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때문에 20대 초반 동거도 가능했다

[유러피언드림- 교육강국 핀란드의 힘④] 촘촘한 복지, 켈라로 통한다

등록 2010.12.13 10:06수정 2010.12.31 14:3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다섯 번째 이야기는 교육 강국 핀란드에 관한 이야기다. 인구 530만 명의 핀란드는 수준 높은 복지와 교육제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1960년대부터 40년 동안 꾸준히 '누구에게나 질 좋은 교육을'이라는 목표를 실현시켜 왔다. 그 결과는 2000년부터 국제학력평가시스템(PISA) 4번 연속 최상위권 기록으로 나타났다. 경쟁과 획일적인 시험이 거의 없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핀란드. 그들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복지제도와 삶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편집자말]
글 : 박수원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핀란드의 복지는 켈라카드로 통한다. 핀란드인들 지갑속에는 이 카드가 들어있다. ⓒ 임정훈


핀란드의 복지는 KELA(켈라)로 통한다. 한국 성인들 지갑에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가  있다면 핀란드인들 지갑에는 켈라카드가 있다. 켈라카드 존재유무에 따라 핀란드에서 누리는 삶의 질이 달라진다.

사회보험기관인 켈라는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저소득층의 주택보조금지급, 보육비지원, 아동수당과 가족수당, 학생수당, 건강보험 등 핀란드 사회보장 전반을 책임지는 기구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현지에서 도와주고 있는 곽수현(34)씨 지갑에는 모두 3장의 켈라카드가 들어있다. 

핀란드인과 결혼해 9년째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곽씨는 6살, 3살 아이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지갑에는 딸 2명의 켈라카드와 자신의 켈라카드가 들어있다. 지역보건센터가 아닌 병원에 갔을 때 이 카드를 제시해야 하고, 약을 처방받을 때도 필요하다. 카드 앞에는 거주 지역과, 한국의 주민번호처럼 고유 번호가 부여돼 있다.

켈라카드는 핀란드인 뿐 아니라  EU회원국의 노동자가 핀란드에 일하러 왔을 경우에도 제공된다. EU회원국이 아닌 경우 핀란드에서 세금을 내고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나 자영업을 통해 세금을 납부하면 켈라카드를 제공 받을 수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약 500만 장의 켈라카드가 발급돼 있다.

켈라는 부자 아이들도 차별하지 않는다 


곽씨는 매달 통장을 통해 두 딸의 아동수당 210.5유로(1유로≒1500원, 약 31만 5000원)를 켈라로부터 지급받고 있다. 아동수당은 핀란드에 태어난 아이에게 만 17세까지 지급된다.

핀란드는 켈라를 통해 만17세까지 아이들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사진은 헬싱키 시 중앙역 부근에 산책을 하러나온 아이들의 모습. ⓒ 임정훈


아이가 하나인 집에는 100유로, 두 번째 아이에게는 110.5유로, 세 번째 아이에게는 141유로, 네 번째 아이에게는 161.5 유로를 제공한다. 한 부모 가정일 경우에는 아동수당이 추가되고, 다섯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면 182유로가 지급된다. 다섯 번째 아이 이후부터는 무조건 182유로가 추가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유인책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아동수당은 세금이 면제다. 2009년을 기준으로 해서 101만 6865명의 아동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곽씨는 "매달 통장을 통해 들어오는 아동수당 210. 5유로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저금하고 있다"면서 "아이들 옷을 사주는 등 생활비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펀드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피르요 투오멜라씨(45, 헬싱키 시 동쪽 라아야 살로 지역 거주)는 얼마 전에 이혼을 했다. 그는 수입의 48-50%를 세금으로 내는 고액연봉자(월 7000만 원~8000만 원 내외의 수입)다. 이혼한 남편은 파일럿이었다. 그렇게 고액 연봉자라고 해도 14살(종합학교 8학년), 12살(종합학교 7학년) 두 딸이 함께 살고 있어 아동 수당 210.5유로를 받고 이혼한 한 부모 가정이기 때문에 10유로 정도를 더 추가해 220유로 정도를 받고 있다.

이 집은 이 아동수당을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투자한다. 피르요씨는 "이 돈을 모았다가 아이들이 방학 때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거나,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데 보탠다"고 말했다. 문화생활을 위해 쓰고 있는 셈이다.

