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자크 랑' 같은 문화부장관 없나요?

[리뷰]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 통해 델피르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보자

등록 2011.01.12 15:09수정 2011.01.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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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미술관 3층 입구. 배경작품은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의 '시청 앞 키스(Kiss by Hotel de Ville)' 1950 ⓒ 김형순


2008년 <매그넘 코리아>, 2009년 <사라 문>전 등 사진전을 주도해온 한겨레신문사가 이번에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델피르와 친구들>을 열었다. 이 전시는 오는 2월 27일까다. 185점의 오리지널 프린트, 150권의 사진도록, 4편의 영화도 소개된다. 2009년 아를사진페스티벌과 2010년 유럽사진미술관전에 이어 해외 첫 전시로 한국에 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많이 본 사진들이 많다. 이번 전시를 통해 20세기사진을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우리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찬찬히 검토해 볼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해도 좋으리라.


현대사진의 멘토, 델피르의 60년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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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기획의도를 성남훈씨와 현지인터뷰에서 설명하는 델피르 ⓒ 성남훈


현대사진의 멘토로 불리는 로베르 델피르(Robert Delpire 1928~)는 저명한 출판인이자, 아트디렉터, 전시기획자, 영화 및 광고제작자로 84세의 고령에도 아직 현역이다. 그의 친화력은 놀라운 위력을 갖춰 당대 중요작가들과 우정을 나누는데 모자란 덕목은 전혀 없었다.

델피르는 사진을 어떻게 보고 읽고 감상하는 태도와 그 존재 이유를 생각하고 묻는 것을 통해 사진에 대한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학도였던 그는 23세 때 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사진잡지 '뇌프(Neuf/New)'와 전위적 사진잡지인 '뢰이유(L'oeil/Eye)' 등을 창간했고 TV제작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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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고판 '포토 포슈(Photo Poche)' 모자이크식 전시 ⓒ 김형순


1982년에는 시집처럼 주머니에 넣고 볼 수 있게 사진문고판 '포토 포슈(Photo Poche)'을 창간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힘썼다. 이 문고판은 영어,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및 브라질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도 받았고, '나다르(Nadar)상'도 여러 번 수상했다.

그는 "출판업자의 일은 단순히 한 팀의 일이 아니라, 상호간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내 유일한 목표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편집하고 이를 가능한 많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신의 작업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적 유대와 신뢰와 상호존중을 중시하는가를 알 수 있다.


당시 문화부장관 자크 랑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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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자크 랑(Jack Lang) ⓒ Wikipedia

델피르는 1982년 7월 프랑스 문화부장관 자크 랑(Jack Lang 1939~)에 의해 국립사진센터(CNP) 관장으로 임명된다. 자크 랑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앉힐 줄 아는 인물이다. 이번 전을 준비한 델피르는 현지인터뷰에서도 문화를 진정 이해해준 장관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자크 랑은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의 경계를 없애고 그 문턱을 낮춘 장관으로 유명하다. 거리음악제 등 성공적으로 기획하여 예술의 대중화에 올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호응이 좋아 유럽전체로 번져나갔고 주변 국가들이 벤치마케팅 할 정도였다.

랑 장관은 문화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 자신 사는 동네 몇 킬로 안에 문화공간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사회적 계층과 관계없이 시민이라면 누구나 문화를 쉽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려 했다.

20세기 사진계보학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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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열리는 <델피르와 친구들>전 내부모습 ⓒ 김형순


이번 전을 보면 떠오르는 첫 인상은 바로 20세기 사진역사를 박물관에서 한 눈에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는 것. 그만큼 양과 질의 수준이 높다. 다만 사진감상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은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왔고 근대사진의 효시는 다게르(Daguerre)방식에서 왔다고 봐도 좋으리라. 사진을 '인물, 풍경, 회화, 조형, 르포, 다큐, 패션' 등 장르로 나눌 수 있다. 또, '자연주의, 신사실주의,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등 사조로 볼 수도 있는데, 매그넘 파가 주류인 이번 전은 다른 유파와 뭔가 다른지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으리라.

그의 친구들(1): 카르티에-브레송, 프랭크, 클라인, 코우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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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I '미국인들(The Americans)' 1958 ⓒ Robert Frank


이제 델피르와 그의 친구들 면모를 살펴보자. 우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프랑스 1908~2004)을 들 수 있다. 그는 근대사진의 최고봉이자 20세기 사진의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매그넘을 창단하여 전 세계를 누비며 인간사의 희비극을 다뤘다.

또한 신(新)영상주의의 창시자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스위스 1924∼)는 1960년대부터 현대다큐사진의 막을 열었고 20세기에서 사진수법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정상급에 섰다. 1958년 냉철하고 이지적 포토에세이인 첫 사진집 '미국인들'을 '델피르'출판사에서 냈다.

로버트 프랭크와 더불어 현대다큐사진의 선구자인 윌리엄 클라인(W. Klein 미국 1928~)은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시켜 강렬한 이미지를 사진에 담는 것으로 유명하다.

