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강조한 한국형 '개발원조', OECD회원국 중 '꼴찌'

[경실련 공동 기획⑥] 강대국 시장논리에 의한 시혜적 지원은 그만둬야

등록 2010.11.12 14:11수정 2010.11.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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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서울 정상회의가 시작됐다.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받으며, 처음으로 개도국에서 개최되는 이번 G20 정상회의는 '환율'과 '국제금융기구 개혁' 외에도 우리나라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등 서울 이니셔티브의 구체적인 성과 도출을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많은 정부기관에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보조를 맞춰, 기업과 언론, 연구소 또한 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잔칫집 분위기를 내는데 한 몫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반면, G20의 의미와 논의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와 경실련에서는 앞으로 6회에 걸쳐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 G20의 의미와 논의 의제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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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 개막총회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개발' 의제를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의 4대 의제 중 하나로 꼽을 만큼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G20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개발 의제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참가국들의 합의를 이끌어 낸 바 있고, 이어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이니셔티브(의제, Seoul Initiative)의 성공적 도출을 위해 주요 인사들과의 만난 자리에서 개발 의제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에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와의 면담에서 G20 개발의제 협력을 강조했다. 10일에는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UN의 새천년개발목표(MDGs)와 G20의 개발의제에 관한 상호협력을 당부했고,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이어 길러드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개발 의제의 시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발언을 이끌어 내며, 개발 의제 논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라디오 연설에서 "개발도상국에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함께 도와주자"고 밝혔다. 그러나 개도국 및 최빈국이 원하는 개발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없이, G20이라는 선진국가의 기준에서 시혜적 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지적이 있다. 나라별로 원하는 '물고기'가 다를 뿐더러 한 나라 안에서도 고기를 잡는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공들여 준비하고 있는 개발 관련 '다년간 행동계획'의 모습이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나는 12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발표될 20여개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자칫 선진국의 자원외교와 시장개발 및 무역자유화를 위한 통로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요 개발 관련 정책은 '한국형 ODA'이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제7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열어 ODA 규모를 오는 2015년까지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 수준으로 확대하고 유·무상 비율을 4:6 내외로 구성하고, 비구속성(조건을 다는) 비율을 75%까지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은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이하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선진화 방안은 G20에서 정부의 개발 의제에 힘을 더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한국형 ODA'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한국,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가건설 과정에서부터 국제사회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원조를 받았다. 받은 총 원조 규모는 127억7600만 달러에 이르며, 이중 90% 가까이가 미국(46.9%)과 일본(42.7%)으로부터 제공되었다. 미국의 원조는 1950년대까지 거의 무상원조로 제공되었다. 1945~60년 사이 우리나라 경제는 원조 재정을 바탕으로 하여 연평균 4.9%의 성장, 11.8%의 투자율을 달성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무상원조가 급감하면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유상과 무상의 비율이 거의 동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1970년대부터는 일본의 원조 비중이 크게 증가했는데, 비록 70% 이상이 유상원조였지만, 일본의 원조도 성장하는 한국경제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약 반세기 동안의 원조 수원을 통해 우리나라는 1960~70년대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1980년대 이후의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발전을 토대로 19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까지 이룩함으로써 국제원조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고 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국제 원조 비중 2008년 기준(단위 : %), OECD 자료 ⓒ 경실련

그러나 위와 같은 국제원조의 혜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ODA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ODA로 8억1600만 달러(약 9000억 원)을 지출했고, 이는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네덜란드(70억 달러)에 비해 1/9 수준이다. GNI 중 ODA 비율은 0.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24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양적 규모의 부족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과연 우리나라가 '한국형 ODA'를 얘기할 만큼 국제사회에 공헌을 했는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5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산하 세계경제개발연구원과 세계개발센터는 'ODA의 질적 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ODA가 질적인 면에서도 한참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2008년 우리나라의 ODA 중 64.2%가 '구속성 원조'였다. 구속성 비율은 DAC 평균(12.7%)의 5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유상원조를 담당하는 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2005년까지 100% 구속성 원조로 사업을 진행했다. EDCF의 원조는 통신, 에너지 등 우리나라가 강한 자본집약사업에 집중됐다. 2000년부터 삼성, LG, 현대, 대우 등 대기업들이 50% 이상을 수주했다. 결국 정부는 ODA를 통해 대기업의 수출 활로를 뚫어준 셈이다.

