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이 쓰레기통에...피가 거꾸로 솟았다

전태일열사 40주기 '거리문화예술전' 작품 강제 철거... 공단 "이런 거였으면 허가 안해"

등록 2010.11.05 16:58수정 2010.11.05 16:58
0
원고료로 응원
서울시설관리공단(이사장 이용선, 이하 공단)이 전태일 열사 40주기 문화예술행사의 하나로 전시된 시사만화 작품들을 무단으로 강제철거해 논란이 되고 있다.
 

파견미술가들과 시사만화가들은 지난 10월 30일 전태일열사 40주기 '거리문화예술전'에 전태일 열사를 그린 인물 초상화와 캐리커처 작품 모음인 '엄마를 부탁해', 청년실업과 비정규노동문제 등을 다룬 시사만화작품들을 전시했다.

 

설치를 하는 날에도 "민원이 들어왔다"며 시설관리본부(본부장 남정윤) 청계천관리소(관리처장 강신정) 상황실에서 사람들이 나와 보고, 인근 파출소 경찰들까지 출동했다. 그러나 이미 신고를 했고 허가를 받아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그냥 작은 소란으로 끝나고 작품이 설치됐다.

 

하지만 하루 만에 공단 측은 이 작품들 중 시사만화 작품들을 통보도 없이 강제철거했다.

 

a

전태일 40주기 문화예술제 작품설치후 전태일 40주기 문화예술제 작품설치후 분위기가 좋았다.지나는 사람들이 살펴보고 사진도 찍는 모습에 은근히 기분도 좋았다. ⓒ 전미영

▲ 전태일 40주기 문화예술제 작품설치후 전태일 40주기 문화예술제 작품설치후 분위기가 좋았다.지나는 사람들이 살펴보고 사진도 찍는 모습에 은근히 기분도 좋았다. ⓒ 전미영

 

a

전태일 40주기 문화예술제 작품들이 강제철거된 모습 다음 날 전태일열사를 그린 미술작가들의 그림 '엄마를 부탁해'는 남겨놓고 시사만화작품들만 통보도 없이 무단으로 모조리 떼어졌다. 작품을 매단 끈들은 모두 끊겨있어서 급히 떼어낸 정황을 예측하게 했다. ⓒ 이동수

▲ 전태일 40주기 문화예술제 작품들이 강제철거된 모습 다음 날 전태일열사를 그린 미술작가들의 그림 '엄마를 부탁해'는 남겨놓고 시사만화작품들만 통보도 없이 무단으로 모조리 떼어졌다. 작품을 매단 끈들은 모두 끊겨있어서 급히 떼어낸 정황을 예측하게 했다. ⓒ 이동수

게다가 사실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철거한 작품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둔 걸 알게 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마음을 다잡고 사실 확인을 위해 상황실에 전화를 하니 "내용 중에 정부 비판하는 것들이 있어서 뗐다. 그런 줄 알았으면 허가를 안 해줬을 것"이라고 했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렸다. 도대체 정부 비판하는 내용을 무슨 권한으로 공단 측이 떼어 낸단 말인가! 더욱이 한 작품만 빼고는 이미 신문과 언론에 발표가 된 작품들이었다.

 

이에 전태일재단과 행사위원회, 전국시사만화협회에서 공단에 항의하자, 이것이 정치적 문제로 옮겨갈 것을 우려했는지 '문안 내용을 보완해 달라'고 했다. 작품 전시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하느냐고 따지자 다시 '설치지정 장소가 아니므로 사용허가가 곤란하니 이해해 달라'며 말을 바꿔 공문을 보냈다. 그것도 재단 사무실 퇴근 직후인 오후 6시를 넘겨서.

 

그러더니 한 방송 토론에 나온 책임 관계자는 오히려 전태일재단과 작가들이 불법 무단으로 작품을 설치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에 전태일재단과 40주기 행사위원회 그리고 전국시사만화협회, 파견미술인들은 4일 용두동에 있는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무단으로 작품을 강제철거한 공단 측의 만행에 대해 '공단의 사과와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항의문을 전달했다.

