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비권 행사했더니 가족접견 금지?

실천연대 문경환 집행위원장 면회 금지 후 서신 보내와

등록 2010.11.10 12:58수정 2010.11.1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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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2일 구속된 후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의 '보복성' 가족면회 금지 조치를 받은 문경환 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이 당시 자신의 심경이 담긴 편지를 아내 양정은씨를 통해 보내와 소개한다.

 

차라리 묵비권을 박탈하라

 

방금 검사에게서 접견금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검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구속도 모자라 접견금지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왜 구속됐는지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속영장에는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그 이유로 지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처음 실천연대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러하였지만 검찰 조사가 들어간 후 추가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 특히 이런 유의 사건은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기보다는 행위 자체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따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증거 수집을 끝내고서 '증거인멸'을 이유로 드는 것은 아무리 봐도 명분 없는 행동입니다.

 

'도주우려'는 더 황당합니다. 애초에 구속영장을 발부한 검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구인장까지 발부했습니다. 그러면 원래 수사관들이 구인장을 들고 와서 저를 법원에 데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발로 법원을 찾아갔습니다. 도주하지 않을 것을 알고서 그냥 전화만 하고서 법원 앞에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구속될 수도 있음을 알고서도 자기 발로 법원을 찾아간 사람에게 '도주우려'가 있다며 구속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건 저에 대한 모욕입니다.

 

구속도 구속이지만 저는 이번 사건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실천연대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십니다. 아직 재판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또 구속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입니다. 2년 전에 제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검사가 와서는 식당 영업이 불법이라며 구속했습니다. 이때부터 식당 영업이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두고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1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온 저는 대법원 판결이 끝날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다시 식당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검사도 영업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지 않아 제 판단을 암묵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다른 검사가 와서는 식당 영업이 불법이라며 저를 다시 구속한 것입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이니 하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검사에게 두 가지는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하나는 왜 사법부를 무시하고 결론을 기다리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검사의 판단이 판사보다 우선합니까? 또 하나는 왜 다른 검사가 다룬 사건을 주워 먹느냐는 것입니다. 좀 거칠게 말하면 2008년 국가정보원이 먹고 버린 찌꺼기를 다시 주워 먹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렇게 실적 쌓기가 절실했을까요?

 

자, 다시 접견금지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세한 통보는 받지 못했지만 뭐 수사상 필요하다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접견을 통해 대화하는 게 수사에 어떻게 방해가 될까요? 접견시 주고받은 이야기들은 모두 기록이 되고 녹음이 되며 행동까지도 녹화가 됩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은 모두 검사에게 넘어갑니다. 접견을 통해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변호사 접견은 가능하기 때문에 검사가 노리는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도 논리적으로 의문입니다.

 

결국 접견금지를 통해 피해를 보는 것은 애꿎은 가족들입니다. 구치소 담벼락을 경계로 갈라진 것도 억울한데 가족들 얼굴조차 못 보게 하는 이런 반인륜적 조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보통 검사들은 접견금지를 할 때도 가족들은 허용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냉혈한 검사라도 가족 사이의 정을 끊을 만큼 잔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이 검사는 저와 제 가족을 이렇게 괴롭힐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 오전에 있었던 하나의 단순한 '사건'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검사가 저를 소환하여 조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구치소로 넘어오던 지난 금요일에도 검찰 조사가 있었지만 저는 당연히 묵비를 행사했습니다. 조사에 앞서 검찰주사는 분명히 '묵비권을 행사해도 불이익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묵비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므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검사가 소환했을 때 저는 출정을 거부했습니다. 어차피 묵비할 텐데 굳이 시간 허비하고 국민 세금으로 굴러가는 버스를 타고 북부지검까지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점심때가 되자 검사가 또 호출했습니다. 그래서 앞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자 몇 시간 후에 곧바로 접견금지 통보가 오더군요. 명백한 보복조치입니다.

 

수사를 위해 부득이한 경우 시행해야 할 접견금지를 징벌의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헌법이 보장한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징벌을 준 것이지요. '묵비권을 행사해도 불이익은 없다'는 약속도 어기고 말입니다. 사실 검사가 꼭 조사를 하고 싶다면 구치소로 직접 와서 조사하거나 구인장을 발부하여 강제 구인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검사들은 다 이런 식으로 합니다. 이게 접견금지를 '징벌'로 보는 이유입니다. 사실 2008년에는 출두거부를 해도 아무 불이익이 없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검찰의 현주소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 헌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검찰의 치졸한 복수극으로 인하여 우리 가족은 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세 살배기 제 둘째 아이는 지난주에 유치장으로 면회를 와서는 아빠와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아크릴판에 난 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제 손을 잡아보려 하더군요. 면회할 때 소리가 통하게끔 뚫어놓은 구멍인데 새끼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정도입니다. 그 구멍으로 어떻게든 아빠와 접촉하려는 아들을 보는 제 마음도 착잡했습니다.

 

그런데 구치소로 넘어오니 마이크와 스피커 시설이 있는 대신 구멍이 없더군요. 멋모르는 아들은 열심히 구멍을 찾다가 없는 걸 알고 실망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예 얼굴도 못 보게 되었습니다. 올 때마다 '아빠 내일 나와'라고 하던 일곱 살 딸아이도 이제 볼 수 없습니다. 검찰의 심경을 불편하게 한 죄(?)가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왜 심경이 불편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두 아이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제 아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오늘도 잠들긴 글렀습니다.

 

오늘 아침에 라디오를 들으니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일이 있었더군요. 세상이 아무래도 미쳐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껏 여러 공안부 검사들을 만나봤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검사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검사 정도면 사회에서 지도층, 엘리트로 인정해 주니까요. 특히 공안부 검사들은 자신들이 애국을 한다고 여깁니다. 생각이 보수적이든 어쩌든 나름대로 자기 업무가 나라를 위한 길이라는 신념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 식의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행각은 처음 겪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은 대한민국 검찰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동네 양아치도 이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격한 표현을 썼나요? 쥐 그림을 그리는 게 죄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힘들 듯합니다. 구치소에서 보내는 첫 편지가 이런 씁쓸한 내용이라 안타깝습니다. 다음 편지는 좀 더 희망적인 내용으로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10. 11. 4

성동구치소에서

문경환 드림

2010.11.10 12:58 ⓒ 2010 OhmyNews
#문경환 #실천연대 #면회금지 #묵비권 #공안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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