우리나라 유상원조의 소득그룹별 배분(한국수출입은행 <국제 ODA 동향>(2007년) 기준) ⓒ 경실련


또한 우리나라의 2007년 유상원조 대상국을 보면, 최빈국 비율이 35%에 달한다. 2001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3차 최빈국회의 결의안은 최빈국에 유상보다는 무상으로 원조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만 유상원조의 최빈국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상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상원조가 자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종국에 국가부채로 연동되는 부작용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주요 국가별 ODA 평가 순위(총 31개 국가 및 단체를 대상으로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자료) ⓒ 경실련

이러한 정책적 결함으로 인해 'ODA의 질적 평가'보고서는 우리나라 ODA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ODA가 실제 원조를 받는 나라의 빈곤 감소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측정하는 '효율성'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31개 조사대상 중 30위였다. 구속성 원조를 나타내는 '수원국 행정부담' 항목에서는 31위였다. 원조의 투명성 또한 30위로, 조사 대상 4개 분야에서 '수원국 제도발전'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분야에서 꼴찌로 평가받았다.

이번에 발표한 선진화 방안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국제개발협력 3대 선진화 전략 중 하나인 개발협력 콘텐츠 개발은 개도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전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유상원조전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의 통합원조 정신을 어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주력하고 있는 무상원조사업 KSP(Knowledge Sharing Program, 지식공유사업)와 여러 부처에서 실시하는 '한국형' 사업의 모델화 및 모듈화가 그 내용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2004년부터 실시된 한국형 발전경험 전수사업의 성공여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한번 없이 성급하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KSP를 모델화하는 것은 문제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파트너 국가의 상황과 실제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공여국의 강점만을 제시하는 공급자 위주의 사업이 될 우려가 높다. 모든 것을 한국식으로, 한국의 비교우위에 맞게, 한국식 감성을 담아, 한국의 지식과 기술 및 상품을 이식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국제사회는 이를 '질 나쁜 원조'라고 비난한다는 점을 정부는 깨닫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급자 위주의 ODA를 강제하는 경우, 현지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일례로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대우인터내셔널이 진행하는 통근열차 철도사업 때문에 수많은 원주민이 강제 이주하게 되면서 물리적 충돌을 빚고 생존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일본의 경우도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고도 오히려 비판을 받는 사례가 있다. 인도네시아에 상당한 금액을 원조한 '아사한 프로젝트'는 수마트라 섬에 알루미나제련소, 수력발전소, 공업용수댐, 도로 등을 건설한 종합 프로젝트였지만, 수력발전소와 댐 건설 이후 오히려 강의 수량이 현저히 줄어 현지사회가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ODA에서 한국을 넘어서는 ODA가 되어야..."

따라서 정부는 G20 정상회의에서 개발의제를 선도하고 있다고 선전하기 전에 앞서 말한 우리나라의 ODA 정책 문제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형 ODA 모델'이 우리나라의 경험을 판매, 수출하려고 하거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주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지양할 뿐만 아니라 한국형 모델이지만,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여국의 모범 관행(Best case practice)을 적극 수용하고 조직적 차원에서의 '배움과 성장'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을 넘어서는(Beyond Korean) ODA' 모델이 되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개발' 의제와 관련하여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지나치게 미화하여, 경제발전을 하는 동안 벌어진 인권침해, 환경오염 등 다양한 병리현상과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마치 GDP의 증가가 경제성장의 모든 것 인양, 양적 경제성장 한 면에만 치중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며 누렸던 기적과도 같은 사례가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에 그대로 적용가능한지, 또한 양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질적인 성장도 함께 할 수는 없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성공적인 G20 개최를 위한 업적관리에 치중하여 너무 성급하게 '개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G20에서 논의되는 '개발'의제가 진정으로 개발도상국을 위한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G20 내에서의 논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의 참여가 보장된 환경에서 그들의 실질적인 요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G20 서울 정상회의는 그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논의이거나 강대국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혜적 수준의 지원 방안이라는 뻔한 결과 밖에 내놓지 못할 것이다.
#G20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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