 

a

전태일문화예술전 작품철거 규탄 기자회견 용두동에 위치한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서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전국시사만화협회, 미술작가들이 공단측의 사과와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이번 강제철거 사태에 대한 규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전미영

▲ 전태일문화예술전 작품철거 규탄 기자회견 용두동에 위치한 서울시설관리공단 앞에서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전국시사만화협회, 미술작가들이 공단측의 사과와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이번 강제철거 사태에 대한 규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전미영

그리고 공단 측의 문화예술에 대한 몰이해와 표현자유침해에 대해 비판하는 현장예술활동으로 종이박스로 뜯어 만든 '청계천문화탄압성지' 퍼포먼스와 함께 공단의 행태를 풍자하는 만평 작업도 했다.

 

이번 전태열열사 40주기의 한 행사위원은 "자, 우리는 이제 불법으로, 허가받지 않고 예술작품을 내걸었다. 허가를 받아도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공단에서 알아서 처리하시라!'고 절규했다.

 

a

청계천 문화탄압 성지! 서울시설관리공단 규탄기자회견이 끝나고 현장문화예술활동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전미영

▲ 청계천 문화탄압 성지! 서울시설관리공단 규탄기자회견이 끝나고 현장문화예술활동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전미영

 

a

'지'는 G(쥐)로 통하는 세상? '지'라는 글자에 맞춰 즉석 만평을 그리는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 작가 ⓒ 전미영

▲ '지'는 G(쥐)로 통하는 세상? '지'라는 글자에 맞춰 즉석 만평을 그리는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 작가 ⓒ 전미영

 

a

권력 눈치보며 알아서 굽신거리는 서울시설관리공단 '성'이라는 글자에 맞춰 권력에 아부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즉석만평을 그리는 모습 ⓒ 전미영

▲ 권력 눈치보며 알아서 굽신거리는 서울시설관리공단 '성'이라는 글자에 맞춰 권력에 아부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즉석만평을 그리는 모습 ⓒ 전미영

나중에 늦은 점심을 먹고 지나다 보니 만평을 그려넣은 글자 '성'과 '지' 종이박스만 뒤집어서 내용을 볼 수 없게 해놨다. 참 공단의 행위가 궁색해 보인다.

 

a

가려진 '압'자, '성'자' '쥐' 아니...'지'자 나중에 보니 '청계천문화탄압 성지!' 라는 글자와 만평이 그려진 것 중에서 의미를 모르게 하고 만평도 가려버리는 압, 성, 지를 뒤집어 놨다. 그러니 '청계천문화탄'만 남았다. 그 좋은 머리를 시민들을 위해 쓰면 좋으련만... ⓒ 이동수

▲ 가려진 '압'자, '성'자' '쥐' 아니...'지'자 나중에 보니 '청계천문화탄압 성지!' 라는 글자와 만평이 그려진 것 중에서 의미를 모르게 하고 만평도 가려버리는 압, 성, 지를 뒤집어 놨다. 그러니 '청계천문화탄'만 남았다. 그 좋은 머리를 시민들을 위해 쓰면 좋으련만... ⓒ 이동수

게다가 전태일 다리 쪽으로 올라와 보니 평소와 달리 작품이 걸렸던 곳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내려가서 물어보니 "위에서 지키라고 시켜서 와 있을 뿐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도대체 경비원 아저씨는 무슨 죄란 말인가?

 

a

경비철저?! 규탄기자회견과 항의문을 전달하고 전태일다리 옆 작품이 걸렸던 곳으로 가보니 평소와 달리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 이동수

▲ 경비철저?! 규탄기자회견과 항의문을 전달하고 전태일다리 옆 작품이 걸렸던 곳으로 가보니 평소와 달리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 이동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번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찾아간 공단의 사이트에 보니 올해 경영목표 가운데 하나가 'G20 정상회의 개최 대비 준비 만전'이다.

