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만이 애국이라고 부추기는 자 누구인가

[주장] 정치계와 언론계, 군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

등록 2010.12.04 20:34수정 2010.12.04 20:34
1
원고료로 응원
a

1966년 6월 14일 북베트남 상공에서 미 공군의 F-105 썬더치프 전폭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월등한 기동력으로 무장한 미군은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 베트남을 초토화시켰지만 월남전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 미 공군

필자는 1965년에 맹호부대 소총중대요원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어 '두코 전투', '맹호5호 작전' 등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살육이 난무하는 전쟁의 비참함을 목도하면서 많은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전투 도중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내 옆에서 쓰러진 제1분대장 정원모 하사의 전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책으로 남아 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여러 해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적군에 쫓기는 상황에서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아 몸부림치고 악쓰며 식은땀을 흘릴 때가 많아 신혼의 아내를 자주 놀라게 했다.

베트콩과 월맹군의 전투력은 미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초라했다. 전투의 성격이 잔적을 소탕하는 토벌작전 수준이었기 때문에 대량살상이나 파괴는 수반되지 않았지만, 미군이 쏟아 붓는 화력은 엄청났고 피가 튀고 살점이 튀는 아비규환의 공포 속에 죽음의 신은 늘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전장에는 전선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줄곧 민간인과 접촉하며 수색정찰, 매복, 전투를 수행했다. 날이 거듭될수록 전쟁을 바라보는 현지 월남인들의 표정과 태도 속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들 대부분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는 목적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월남인들은 '외세의 앞잡이 노릇 하며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려온 부패하고 무능한 무리가 나라야 어찌 되든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벌인 전쟁'이라 생각해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저들만의 전쟁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정부가 아무리 "자유를 위하여!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그것은 진실이 아님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월등한 기동력으로 무장하고 최첨단 정보력을 갖춘 미군이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 베트남을 초토화시켰지만, 미국은 패망하고 말았다. 전장 뒤에서 점잔 빼며 떵떵거리던 베트남의 기득권자들은 해외로 탈출하기에 정신없었다.

월남인들은 가난의 고통과 죽음의 불안 속을 헤매면서도 결코 권력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였지만 그들은 그들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꿰뚫어 알고 있었다. 전쟁 뒤에 숨어 자신들의 과오를 덮고 탐욕을 채우려는 반민족 세력과 이에 놀아난 정부가 아무리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해 참여의지를 북돋으려 해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으니 전쟁은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평화'를 말하면 비애국자인 양 삿대질하는 그들

a

지난 11월 24일 서울 광화문 한국통신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초전박살'을 적은 인공기를 들고 김정일-김정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이는 필자가 중위계급이었던 45여 년 전, 전쟁에 시달리던 월남인들의 고단하고 슬픈 삶을 보며 몸으로 체득한 교훈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냉전체제의 독재정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부가 홍보한 월남전의 의의만을 무비판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인간 존엄의 가치가 보편화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민주시대, 세계가 하나로 열린 정보화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연일 '전쟁 불사'를 외쳐대고 소위 주류 신문을 비롯한 방송매체들이 지금 당장 북한에 쳐들어가야 할 듯 기염을 토해도 국민은 알고 있다. '평화'를 말하면 마치 비애국자인 양 삿대질하고 있는 오늘의 이 작태가 안쓰러울 뿐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누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토록 핏대 올려 '전쟁 불사'를 부추기는지 국민 각자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 갖고 비판하지 않게 만들려는 듯, 온통 전쟁이야기로 도배질하고 있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정작 전장에 나가 싸울 사람은 젊은이들 아닌가?

사실 6·25전쟁이나 월남전의 최전방 소총중대에서 적과 맞닥뜨려 싸웠던 분들은 저들처럼 전쟁하자는 적개심의 광기를 품어대지 않는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평화재향군인회'는 참전용사들로 구성된 굴지의 반전평화 단체다. 제발 참전용사들을 욕되고 슬프게 하는 일 없기를 당부한다.

전쟁이 무슨 병정놀이인가? 역사와 겨레 앞에 정직하자. 승패에 관계없이 남북 모두 상상도 할 수 없을 파괴로 잿더미만 남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 진실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전쟁이라 할 수 있는가? 강고했던 고구려와 찬란한 백제가 사라져버렸듯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고 미국과 일본 혹은 중국에만 살판나는 이익을 안겨줄 것이 빤한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지 못해 안달인가?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 갈파했다. 국가 간의 이익이 상충될 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후로 폭력을 동원해 상대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행위가 국제정치상 전쟁의 의미다. 그러나 국내 정치 집단 간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위험한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전쟁은 정치인이 일으키고 군인들은 목숨 바쳐 싸울 뿐이다. 연평도 포격 이후 작금의 상황처럼 언론과 정치는 연일 군대에 뭇매를 가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맡겨진 역할부터 다하고 있는지부터 더듬어 봐야 할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 인류평화를 깨트리고 우리를 파멸로 이끌 한반도에서의 전쟁책동을 막아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표명렬 기자는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입니다.


덧붙이는 글 표명렬 기자는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입니다.
#전쟁의 목적 #누구를 위한 전쟁 #월남전 패망의 원인 #남북전쟁은 민족 공멸 #전쟁은 막아야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