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가 마땅히 어여쁘다

[책읽기가 즐겁다 389] 레너드 위벌리,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등록 2010.12.06 17:09수정 2010.12.0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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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레너드 위벌리 글,박중서 옮김,뜨인돌 펴냄,2006.10.28./12000원)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를 읽다. 이 책을 쓴 레너드 위벌리 님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를 1953년에 내놓았고, <달나라 정복기>는 1962년에 내놓았으며, 1969년에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를 내놓는다. 1981년에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를 내놓으며 '작은 나라'이지만 이름부터 '작지 않은(그랜드) 나라' 사람들이 펼쳐 보이는 싱그러운 웃음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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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뜨인돌

네 작품 모두 첫머리에 모든 실마리와 줄거리가 나타나지 싶다. <달나라 정복기> 또한 첫머리에 이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낱낱이 드러낸다. 아니, 가만히 생각하면, 첫머리이기 앞서 책이름부터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또렷이 밝힌다고 해야지 싶다. 이 작품이 1962년 미국에서 나왔음을 헤아리며 찬찬히 읽어 본다.

 

.. 지난해에 마운트조이 백작은 예산을 대폭 확충하여, 공국의 산 주위를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도로를 직선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다른 공약들처럼 이 역시 매년 선거 때마다 반복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랜드 펜윅 사람들은 좁아터진데다가 구불구불해서 위험하기까지 한 지금의 도로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국 내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고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라고 해 봐야 자전거뿐이어서, 사고가 나더라도 비교적 가벼운 수준에 그친다는 이유도 이런 반응에 한몫하긴 했다 ..  (10∼11쪽)

 

"농부들은 미국의 호의를 의심스러워하는 한편, 막대한 자금이 국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까닭에 하나같이 벤트너를 지지했다. 반면 빨래를 할 때마다 주전자에 물을 데워 나무 빨래통을 채워야 하는 주부들은 마운트조이 백작을 열렬히 지지했다(103쪽)"는 대목은 첫머리에 나온 실마리이자 줄거리를 한결 단단히 뒷받침한다. 작은 나라 '그랜드 펜윅' 사람들은 조금도 바보가 아니요 얼간이 또한 아니며 멍텅구리조차 아니다. 그네들 삶에 걸맞을 빠르기를 알고, 그네들 삶을 언제나 알뜰히 즐길 줄 안다. 어마어마한 돈을 주겠다는 커다란 나라 꿍꿍이를 걱정할 줄 알며, 제 깜냥과 주제에 알맞게 조촐히 살아갈 줄 안다.

 

작은 나라에 굳이 자동차가 있을 까닭이 없을 뿐더러,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할 곳이 없는 한편, 애써 자동차까지 타고 멀리멀리 나다닐 일이 없다. 작은 울타리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내는 삶이 아니다.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알콩달콩 웃음꽃 피우는 삶을 잘 알며 즐기기 때문이다.

 

엊그제 자전거를 타고 금왕읍 장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꽤나 굵직한 공사판 옆을 지나갔다. 멀쩡한 4차선 '고속화 국도' 한쪽을 헐어 살짝 구불텅한 길로 바꾸는 공사인데, 이렇게 구불텅한 길로 바꾸면서 바로 옆에 새로 닦는 고속도로(평택과 제천을 오가는 새 고속도로)하고 이어지는 샛길을 잇느라 바빠보였다. 예전 '반듯한' 길은 그대로 둔 채 고속도로하고 이어질 샛길만 이으면 되는데, 애써 산을 또 깎고 아스팔트길을 새로 깐다. 그야말로 세금이 넘치니까 이런 공사를 한다. 복지와 문화와 교육에 쓸 돈이든 이 나라 환경을 알뜰히 건사하는 데에 쓸 돈이든 펑펑 넘치니까 이런 길 공사에 목돈을 퍼붓는다.

