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인문학 향기가 난다

유명 인문학자 3인, 한국 최초 인터넷 인문학 강의 연재

등록 2011.01.11 17:17수정 2011.01.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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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유명 인문학자가 인터넷 세상에 뛰어들어 독자와 소통한다. 학자와 독자 모두 새로운 경험이다. 왼쪽부터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문학동네


정보화사회라는 21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철학이나 역사학 같은 인문학은 좀처럼 인터넷과 통하지 못했다. 유비쿼터스의 상징인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아무리 보급되고 있다 해도 사람들이 보는 것은 뉴스나 최신 동영상이 대부분. 인문학은 여전히 인터넷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세 명의 인문학자가 인터넷 세상에 뛰어들었다.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병설 교수,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글방을 연 것. 카페 회원 및 네이버 회원이라면 누구나 매주 연재되는 세 교수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펜과 종이의 이미지를 벗고 누리꾼들과 함께 인문학의 가치를 논하려는 시도다. 책이나 저널 등의 인쇄매체를 떠나 인터넷에서 실시간 소통하며 주제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이미 소설 분야에서 시도되어 사람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로만 들릴 주제를 가지고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 그래서 대한민국 최초라는 이 프로젝트가 주목받아야 할 이유다.

진정한 스승과 제자, 시와 삶의 품격, 인간과 권력의 모습

정민 교수는 자신이 집중해왔던 주제인 다산 정약용을 바탕으로 그의 제자였던 황상(黃裳 1788~1870)의 삶을 추적한다. 정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사제의 정리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아무도 스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가 없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한 거래만 남았다. 마음으로 오가던 사제의 도탑고 질박한 정은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라고 자신의 주제를 밝혔다.

안대회 교수는 "궁극의 시학"이란 제목으로 한시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십사시품은 시의 스물네 가지 품격인데 안 교수는 이를 통해 시의 단순한 분석을 떠나 그림과 글씨 그리고 인간 삶의 문제와 깊숙한 관련을 맺고 연재를 진행한다. 특히 인생의 품격을 시가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말하려고 한다.


정병설 교수의 연재는 요새 사극의 '트렌드'인 17~18세기의 조선 사회, 그중에서 영조와 정조, 사도세자가 얽힌 이야기인 <한중록>을 집중 조명한다. 사극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는 것이 정 교수의 의견이다. 정 교수는 <한중록>을 조선 권력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열쇠구멍'으로 지칭하여 독자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한층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

인문학과 인터넷의 만남

매주 연재의 압박에 시달리게 될 세 교수는 이미 인문학 분야에서 대중성을 갖춘 실력있는 학자들이다. 학회지나 단행본, 신문 기고를 통해서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는 인터넷 연재를 택한 것일까.

이 연재를 기획한 문학동네의 강명효 기획실장은 "이미 카페에서 소설을 연재했기 때문에 인터넷 연재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다만 컴퓨터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통한 다양한 방식의 소통 환경이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웹과 가장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문학을 시작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려고 한다. '우리 시대의 교양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독자와의 소통을 이끌어내려 한다"며 연재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연재를 담당하는 교수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정민 교수는 "첫 연재에서 복사뼈 내용이 나왔는데 한의학에 안목이 있는 누리꾼의 댓글이 달려 인상적이었다"며 독자와의 소통을 반기는 모습이다.

또한 "글을 쓸 때 원문을 바탕으로 하기에 일반 독자들이 보기 쉽게 쓰기 어려운데, (인터넷 소통으로) 독자들의 질문을 받으면 글을 더욱 쉽게 쓰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들도 일방적으로 독자들에게 글을 공급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지적과 반론을 기대하고 있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특히 정병설 교수의 연재는 한중록을 기반으로 하면서 <사도세자의 고백>을 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로 예고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연재에서 "<사도세자의 고백>은 매우 실망스런 책이다. 논리도 논거도 없다. 논거로 말하면 이소장이 정말 조선시대 사료를 이해할 수 있는 연구자인지 의심스러운 수준이고, 논리로 말하면 이 책은 소설이라고 해도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라며 날카로운 비판을 날렸다.

학계에서 여러 의견이 오고갈 수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이런 비판을 나온 것은 드문 일이라 앞으로 어떤 내용이 오고갈지 또 비판을 받는 이덕일 소장 측에서는 어떤 글이 나올지 사뭇 기대된다.

인문학의 외연 넓힐 새로운 계기 될까

인문학의 진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은 매우 긍정적이다. 글을 연재하는 학자 입장에서도 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상부상조의 문화가 정착될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자층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로 글의 방향을 잡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종이책과 모니터 화면, 액정 화면은 보는 개념이 다르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인쇄매체는 사라질 것이라 말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전자매체가 종이매체의 느낌을 살리려 노력하는 형국이다.

그렇기에 눈부신 전자화면에 가뜩이나 낯선 주제가 작은 글씨로 펼쳐진다면 많은 이들이 읽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다 글에 대한 관심마저 접을 위험이 있다. 인터넷 카페 기반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글자 크기나 줄간격, 글씨체에도 독자를 위한 배려가 있어야 더욱 의미가 살아나리란 지적도 있다.
#문학동네 #인문학 #정민 #안대회 #정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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