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기억'이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열쇠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힘

등록 2011.01.24 14:39수정 2011.01.2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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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 2010년의 끝과 2011년의 시작을 하얗게 불태웠던 드라마 '시크릿가든' ⓒ 화앤담픽쳐스

시크릿가든을 한 7화쯤부터 그것도 띄엄띄엄 보기 시작해서 잘 몰랐는데, 중후반편을 다 보고 역으로 1화부터 훑어보니까, 이 드라마 현빈의 폭풍비주얼 때문만이 아니라 충분히 인기있을 만 했다. 1,2화에서 형성된 캐릭터 관계들과 뿌려진 복선들이 마지막 20화까지 쭉 이어지는, 이 개연성의 힘이 보통 아니다. 그 장치들을 알아챈 시청자라면 폐인 될 만하다. 작가는 처음부터 큰 틀과 그 안의 자잘한 복선들을 갖고 작품의 밑그림을 충실히 그렸고, 그 밑그림은 촘촘한 그물코가 되어 시청자들을 꼼짝못하게 낚아버렸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장치 중 가장 주목받았던 건 영혼체인지였다. 영화 '체인지'나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등에서 익히 사용되었던 이 장치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재벌남과 스턴트우먼이 둘 사이의 격차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 현빈이 브래지어를 올리고 하지원이 쩍벌녀가 되는 등 뒤바뀐 영혼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재미들? 이 장치의 존재 이유를 대자면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시크릿가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영혼체인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체인지는 그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시크릿'을 담당하는 '길익선느님'의 전지전능한 영역일 뿐이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무의식'이다. 작가가 그린 이 작품의 밑그림엔 무의식이라는 장치가 짙게 깔려 있다. 기억상실증이란 뻔한 장치가 의미있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화에서, 기억을 잃어버려 정신적으론 21살이 된 상태에서도 34살의 취향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스팽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김주원에게 오스카는 말한다. "무의식이란 게 정말 무섭구나"라고. 이 대사가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대표한다.

시크릿가든은 '무의식이란 게 정말 무섭다'는 걸 말하는 드라마다. 사고 당시 엘리베이터에서의 기억을 잃어버렸음에도 김주원이 폐소공포증을 앓는 장치라든지, 길라임과의 기억을 잃어버린 두 번째 기억상실 상황에서도 '무언가 소중한 걸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하는 김주원의 대사라든지, 김주원의 옛 여친이자 신경정신 담당주치의의 존재라든지. 이 드라마에는 김주원의 무의식과 관련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나 '무의식'과 관련한 가장 결정적인 장치는 맨 마지막에 제시된다.

드라마 초반에 재벌남 김주원은 자신을 거부하는 스턴트우먼 길라임에게 누누히 말한다. "집안 딸려 학벌 안돼 얼굴도 별로에다가 사회소외계층인 너한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도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초반에 시청자들은 김주원의 이 대사를 으레 여타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가 그렇듯이 그저 신데렐라에게 반해버린 왕자님의 멘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김주원은 '꽃보다남자'의 구준표와, '별은내가슴에'의 안재욱과, '아름다운날들'의 실땅님과 다를 게 없다. "내 구애를 거절한 건 니가 처음이야! 나는 이제 너의 노예~", "내 뺨을 때린 건 니가 처음이야! 나는 이제 너의 노예~" 와도 비슷한 행동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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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과 주원의 첫만남 김주원의 무의식 속 기억엔 17살의 길라임이 있다 ⓒ 화앤담픽처스


그러나 마지막회 엔딩 장면에 가면 34살의 김주원이 집안 딸리고 학벌 안되고 얼굴도 별로에다가 사회소외계층인 길라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나온다. 시크릿가든의 엔딩은 뻔한 신데렐라스토리가 될 수도 있었던 시크릿가든에, 개연성이라는 제일 중요한 변주를 불어넣는 결정적인 장치다.

작가는 엔딩에서 21살 김주원이 사고 기억을 잃어버리던 그 순간, 생애 가장 절실하고 뭉클한 감정으로 바라보았던 얼굴이 바로 17살의 길라임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후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았으나 13년 후 만난 30살의 길라임에게 김주원이 자꾸 끌리는 이유가 엔딩에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김주원이란 캐릭터에 불어넣은 '무의식의 힘'이 이 드라마를 1화부터 20화까지 꽉꽉 묶어버리는 순간이다. 그것도 마지막에. 드라마 전체를 지배할 가장 결정적인 복선을 역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시크릿가든이 종영했지만 시청자들은 아직 여운에서 허우적거린다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그럴 만하다. 이 정도의 엔딩이라면, 시청자들의 감정은 '아 걔네 뭐 그렇고 그렇게 잘 살았대'로 끝나지 않는다. 엔딩에서 김주원의 행동에 대한 결정적이고도 새로운 정보를 제시받은 시청자들은 다시 1화부터 19화까지 복습하게 된다. 새로 얻은 엔딩의 정보와 이어질만한 드라마 곳곳의 요소들을 찾고, 드라마를 처음 보았던 때와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시크릿가든'이 쳐놓은 그물에서 얼마간은 더, 지속가능하게 뛰놀기를. 시청자들은 자청하게 된다. 작가 김은숙은 확실히 진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크릿가든 #김주원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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