 

평택과 제천을 오가도록 한다는 고속도로는 아주 우람하다. 충청북도에는 대단히 높은 산은 없으나 갖가지 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만고만한 가파른 산이 한결같이 이어진다. 새 고속도로는 이 고만고만 가파른 산꼭대기나 산중턱을 1자로 뚫는다. 거의 산 높이하고 똑같은 높직하고 굵은 기둥을 세운 다음, 이 기둥에 반반하고 두툼한 시멘트덩이를 올려놓는다. 시골마을 모습을 얼마나 망가뜨리는가를 살피지 않고, 시골 논밭을 얼마나 허물어뜨리는가를 돌아보지 않으며, 시골 산자락을 얼마나 무너뜨리는가를 헤아리지 않는다. 공사를 마치고 자동차로 이 고속도로를 씽씽 달릴 사람들 또한 아무것도 안 느끼겠지. 오로지 '1분을 더 줄인다'느니 '10분을 더 줄인다'느니 하는 숫자에 얽매이겠지. 이 나라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고속도로를 더 많이 뚫어 놓아야 한다고 얘기할 테지. 그런데, 이 나라 앞날을 생각할 때에 이 나라 자연 터전을 깡그리 짓밟는 일은 어떻게 도움이 될까. 무엇을 이바지하고 어떤 보람이 있을까.

 

고속도로 둘레에 새로 올라서는 아파트가 몹시 많다. 이들 고속도로 둘레 아파트를 볼라치면 고속도로 옆으로 아파트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소리막이(방음) 울타리'를 높직하게 쌓는다. 소리막이 울타리를 쌓는다고 모든 자동차 소리를 막을 수 없다. 고속도로 차소리는 웬만큼 막는다지만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와 멈추는 차소리는 고스란히 울려퍼진다. 새벽녘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소리는 고요한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에 메아리처럼 울리곤 한다.

 

햇볕을 쬘 권리를 바야흐로 말할 수 있고,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 소리를 안 들을 권리를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연탄공장 옆에서 탄가루를 들이마시지 않을 권리라든지 제철소나 유리공장 옆에서 쇳가루와 유리가루를 들이마시지 않을 권리 또한 겨우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말할 수 있기 앞서까지는 고스란히 들이마시고 새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기차길이나 전철길 옆에서 살아 보면 안다. 아마, 돈이 많아 기차길이나 전철길 옆에서 살 일이 없는 이들은 하나도 모를 테지. 그래서 자꾸자꾸 새 자동차길만 닦으려 하고, 더 널따란 길을 놓으려 하며, 고즈넉하며 사랑스러운 삶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뽑아낼 만한 공사와 행정과 사업만 벌이려 하는지 모른다.

 

다시 <달나라 정복기>를 들여다본다. "작년에 그랜드 펜윅을 지나간 자동차는 모두 네 대였습니다. 그로 인해 거위 여섯 마리와 오리 다섯 마리가 죽었고, 양 네 마리가 놀라서 새끼를 조산했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모조리 암놈들이었습니다. 또한 테드 페인터의 모친께서 그때의 자동차 소음 때문에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고생하고 계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12쪽)." 하는 대목이 첫머리에 함께 나온다. '작은 나라'인 그랜드 펜윅인 만큼, 이 작은 나라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넉 대가 지나가는 바람에 거위와 오리와 양 몇 마리가 다치거나 죽었는가'를 알 뿐 아니라, '마을 할머니 이름이며 마을 할머니 몸이 어떠한가'까지 안다. 이제 우리 나라는 몹시 커다란 나라가 되어 버린 만큼 대통령 자리에 있든 시장이나 군수 자리에 있든 구청장이나 읍장 자리에 있든 동사무소 일꾼이나 읍사무소 일꾼으로 있든 동네사람이나 마을사람 삶을 모른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 산골집 주소랑 이어진 신니면사무소 일꾼들이 산골마을 삶자락을 헤아려 줄 일이란 없다. 인천에서 지낼 때 창영동사무소 일꾼이나 동인천동사무소 일꾼이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읽어 줄 일이란 없었다. 똑같다.

