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컵라면보다 빨리 끓이는 우거지 된장국

절집에 주렁주렁 매달린 무청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등록 2010.11.26 14:42수정 2010.11.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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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즉석식품은 무엇일까요? 그동안은 뜨거운 물만 붓고 1분이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가장 빠른 즉석식품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상주 블로거팸투어에서 뜨거운 물을 붓고 1분 만에 먹을 수 있는 컵라면보다 더 빠른 즉석식품을 먹어보았습니다. 바로 우거지 된장국입니다.


경북 상주에서 열린 블로거팸투어 때 도림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끓이는 우거지 된장국을 먹어보았습니다. 상주시 서곡동에는 도림사라고 하는 작은 절이 있는데, 가을에 이곳에 가면 특이한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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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사에는 마당 가득히 무청을 말리고 있다 ⓒ 이윤기


절집에 웬 우거지가 이렇게 많아?

도림사는 매년 가을이면 사찰입구에서부터 무청을 잔뜩 늘어 말린답니다. 처음 절집 입구를 들어설 때는 겨우내 스님들이 공양하실 양식을 준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도림원으로 들어가보니 마당 곳곳에 나무가지마다 줄을 매달아 '무청'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보통 무청은 그늘에서 말리는줄 알았는데, 워낙 많은 양을 말리는 때문인지 도림원에서는 햇빛에서 무청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바스락하고 부서질정도더군요. 함께 간 블로그들과 웬 무청을 이렇게 바짝 말릴까, 이렇게 말리면 모두 바스라질텐데 하는 걱정을 하면서 도림원 마당으로 올라섰습니다. 도림원 마당에는 전통 옹기 항아리가 가득하였습니다.

항아리마다 된장, 고추장이 숙성되고 있었고, 콩잎, 고들빼기, 제피, 무말랭이, 더덕, 깻잎 장아찌를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무청의 용도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주지스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지스님은 미소를 머금어시더니 젊은 스님에게 뜨거운 물과 즉석 우거지 된장국을 하나 가지고 와 보라고 부탁하시더군요. 잠시 후에 젊은 스님이 커피포트에 담긴 뜨거운 물과 명함 절반 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포장 상자 하나, 그리고 종이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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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사, 도림원에서 판매하는 즉석 우거지 된장국 ⓒ 이윤기


뜨거운 물 붓고 휘~ 저으면 우거지 된장국 완성

플라스틱 포장을 뜯어 조그마한 건더기 하나를 종이컵에 담고 커피포트에 담긴 뜨거운 물을 붓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는데, 아뿔사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1분은커녕 30초도 안 되어 뜨끈뜨끈한 '즉석 우거지 된장국'이 만들어졌습니다.

국물을 먹어도, 건더기를 먹어보아도 방금 끓인 '우거지 된장국'과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두 번째 컵에는 즉석 우거지 된장국에 밥을 한 술 말았는데, 순식간에 '우거지 된장국밥'이 되었습니다. 1분도 채 안 되어 따끈한 된장 국물과 국밥이 만들어지는데,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야, 이거 외국여행갈 때 들고가면 멋지겠다."
"상가에 문상 가서 먹는 된장국보다 훨씬 맛잇다."
"집에서 끓여도 이런 맛 못내는 사람들 많을 텐데."
"전국의 낚시점에 납품하면 대박이겠는데, 컵라면보다 훨씬 인기가 좋겠다."
"햇반하고 이거 하나만 있으면 한끼를 해결할 수 있겠네."
"와 이거 대량으로 구매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면 되겠는데..."

마치 마술을 부리듯이 즉석 된장국이 만들어지는 '찰나'를 직접 지켜본 블로거들은 너도나도 힛트 상품이 될거라는 예감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음은 다 똑같은 모양입니다. 이미 도림원 인터넷쇼핑몰을 통해서 판매되고 있고, 생산량이 부족해서 더 이상 판매를 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전투식량으로 군납 요청도 있지만,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어서 판매도 더 늘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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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청을 손질하고 있는 스님과 보살님 ⓒ 이윤기


즉석 우거지 된장국 누가 개발했나?

아무튼 대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서 주지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서 '즉석 우거지 된장국'을 개발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주지스님 답변은 좀 싱거웠습니다.

"아이디어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절에 스님들은 아주 옛날부터 만행을 떠날 때 이렇게 준비를 해서 떠났어요. 바삭하게 말린 우거지와 된장을 머무려서 가지고 다니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었어요. 그걸 그냥 상품으로 만든 것뿐이지요. 뭐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지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말 대단한 상품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인 저는 상주의 명품축산물인 '상감한우'보다 더 히트 상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최 측에 부탁하여 '즉석우거지국'을 넉넉하게 구입하였고, 채식주의자인 저는 운영팀장님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10개가 포장된 1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집에서 밥 반찬이 궁한 날, 바쁜 시간에 국에 말아서 얼른 밥 한 술 뜨고 나가야 하는 날 멋지게 활용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등산 가는날, 여행가는 날 들고 가서 자랑도 하고 홍보도 해드릴 생각입니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도 아주 좋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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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곶감을 넣어 전통장류를 생산하는 도림원 ⓒ 이윤기


도림원은 도림사에서 운영하는 전통장류를 생산하는 영농법인입니다. 주지스님 말씀은 고려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도림사를 복원하기 위한 불사의 일환으로 장류 판매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상주 곶감을 넣어 만든 된장과 고추장을 마당에 늘어놓은 무말랭이에 찍어 먹어 보았는데 참 맛이 좋았습니다. 선물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고, 외국에 선물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하시더군요.

요즘은 도림사보다 자연과 전통이 담긴 명품 장류를 생산하는 도림원이 더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도림원 장맛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도림원'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거지 #된장 #된장국 #도림원 #도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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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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