고액연봉자이지만 두 명의 딸에게는  매달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카드(오전6시부터 오후6시까지만 이용)가 지급된다. 물론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에게 무료 버스 카드가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난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두 딸은 4km 떨어진 종합학교에 다니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3만 1835명의 학생들이 교통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
 
20대 초반에 동거를 가능하게 만든 켈라

"우리나라 이팔청춘의 섹스는 금지되거나 설사 이루어진다고 해도 슬프게 끝이 난다. 청소년들은 거의 3천 년만에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모든 걸 유보하도록 집단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 <88만원 세대>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10대' 중-   

위의 내용은 조금 극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10대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대 독립도 쉽지 않다. 높은 대학등록금과 주거비 때문에 부모에게 기생해서 사는 캥커루 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란드의 경우는 다르다. 고등학교 때 독립을 할 경우 학생생활보조금으로 246유로(약 37만원)와 학생주택보조금이 150~200유로(약22만 5천원~31만 5천원) 내외로 지급된다. 대학생은 생활보조금이 298유로(약 44만 7000원)정도로 약간 많다. 핀란드인들은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8세 정도에 독립을 하는데 학생생활보조금과 주택보조금을 합쳐 400- 450유로(약 60만원~67만 5천원)의 학생수당을 지급 받고 있다. 

대학등록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450유로 정도의 학생수당으로 집세를 내고, 나머지 비용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18세 때 독립이 가능했던 건 학생수당 덕분이었습니다" 핀란드 공대생 오스카리. ⓒ 임정훈

헬싱키 공대생인 오스카리(25, 남)는 대학생이 된 18세 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다. 켈라에서 지급하는 450유로 덕택으로 대학생이 된 후 독립할 수 있었다. 오스카리가 22세 때부터 독일인 여자 친구 소피와 핀란드에서 동거가 가능했던 것도 바로 켈라 덕분이었다.  

투르크 법대생인 이리스 (19, 여) 역시 학생수당으로 매달 450유로를 받고 있다. 이리스는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대학 생활을 경험해보기 위해 헬싱키가 아닌 투르크 대학 법대를 지원한 경우다.

그녀 역시 켈라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240유로의 월세를 내고, 나머지 비용과 아르바이트로 벌어놓은 돈을 가지고 식비와 교통비, 용돈으로 쓰고 있다.  그는 "만족스러운 수준이기는 하지만 더 주면 좋겠다"면서 "내 경우는 조금 모자라는 돈을 부모님께 받은 용돈과 방학 때 하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니까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켈라에 33년 동안 근무해온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 우르요 마틸라(64)씨는 아동수당과 학생수당을 지급하는 이유에 대해서 "빈부격차 없이 아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자는 취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켈라에서 1년간 지급하는 수당은 핀란드 국민총생산량(GDP)의 6.9% 수준이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높은 세금부담률과 투명한 세제 관리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핀란드의 조세부담률은 국민총생산량(GDP)대비 44.5%이지만 우리는 19.3%(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켈라의 마틸라씨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도 복지를 제공하는 데 밑바탕이 되지만 국가에서 세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금 내는 게 전혀 아깝지 않다"

"핀란드에서는 세금을 떼 먹을래야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핀란드 헬싱키 시에 있는 유일한 한국음식점 '한국관' 최기문 사장이 10일 밤 계산서를 정리하는 모습. ⓒ 임정훈


헬싱키 시에서 한국인 식당 '한국관'을 운영하고 있는 최기문(47)씨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5년 전에 핀란드로 이민을 왔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차례 언론에 소개됐다. 한국에서 식당을 했던 경험을 살려 핀란드에서 하나 뿐인 한국식당을 차렸다. 직업이민을 왔기 때문에 핀란드에서 제공하는 복지혜택을 대부분 받고 있다. 아들 락호(18, 직업학교 1학년)씨는 얼마 전 핀란드 시민권도 획득했다.

10일 밤 식당 문을 닫으려고, 계산서를 정리하던 최씨는 "이 곳은 세금을 떼어먹으려고 해도 도대체 떼어 먹을 수가 없다"면서 "하루 계산서를 뽑으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몇 개 팔았는지가 한 번에 다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을 하면서 술은 23%, 음식은 13%(원래 22%였는데, 2010년 7월부터 세금 비율이 낮아졌다)로 벌어들인 돈에 대해 세금을 내고 있다.   

그는 "식당일 때문에 몸이 고되기는 하지만, 한국에 있었으면 아들 락호와 딸 안희의 사교육 등 교육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팠을 텐데, 여기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이 무상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게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핀란드편' 특별취재팀 : 박수원 기자(팀장), 임정훈 시민기자, 윤정현 해외통신원


#핀란드 #유러피언드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