽고 교양을 쌓으면 오히려 더 험한 꼴을 당한다고 했다. 그래서 독서주간에 열렸던 한 강연회에서 책 읽기를 말리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되고 싶다는 즉흥 강연을 했던 일화도 곁들였다. 이 정도면 문화혁명 시절의 마오쩌뚱 못지않은 독서무용론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는 왜 30여권이 넘는 책을 썼을까? 그는 지금도 일반 대중을 겨냥해서 21세기에도 잘 사는 법에 대한 글을 왕성히 쓰고 있다. 모순이다. 그러니 그의 글이 힘이 있겠는가.

역설과 모순, 그리고 유식한 무식의 문제

결론의 오바도 자주 눈에 띤다. 춘향과 헬렌을 뽑아서 비교하는 것은 저자의 자유다. 완구의 존재 여부로 한 나라와 문화의 미래를 점치는 것도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걸 너무나도 현란하고 능수능란하게 극단으로 몰고 가니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연상시킨다) 읽는 이들은 마치 그것이 검증된 지식인 듯 착각한다. 물론 단 두 개의 고전을 비교해서 미추와 선악이 혼재된 문화와 분리된 문화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완구의 존재여부로 한 문화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과학 방법에 대입해 보자면 이어령은 관찰을 통해 가설을 제기한 것이다. 그 가설을 검증해서 진위를 가리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예컨대 중세 서유럽의 마돈나는 선(善)과 미(美)뿐 아니라 성(聖)까지 한 몸에 혼재시키면서 존경을 받았고, 현대 미국의 마돈나는 미(美)와 성(性)과 예(藝)를 잘 섞어 보여줌으로써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완구와 미래가 없던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각각 5백년인 데, 일찌기 완구와 미래가 있었던 이집트 32개 왕조의 평균 지속 기간이 1백40년이며, 완구와 미래의 제국이던 로마의 지속 기간 역시 고려나 조선과 비슷한 5백년이었다. 저자가 빠뜨린 이런 증거들을 보충한 후에도 미추-선악 혼재 가설과 완구-미래 연계 가설이 여전히 그럴 듯하게 보일까?

가벼운 칼럼, 혹은 문학적 감수성으로 쓴 글에다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고 나무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이어령이 먼저다. 그는 <메밀 꽃 필 무렵>의 작가나 비평가들이 다같이 "실증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결여"됐다고 했다. 그는 "이효석과 같은 대표적인 작가가 그런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 '왼손잡이'가 과연 유전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검토도 해 보지 않고 의심도 없이 그냥 단정을 내렸는가"고 꼬집었다. "또 많은 평론가들은 일말의 회의도 없이 '좌수유전설'을 그대로 프리패스 시켰느냐"고 질타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작품이 발표된 지 몇 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비단 이효석의 오류라고하기보다는 우리 전체의 오류"라고 하면서 한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분히 관념적"이며 "풍문 속에서 지내왔고 공상 속에서 살아왔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왼손잡이는 유전하는 것이 아니다"는 이어령의 확신은 오류다. 멘델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다소 복잡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왼손잡이는 유전한다. 2007년 클라이드 프랭크스(Clyde Francks)가 이끄는 옥스포드 대학 연구팀이 왼손잡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발견해 낸 바 있지만, 그 이전에도 부모가 왼손잡이면 자식이 왼손잡이일 확률이 높다고 밝힌 가계 연구와 쌍동이 연구 등 통계학적 연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외국뿐 아니다. 최근 동신대 정화식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인간공학(Ergonomics)>에 발표한 논문에서, 부모 모두 오른손잡이일 때 왼손잡이 자녀는 3.3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아버지가 왼손잡이일 때 49.5퍼센트, 어머니가 왼손잡이일 때 31.6퍼센트였다고 밝혔다. 부모가 왼손잡이면 자식이 왼손잡이일 확률이 10배나 15배쯤 높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이 수치를 제시하기 전이라고 해서 이효석과 비평가들과 독자들이 세월과 경험을 통해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이어령 가설 검증은 지금부터라고 본다

이어령은 <이것이 한국이다>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많은 문화적 가설을 제기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 몇 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가설들을 검증하지 않고 그저 감탄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비단 이어령의 오류라고 하기 보다는 "우리 전체의 오류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따지는 습관과 훈련이 너나 할 것 없이 다분히 관념적"이라는 이어령의 역설적 주장이 사실임을 가리키는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

(평미레, 2010/10/26)

덧붙이는 글 | (신간이 날마다 쏟아지는데 구간을 읽고 있다. 오랜 타국 생활로 놓친 책들이 많아서다. 헌책방(전주 <헌책바다>, 서울 <고구마>, 일산 <집현전> 등)에 주문한 책이 택배로 도착하는 대로 읽다보니 독서 계획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잡히는대로 지난 주 읽은 것이 1986년 문학사상사가 펴낸 이어령의 <이것이 한국이다>다. 1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경향 신문 연재 칼럼을 모은 것이라는 데 이미 단행본으로 출판됐던 것이다. 이후에 쓴 칼럼 글들을 2부 <한국인을 위한 칵테일파티>이라는 부제로 모으고 1부와 합쳐서 <이것이 한국이다>로 다시 펴낸 것이다.

따로따로 쓴 칼럼 글들이지만 나는 어떤 일관성을 찾아보고 싶어서 정독하기로 했고, 덕분에 많은 세부사항을 배우면서도 전체적인 그림은 달리 그리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글은 이어령 한국학 (문학이 아닌) 비평의 서론 격이고, 앞으로 일 년간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개 이상 한국학 책 읽은 글을 쓰기로 한 다짐의 첫 번째 결과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신간이 날마다 쏟아지는데 구간을 읽고 있다. 오랜 타국 생활로 놓친 책들이 많아서다. 헌책방(전주 <헌책바다>, 서울 <고구마>, 일산 <집현전> 등)에 주문한 책이 택배로 도착하는 대로 읽다보니 독서 계획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잡히는대로 지난 주 읽은 것이 1986년 문학사상사가 펴낸 이어령의 <이것이 한국이다>다. 1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경향 신문 연재 칼럼을 모은 것이라는 데 이미 단행본으로 출판됐던 것이다. 이후에 쓴 칼럼 글들을 2부 <한국인을 위한 칵테일파티>이라는 부제로 모으고 1부와 합쳐서 <이것이 한국이다>로 다시 펴낸 것이다.

따로따로 쓴 칼럼 글들이지만 나는 어떤 일관성을 찾아보고 싶어서 정독하기로 했고, 덕분에 많은 세부사항을 배우면서도 전체적인 그림은 달리 그리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글은 이어령 한국학 (문학이 아닌) 비평의 서론 격이고, 앞으로 일 년간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개 이상 한국학 책 읽은 글을 쓰기로 한 다짐의 첫 번째 결과이기도 하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 이것이 한국이다

이어령 지음,
문학사상사, 1996


#이어령 #뜻철학 #평미레 #한국한 #인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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