체코출신 다큐사진가인 요세프 코우델카(Josef Koudelka 1938~)는 추방되고 쫓겨나고 버려진 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1968년 현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프라하혁명과 그 이후 집시들의 떠돌이 삶을 감각적 영상으로 담아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친구들(2): 마르틴 프랑크, 드파르동, 에이크하우트, 앳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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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벌린 앳우드(Jane Evelyn Atwood) I '프랑스 생-망드 시각장애인학교(Institut Departemental des Aveugles, Saint-Mande France)' 1980 ⓒ Jane Evelyn Atwood


카르티에 브레송의 부인인 마르틴 프랑크(Martine Franck 벨기에 1938~)는 구성감각을 가지고 사진 속의 사진을 찍는다. 어린이, 노인, 배우, 예술가, 철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성과 일상을 섬세하고 그리고 담백하게 잡아냈다.

다큐사진과 영화분야에 선구자인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프랑스 1942~)은 12살부터 사진을 접했다. 그는 사진을 전공하진 않았으나 조수생활을 통해 사진의 대가로 올라섰다. 그가 만든 영화는 아카데미상 후보작이 오를 정도로 수준이 높다.

미셸 반던 에이크하우트(Michel Vanden Eeckhoudt 벨기에 1947~)는 보도사진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사람과 동물과 교감을 주제로 한 유머 섞인 이미지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또한 뉴욕에서 태어난 제인 에벌린 앳우드(Jane Evelyn Atwood 미국 1947~)는 페미니즘관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40년간 파리에서 살면서 1976년부터 파리의 창녀들, 장애학생들 그리고 1989년부턴 쇼킹한 9개국 여자수감자를 찍어왔다.

그의 친구들(3): 뷔리, 그뤼에르, 사라 문, 박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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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뤼 그뤼에르(Harry Gruyaert) I '오스텐데 타운(Town of Ostende)' 1988. 오스텐데는 벨기에 해변도시 ⓒ Harry Gruyaert


그리고 르네 뷔리(René Burri 스위스 1933~)는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사건과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윈스턴 처칠, 체 게바라 등 세계명사를 찍기로 유명하다.

아뤼 그뤼에르(Harry Gruyaert 벨기에 1941~)는 본능과 직감의 색채를 중시했다. 30년이 넘게 벨기에를 시작으로 모로코, 인도, 이집트 등을 다니며 동서양간의 섬세한 색감의 차이를 카메라로 잡아냈다. 색감을 주제로 한 패션과 TV광고에도 참가했다.

델피르의 부인인 사라 문(Sarah Moon 프랑스 1941~)은 패션사진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린다. 2009년 9월에 한국전을 가졌다. 그는 즐거운 우연(coincidences)의 미학을 강조한다. 일상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이미지에 놓치지 않으려 카메라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한국사진가로 델피르출판사에서 유일하게 사진집을 낸 박재성(Jehsong Baak 1968~)은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뉴욕에 정착하면서 사진을 시작했고 델피르로부터 100롤의 필름을 선물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는다.

그의 친구들(4): 라르티그, 두아노, 뉴턴, 살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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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 I '탄자니아 르완다 피난민들(Rwanda Refugees United Republic of Tanzania)' 1994 ⓒ Sebastiao Salgado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자크 앙리 라르티그(Jacques-Henri. Lartigue 1894~1986)는 세상을 맑은 동심으로 봤다. 공중에 떠 있는 대상을 잘 포착했다.

전 세계적으로 팬이 많은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 프랑스 1912~1994)는 시청 앞에서 키스하는 연인을 찍어 너무나 유명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당대의 풍속화로 새롭게 전환시켜 이를 매력적 시각언어로 수놓았다.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 독일 1920~2004)은 당시의 금기사항을 깨는 파격적 패션사진가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변해가는 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시대정신에 맞춰 찍었다. 83세로 세상 떠날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독창적 세계를 연출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ăo Salgado 브라질, 1944~)는 치밀한 사전취재와 뛰어난 감각으로 그만의 시각예술을 낳았다. 그는 또한 파리대학에서 농업경제학박사를 딴 학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비극을 직시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꿈을 사진에 담았다.

영화제작자로서 델피르의 또 다른 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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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마구, 당신은 누구십니까(Qui etes-vous, Polly Maggoo?)' 중 패션 쇼하는 모습 중 한 장면 ⓒ 김형순


이 밖에도 영화를 통해 델피르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제작한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구십니까?(1967, 감독 윌리엄 클라인)'는 68혁명 당시 패션계를 풍자한 대표적 컬트영화다. 이 밖에도 유명잡지의 사진특집과 자동차, 화장품회사의 광고사진도 기획했다.

끝으로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전의 포인트로 '두루 수용하여 감상할 줄 아는 다양성'을 손꼽았다. 사진의 매력은 정말 인간과 사회의 내면과 이면을 다채롭게 조명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도 큰 과제이리라.

덧붙이는 글 | '델피르와 친구들'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2월 27일까지
공식 홈페이지 www.delpirekorea.co.kr
교통편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에서 하차, 5번출구로 나와 10분거리


덧붙이는 글 '델피르와 친구들'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2월 27일까지
공식 홈페이지 www.delpirekorea.co.kr
교통편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에서 하차, 5번출구로 나와 10분거리
#로베르 델피르 #자크 랑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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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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