 

a

G20 환상은 곳곳에 이렇게 G20과 관련해서 하부기관에 내려진 지침들로 인해 시민들의 행복보다 권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하게 된 것은 아닐까? ⓒ 이동수

▲ G20 환상은 곳곳에 이렇게 G20과 관련해서 하부기관에 내려진 지침들로 인해 시민들의 행복보다 권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하게 된 것은 아닐까? ⓒ 이동수

이 글을 보는 순간 통보도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단의 이해불가능한 강제철거 행위가 단박에 이해됐다. G20을 빙자한 강압적 국민계도와 G20 포스터에 쥐를 그린 시민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시민들에 대한 과도한 탄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G20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라면 이른바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이 아닌가?!

 

서울시 산하기관인 공단도 G20 행사에 신경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시설관리공단은 말 그대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설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터. 하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이렇게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관계자가 강조했던 공단설립목적인 '시민들의 건전한 문화생활'을 방해하는 행위이고 정치적 편견을 갖고 문화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이러한 관리와 결정들을 독단적이고 편파적으로 할 수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집행하고 감시하기 위한 시민사회 위원회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와 전국시사만화협회, 파견미술인 등 문화제 참여작가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이러한 강제철거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원상복구를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전태일열사 40주기를 기리는 행사'가 원만히 치러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전태일거리문화예술전'강제철거 규탄 성명서

 

서울시는 강제 철거한 '전태일 문화예술전' 작품을 원상 복구하라 !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에서는 지난 10월 30일부터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 주변에서 시사만화가들의 만평을 모아 전시를 시작했다. 노동, 청년실업, 비정규직 등의 문제를 다룬 시사만화 28점은 전태일을 정신을 오늘에 살리고자 하는 작가들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1일 서울시설공단은 이 작품들을 행사위원회 및 작가들과의 일절 상의도 없이 몰래 철거한 후 쓰레기봉투에 뭉뚱그려 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울시설공단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설치한 작품이 서울시설공단에 의해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 강제철거 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작품철거에 항의하는 행사위원회에게 "만화작품의 내용이 정부비판적인 것들이 들어 있어서 떼었다"고 한 서울시설공단 관계자의 어처구니없는 답변이다. 사실 서울시설공단은 전시 이전에도 행사위원회에 작품의 내용을 사전에 알려줄 것을 요구했었고, 행사위원회는 이를 문화예술에 대한 사전검열이라 규정하고 엄중하게 항의한 바가 있었다. 그랬는데 결국, 서울시설공단은 작품의 내용을 문제 삼아 철거라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사전검열과 작품 강제철거라는, 군사독재시절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서울시와 시설공단의 이번 철거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가 쓰레기처럼 취급받은 것과 같다.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탄압과 재갈 물리기로 시작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G20 시기에 맞춰 더욱 강화되면서, 이제는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탄압하면 할수록 아래로 또 옆으로 더욱 확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울시와 시설공단의 철거행위는 커다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또한 사전 협의를 거친 전시에 대한 이번 철거행위는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몰상식적인 탄압이다. 서울시설공단은 이미 전시 이전부터 작품에 대한 사전검열을 시도하더니 급기야 작품을 강제철거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화예술활동을 정부에 비판적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전시여부를 결정하는 행위는 몰상식적일뿐 아니라 해외토픽에 실릴 만한 국제적인 망신거리이다. 서울시와 시설공간은 지금이라도 작품 강제철거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즉각 원상 복귀시켜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들은, 서울시와 시설공단의 '전태일 문화예술전' 작품 강제철거 행위가 결국 '전태일 다리 이름 찾기 1인 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들과 40주기를 맞아 전태일의 정신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한 각계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독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에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하나. 시설공단은 강제 철거한 작품을 즉각 원상 복구하라!

하나. 시설공단은 문화예술에 대한 사전검열시도와 작품 훼손에 대해 사과하라!

하나. 서울시는 예술작품 강제훼손을 지휘한 책임자를 엄중 징계하라!

 

2010년 11월 4일

표현의 자유 침해·전태일 문화예술전 작품철거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전태일 #40주기 #청계천 #문화예술 #강제철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