 

이 시골마을에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지나가고, 버스를 타기까지 어느 만큼 큰길로 걸어가야 하며, 버스는 어디부터 어디로 오가는지를 면사무소 일꾼들은 모른다. 버스는 하루에 몇 대가 오가며, 몇 시 몇 분에 오는지를 면사무소 일꾼뿐 아니라 버스회사 일꾼마저 모른다.

 

지난달 음성읍 장날에 갔을 때에, 무하고 배추하고 '값이 좀 내렸다'는 푯말을 붙인 푸성귀 장사꾼들을 보았다. 500원인가 1000원인가 내렸다 하는 무하고 배추 값이란 이무렵에도 3000∼5000원 안팎이었고, 지난주쯤 다시 가 보니 이보다는 한결 내렸지만 썩 만만하다 싶은 값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무하고 배추란 비료와 농약을 먹고 자란 무하고 배추이다. 비료와 농약을 먹지 않고 자라는 '유기농' 무하고 배추는 값이 얼마일까? 이 나라 사람들은 '유기농' 푸성귀 값하고 '화학농' 푸성귀 값이 어떻게 다른 줄을 얼마나 알려나. 유기농 콩으로 빚으며 소포제와 유화제 따위를 안 넣은 두부 한 모하고, 화학농 콩으로 빚으며 소포제와 유화제 따위를 넣은 두무 한 모 값이 어떻게 다른 줄을 얼마나 알려나. 참말로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알면서 살아가는지 모를 노릇이다. 무엇이 '살아가는 즐거움'이요, 무엇이 '어깨동무하는 마을살이'이며, 무엇이 '내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다움'인지를 생각하기나 할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작은 나라' 그랜드 펜윅 이야기를 두 권째 읽었다. 먼저 <뉴욕 침공기>를 읽었고 <달나라 정복기>가 두 권째이다. <석유시장 쟁탈기>랑 <윌스트리트 공략기>도 재미있으리라 여기지만 석유 싸움이나 주식 다툼은 그리 돌아보고 싶지 않다. 돈을 사이에 놓고 툭탁질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거나 신나더라도 들여다보기 싫다. 하기는, <뉴욕 침공기>나 <달라나 정복기> 모두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힘센 나라들이 서로 더 많은 돈을 거머쥐려고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작은 나라' 사람들은 아무 욕심이 없이 '조용하면서 즐겁게' 살고픈 마음에 '큰 나라' 사람들한테 '제발 싸우지 말고 조용히 좀 지내자구' 하는 말을 건네려고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느 책을 읽든 오늘날 한국 같은 바보 나라 뒷통수를 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작은 나라에는 군대가 없다. 무기 또한 석궁 말고는 없는데, 석궁은 무기라기보다는 가끔 들새를 잡을 때에 쓰는 사냥 연장이다. 작은 나라에 있는 칼은 밥할 때에 쓰는 부엌 연장이다. 칼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돈을 빼앗는 깡패란 없다. 작은 나라에 있는 쇠붙이란 논밭을 일구는 데에 쓰는 낫과 호미와 쇠스랑과 쟁기이다. 작은 나라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지만, 자전거조차 안 타고 두 다리로 걷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자전거 마실도 즐거웁지만 두 다리로 한결 한갓지고 느긋하게 거닐며 '아름다운 자연 터전'을 마음껏 받아들이는 가운데 너른 넋을 가꾸는 삶이 훨씬 즐거우니까.

 

대한민국 제주섬에는 올레길이 있다는데, 대한민국이란 나라에는 '따로 도보관광을 하는 길'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두 다리로 걸을 만한 데'가 거의 사라졌다. '따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길'을 수백 수천 억원을 들여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자전거로 홀가분하게 다닐 만한 데'가 거의 없어졌다.

 

자전거길이든 거님길이든 돈으로 닦을 수 없다. 사람들 삶터이든 보금자리이든 돈으로 지을 수 없다. 마음으로 닦고 사랑으로 지으며 땀방울로 돌본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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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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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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