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경계에 꽃을 피우는 장인이 되다

'거리의 미술' 이진우 대표, 2회 개인전 '진우 풍경'

등록 2010.12.19 12:34수정 2010.12.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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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현장 화첩, 2009 ‘기관실에 널린 빨래’ ⓒ 이정민


"2002년, 처음 동네에서 벽화를 그릴 때 '곧 재개발이 된다는데 무슨 그림이냐' 하셨는데, 2010년 올해에도 몇몇 분들은 곧 개발이 되는데 무슨 벽화냐 하신다. 한 때는 섭섭하게도 들렸던 말이지만 이제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재개발이)될 때 되더라도 살 때까지는 예쁘게 해가면서 살아야죠' 하면서 말이다"

노동자·농민·서민·소외계층·노인 등 삶의 애환이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예술의 미학을 민중 속에서 찾고 있는 작가 이진우의 2회 개인전 '진우 풍경'이 17일 구월동에 위치한 갤러리 '해시'에서 시작됐다. 이 전시회는 23일까지 계속되며, 작가의 초창기 작 '자화상'부터 최근 작 '열우물 풍경'까지 총망라해 전시한다.     


"그림을 통해 좀 더 원활한 말 걸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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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1984 ‘자화상’ ⓒ 이정민


2004년 국가보안법과 창작의 자유전·남북작가교류미술전, 2005년 공공미술열우물프로젝트, 2009년 우린 일하고 싶다!·용산참사, 조각보걸개그림·도화시장 사람들의 세월전 등 총60여회의 숱한 전시회에 참여한 이진우 작가는 "그림을 통해 좀 더 원활한 말 걸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현재 GM대우 비정규직으로 해고된 두 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인천민족미술인협회 회원들과 함께 걸개그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 "그림을 정말 잘 그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풍경만을 그려온 나에게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같은 일을 하는데 월급이 차이가 난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폭력으로 제압하고자했던 GM대우는 1000일이 넘는 싸움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외시하고 있다"며 "더구나 인천지역의 회사였던 '대우자동차판매'와도 손을 떼고 말았다. 외국계 자본에 기업을 팔아넘긴 결과는 이미 쌍용자동차에서도 보지 않았는가"라고 주장한다.

또한 "출근하는 사람까지 그려 달라는 부탁에 '난 사람 그리는 거 싫어'라고 했다. 그만큼 풍경을 그리는 게 더 마음에 당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사람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이 어떤 곳에서 누구에게 말을 걸까 생각하면 좀 더 원활한 말 걸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다. 이게 힘이든 위로이든 함께이든 말이다"라고 소회를 밝힌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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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1984 ‘고향마을’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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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현장 화첩, 2007 ‘배수펌프 눕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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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05 황해미술제 출품작 ‘열우물 설경’ ⓒ 이정민


"이진우 작가가 작업하는 곳에는 소수만이 향유하고 주석을 달아야하는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늘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현실과 노동의 성실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의 작업 공간은 인위적이지 않으며, 화려하지 않으며, 난해하지 않으며, 고독하지도 않다. 또 그는 결코 화가인척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작가의 힘이고 매력이고 자신 안에 갇힌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열린 작가로서 자리매김해야할 이유다"

이 작가의 지인인 전은수씨는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주제로 이진우 작가의 그림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전씨는 이 작가가 그림을 통해 보여준, 삶의 진실을 통해 보여준 그의 확장된 예술의 가치에 대해 이같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작가는 최근 10여년 동안 십정동 열우물 연작과 현장스케치 화첩을 통해 동네 주민들의 삶을 생생하고 담고 보여주려 했다. 아마도 그것은 전씨가 언급했던 것처럼 '척박한 삶의 터전 위에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려고 하는 그만의 진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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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10 ‘열우물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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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09 ‘봄 안에서’ ⓒ 이정민


전은수씨는 말한다. "이진우 작가는 무수한 경계를 허무는 작은 선각자"라고.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자아와 타자와의 고독한 경계를 허물어 따뜻한 공존을 만들 줄 아는 그는, '모든 경계에 꽃을 피우는 장인'이라고.

87년 암울했던 대학 시절을 보내고, 90년 민족예술인협회 활동을 통해 사상 검증을 당하며 법정까지 서야했던 굴곡진 청춘의 삶에서 이제 이 작가는 부모, 노동자, 형, 동생들을 위한 삶을 위해 손에서 붓을 놓을 수 없다고 스스로 자임한다.

이진우 작가는 이제 다시 1995년 열우물 거리에서 만났던 이웃집 할머니들과 오순도순 부침개와 막걸리를 나눠 먹었던 때를 되살려내려 한다. 동네는 이미 개발바람이 불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삶이 많이 피폐해졌지만, 이제 다시 벽화 그리기를 통해 공동체를 되살려내려 한다. 이유인즉, 이제 그와 더불어 만나는 주민들은 모두 아버지요, 어머니요, 친형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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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06 ‘하늘이와 하얀누리’ ⓒ 이정민


보통의 동네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려한다는 이 작가는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 이번 전시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날이 망가지는 마을에서 사는 게 아니라 보통의 동네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면모를 가진 마을에서 사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일은 기쁘다. 그러다보니 열우물이라는 동네를 그린 그림도 여러 개가 되었다. 동네를 좀 많이 그려야지 마음만 묵고 별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아놓으니 그래도 몇 되어서 다행히 전시를 하게 되어 이 또한 다행이다(웃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작가와의 인터뷰는 12월 18일 오후 1시에 진행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작가와의 인터뷰는 12월 18일 오후 1시에 진행하였습니다]
#이진우 #열우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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