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은 사랑씨앗 뿌린 예쁜 벗님

[책읽기가 즐겁다 392] 손아람과 다섯 사람, <너는 나다>

등록 2010.12.29 11:48수정 2010.12.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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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손아람과 다섯 사람, 철수와영희 펴냄, 2010.11.13./13000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리는 한편, 즐거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일은 꿈으로만 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꿈이 바로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꿈입니다. 꿈꾸듯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꿈을 이루며 하루하루 거듭나는 내 삶이에요. 왜냐하면 꿈이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돈 있고 이름 있으며 힘 있는 사람을 어버이로 두어 태어나야 꿈같은 나날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봄날에 볍씨를 뿌리거나 모내기를 하면서 곧바로 쌀을 얻지 않습니다. 볍씨를 뿌렸으면 볍씨가 잘 자라 싹이 트고 잎이 나며 열매를 맺기까지 잘 건사해야 합니다. 감자알을 묻었다고 이내 굵은 새 감자가 나지 않아요.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기다립니다. 마냥 손 놓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땀 뻘뻘 흘리는 몸뚱이로 기다립니다. 날마다 바지런히 일하면서 기다립니다. 마음속으로 빌고 온몸으로 흙과 부대끼면서 손꼽아 기다립니다.

참으로 돈이 많고 이름이 높으며 힘이 대단한 분을 어버이로 두었다면 내 삶이 그야말로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멋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어버이가 돈이 아주 많아, 책을 살 때마다 주머니가 거덜날까 걱정할 일이 한 번도 없다면, 내 책읽기가 더없이 신나거나 즐거울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어버이가 이름이 아주 높아, 내가 조그마한 글 하나 끄적였을지라도 널리 알려지거나 읽히며 이름값을 거머쥘 수 있으면, 내 글쓰기가 그지없이 기쁘거나 놀라울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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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철수와영희

.. "몸을 쓰는 위험한 일이고 바깥에서 보면 어떻게 이렇게 일하냐,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저는 노동환경 개선이나 그런 것보다는 그냥 관리직 윗사람들의 따뜻한 한 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요. 수고했다, 한 마디만 해도 되는데 오히려 화풀이 하고 욕질하는 윗사람들이 있어요. 힘들지 않냐, 물 한 잔 마시고 해라, 지나가는 말만 해 줘도 일을 더 열심히 할 텐데. 기분도 좋잖아요. 조금만 더 인간적으로 대해 준다면 ……." ..  (57쪽)

제 몸에 불을 살라 숨을 거둔 전태일 님이 흙으로 돌아간 지 마흔 돌이 된 2010년 11월 13일입니다. 이날을 맞추어 <너는 나다>라는 이야기책 하나 조용히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라는 이름이 작달막하게 붙은 이야기책입니다. 덧이름 그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또다른 전태일'이란 수없이 많을 뿐더러, 너는 나다란 이름 그대로 전태일이 나요, 내가 전태일입니다.

.. 누군가는 요즘 청년들이 도전정신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한 번도 동의해 본 적이 없다. 내 주변 청년들은 다들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미 대학에서 학점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누구나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은 어떤가? 얼마나 필사적이면 그 엄청난 취업 준비, 학점 경쟁 속에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지 … 이번 달에 택시 한 번 탄 적이 없는데 10만 원 가까운 돈이 교통비로 나갔다. 최근 나가고 있는 단체의 한 여자 후배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자전거를 샀다고 한다. 나도 매달 10만 원에 달하는 돈을 교통비로 쓸 바에 후배처럼 자전거를 살까 생각이 든다 ..  (120, 126쪽)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이룬 젊거나 나이든 이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공무원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다 비슷한 꿈을 꾼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게 돈을 버는 거잖아요(155쪽/단편선)." 같은 아주 마땅하면서 참 마땅히 잊는 생각조각을 끄집어냅니다. 그렇잖아요. 모두들 '꿈'을 이루겠다고들 말은 하지만, 정작 이 꿈이 뭔가를 들여다보면 '돈'이기 일쑤예요. 얼음판에서 지치기를 잘하고 싶다는 꿈이든, 조그마한 공 하나를 잘 던지거나 잘 차고 싶다는 꿈이든,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 학문 하나 거룩히 세우겠다는 꿈이든, 마지막 자리를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돈'과 맞닿습니다. 끝마음이 '돈'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 첫마음은 무엇이려나요.

