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옷자락이 우리 손을 어루만지네

'이경개인전(Nowhere)' 청담동 온리갤러리에서 12월 8일까지

등록 2010.12.05 15:08수정 2010.12.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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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전'이 열리는 온리갤러리(청담동) 입구 ⓒ 김형순


1999년 여성영화제로 데뷔한 이경 작가의 개인전이 <Nowhere>라는 제목으로 12월 8일까지 강남 청담동 온리갤러리에서 열린다.

원래 영문학을 전공한 이경 작가는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검정고시로 대학을 갈 정도로 독특하다. 그런 기질이 바로 그를 남다른 작가로 이끈 것 같다. 그가 사진 찍을 때 모습을 보면 마치 사자가 먹이를 낚아챌 때처럼 그렇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작업노트를 잠시 살펴보면서 그동안 작업과정을 헤아려보자.

숲, 바람, 빛 / 어디선가 펄럭, 옷자락
'no where'와 'now here' / 메울 길 없는 그 막막한 간극 속 / 꼭 붙든 옷자락 하나
살아서 잠시 나부끼는 일 / 숲과 그녀의 옷이 뒤섞여 만드는 무늬
우리 덧없는 생 가운데 / 그래도 지금 여기 - 작업노트 nowhere 중에서

어머니에 대한 추모이자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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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숲과 바람과 빛이 하나로 어우러지다 ⓒ 이경


그의 이번 전 2005년과 2008년에 '셀폰(cell phone)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위에 작업노트를 보니 분명 여기에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2008년 그의 개인전 때 보고 못 봤는데 그 사이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이런 황홀한 사진 뒤에 몸서리쳐지는 슬픈 사연이 있다니 믿기 어렵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아름다움 뒤에 아픔이 숨어 있듯 이 작품 뒤에는 작가 어머니의 죽음이 있었다. 이번 전은 그런 면에서 근년에 작고하신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추모이자 묘비명인 셈이다.


작가는 삶과 죽음이 더욱 가까이 붙어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번 주제는 'nowhere'다. 그런데 이 단어가 작가에게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no where이고 또 하나는 now here이다. 어머니가 '어디에도 없지만(no where)' '지금 여기에 있다(now here)'는 뜻도 된다.

사진 속 옷자락이 우리에게 말을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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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숲과 옷이 뒤섞여 만드는 무늬가 아름답다 ⓒ 이경


나는 이 작가의 어머니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작가는 누구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크고 사무쳤을 것이다. 원래 이미지의 어원인 '이마고(imago)'는 보고 싶은 사람의 그림자를 뜻인데 그런 어머니를 사진을 통해 그의 혼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울다 지쳐 보니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어머니의 옷들이 눈에 들어왔고 드디어 그 옷을 소재로 사진작업을 하게 된다. 위에서 보면 사진 속 어머니의 옷자락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거는 것 같고 우리 마음도 어루만지는 것 같다.

어머니의 죽음이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창작의 에너지를 불어넣은 셈이다. 사진이 가진 표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걸 구현하기란 쉬운 게 아닌데 아주 단순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 마음에 닿게 하는 장면을 멋지게 연출하니 놀랍다.

어머니의 옷에 남긴 생활미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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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덧없는 삶 속에서도 우린 지금 여기에서 산다 ⓒ 이경


옷이라는 한 시대의 사회적 기호로, 그의 어머니가 살던 연대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정도의 패션 감각이라면 그의 어머니가 생활 속에 아름다움을 충분히 향유하지 않았을까싶다. 딸의 눈엔 그저 평범한 엄마로 보일 순 있지만 우리가 보기엔 상당한 미적 감각과 예술적 상상력을 가진 것 같다.

작가도 나중에 알았다면서 어머니는 사범학교를 다닌 재원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남학생인 학교에서 여학생은 단 3명뿐, 그 중 한 여학생이 바로 작가의 어머니란다. 남학생들이 보라는 듯 당당하게 캠퍼스를 등교하던 추억담을 작가는 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생각난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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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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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 이경


이경 작가의 작업은 사진이면서 회화이고 추상이면서 구상을 시도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도 연상시킨다. 초록의 아름다움이 추상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보여 더 매력적이다. 사람의 마음을 은근히 흔들어 설레게 한다. 또한 농도 짙은 식물성의 오감이 느껴진다.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이어서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사진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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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산다는 것은 이렇게 잠시 나부끼는 일이다 ⓒ 이경


작가의 어머니는 이번 전시의 제목대로 "어디에도 없으나 지금 여기에 있다". 작가는 이렇게 사진을 통해 어머니의 꽃무늬옷 속에 제2의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어머니와 조용히 그리고 다정하게 대화를 속삭이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게다가 전시를 통해 작가의 어머니를 전혀 모르는 관객들도 어떤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싶다.

작가는 어머니를 잃고 크게 상심했으나 삶에서 더 많은 지혜와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른다. 그 심경이 더 깊고 넓어 보인다. 하여간 깃발처럼 나부끼는 어머니의 옷자락은 왠지 모르게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작가도 이제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무당의 경지로 가고 있다.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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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I 'Nowhere 연작' 2010. 숲이라는 자연과 옷이라는 문명이 서로 사이 좋게 얘기를 나누는 것 같다 ⓒ 이경


자연의 누드인 사막과 인체의 누드인 알몸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 가늠하기 어렵듯이 여기 자연의 눈부신 초록색과 작가의 어머니가 입었던 환한 초록색원피스 중 그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끝으로 한마디 더하면 한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국격과 사회적 질이 결정되듯 한 인간도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격이나 삶의 질이 결정된다. 예술가는 바로 그런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사인데 이경 작가는 그런 면에서 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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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경 ⓒ 김형순

연세대학교 영문과졸. 서울대대학원(영어교육)졸

<영화제>
1999년 영화 '있다/없다' 연출, 서울여성영화제우수상. 동숭아트센터 및 여러 영화제 방송매체 상영
2001년 시카고 국제여성영화제를 비롯하여 다수 국제영화제 초대상영

<사진전>
2003년 사진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신도시전'
2004년 사진전 '처음의 기억'
2005년 개인전 '셀폰(cell phone)' 갤러리아트링크
2007-2008년 사진전 'cell, time between dog and wolf' 서울 국제 북아트페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2008년 그룹전 'Artist's Book 10 prism' 갤러리 빔
2008년 개인전 셀(cell) 갤러리 디 오렌지(서울명동)
2010년 'Nowhere' 온리갤러리(서울청담동)

덧붙이는 글 | 온리갤러리: 청담동 70-17 성학빌딩103. 02)548-3692. 지하철 7호선 12번 출구 sizzler 뒷편


덧붙이는 글 온리갤러리: 청담동 70-17 성학빌딩103. 02)548-3692. 지하철 7호선 12번 출구 sizzler 뒷편
#이경 #온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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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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