새삼스러울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훤히 안다는 이야기인 '한 사람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으면, '나 하나 살아가는 데에 돈을 얼마나 벌어 얼마나 쓸 수 있으면 되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 하나 아름다운 삶으로 일구는 동안 나 스스로 손에 쥘 책은 몇 권이면 넉넉한가'라든지, '내 아름다운 사랑을 만나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귀어 보아야 하는가'라든지, '내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자면 어떻게 땀을 흘리거나 어디에서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가' 같은 이야기를 톺아볼 수 있겠지요.

스스로 숨을 거두며 노동법과 노동권을 지켜 달라 외치던 전태일님이라 합니다. 그러나 1970년이건 2010년이건 노동법이나 노동권을 지키는 공무원이나 기자나 지식인이나 관료나 정치꾼이나 교사는 몹시 드물다고 느낍니다. 하루 여덟 시간 일하도록 하는 일이 노동권이 아닙니다. 최저생계비를 제대로 챙기도록 하는 법이 노동법이 아닙니다. '일할 권리'란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권리입니다. '일하는 사람을 지키는 법'이란 종이책에 적바림하는 글줄이 아닌, 사람이 사람다이 사랑할 이야기여야 합니다.

.. 그가 죽기 전까지 외쳤던 것은 삶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것은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였다 ..  (9쪽)

길은 어디에나 손쉽게 나 있습니다. 삶은 어디에서나 알차게 일굴 수 있습니다. 사랑은 누구하고나 살가이 나눌 수 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내 살림에 맞게 벌 수 있습니다.

다만, 길을 못 느끼며 살아가기 일쑤이고, 삶을 못 붙잡으며 헤매기 일쑤이며, 사랑 아닌 수렁에 빠지기 일쑤요, 돈이 아닌 권력과 욕심에 허덕이기 일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내가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다면, 내가 돈을 조금 더 번달지라도 내가 돈을 조금 더 버는 일이 내 삶터와 자연을 망가뜨린다 할 때에도 그냥 돈을 조금 더 벌면 되나요. 가야 할 길이 바쁘니까, 찻길에서 고양이를 치건 사마귀를 밟건 잠자리를 들이받건 개구리를 밟건 아랑곳하지 않으며 씽씽 내달리면 되는가요.

어여쁜 꽃 한 송이를 꽃집에서 돈 몇으로 장만해서 선물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여쁜 꽃 한 송이를 우리 집 한켠에 꽃그릇 마련해서 씨앗 하나 심어 작은 싹부터 어린 잎과 가느다란 줄기부터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돌보며 꽃이 피어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노동권이든 노동법이든 꽃집에서 꽃 한 송이 장만하듯 거머쥐거나 움켜쥘 수 없는 노릇이에요. 언제나 꽃씨 하나 심어 차근차근 알맞춤하게 날씨와 철을 돌아보면서 고마이 얻을 삶이어야지 싶어요.

사랑씨 하나 심어 사랑싹과 사랑잎과 사랑줄기를 보듬을 줄 아는 좋은 일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랑씨앗 하나로 사랑꽃을 피운 다음, 이 사랑꽃에서 또다른 사랑씨앗을 얻어 이웃한테 나누어 주는 가운데, 사랑꽃에서 사랑열매를 맺어 나부터 즐기고 내 고운 벗님과 살붙이하고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10)>(그물코,2007∼2010)

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철수와영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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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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