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외국인에게 '충성서약서' 강요, 창피하다

법무부,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 제출 거부시 귀화 불허 ... 시민단체 '반발'

등록 2011.02.11 13:34수정 2011.02.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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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과 공존하는 열린사회 구현'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고기복


법무부가 2월부터 외국인의 한국 귀화 여부 심사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를 제출토록 하고, 귀화 신청자가 서약서 제출을 거부하면 귀화를 불허할 방침이라고 한다.

법무부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등으로 급격하게 확산된 안보 위기 환경과 사회주의권국가 출신 귀화자가 80%가 넘는 현실을 감안하여 체제 인정 서약서를 받는 형식으로 사상 확인·검증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럼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란 무엇이고, 이것은 사상전향서와 무엇이 다를까? 사상전향서는 일제 때 독립 운동가들의 의지를 꺾기 위해 일제가 만들었던 것으로, 광복 이후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전향서'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됐다.

1970년대에는 "나의 사상이 잘못됐고, 민족 앞에 사죄하며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전향서를 반드시 쓰도록 강요했다. 게다가 전향서 작성자는 가석방 심사 등에 앞서 사람들 앞에서 이를 밝히고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이러한 사상전향서는 우리나라의 분단현실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사상범죄자에 대하여 특별히 사법 처우하는 법률들을 입법화하여 이를 집행해 왔다. 현재에도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등이 대표적으로 이데올로기 사상범죄를 규율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개 실체법 절차법적 면에서 사상범죄자에 대해 일반범죄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더 엄격하게 다스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석방 심사 등에 관한 규칙'은 가석방의 조건으로서 사상전향서제도를 시행함으로써 헌법이 규정한 개인의 사상,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귀화 외국인에 대한 서약서 강제, 일종의 폭력


앞서 언급되었듯, 법무부가 2월부터 귀화 신청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사상전향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를 더욱 거부하게 하는 기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나 사상전향서가 갖고 있는 사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폭압적 성격 때문이다.

이주민이 귀화를 결심했을 때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단지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에 서약서를 강제한다는 것은 편견이요, 일종의 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법무부의 이번 조치는 이주민 출신국의 다수가 사회주의권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들이 우리사회의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고, 귀화를 조건으로 이주민들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귀화 허가 시 '시민권선서(oath of citizenship)'를 시행하고 있는 부분을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와 연결시키는데, 이는 억지다. 우리가 미국 영화 등에서 이민자들이 미국 국적을 취득할 때 선서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선서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은 귀화 신청을 위한 조건으로 문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 판사 앞에서 판사가 하는 말을 따라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미 국적 취득이 결정된 상태에서 일종의 공적 축하 행위로 하는 것이다. 조건부로 내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 캐나다 등의 예를 들어 억지 주장을 하며 국민을 설득하려 드는 것은 일종의 사대적 발상일 뿐이다.

법무부, 미국의 충성서약 사례 타산지석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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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두비>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현실과 사회주의권 출신의 귀화 신청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를 받겠다는 법무부의 발표를 보면서 한국판 매카시 선풍이 우려됐다. 정부가 미국의 좋은 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못된 것만 배우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귀화 신청자와 관련한 내용이니만큼, '서약'과 관련하여 과거 1950년대 미국에서 일었던 매카시 선풍이 당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던 망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파시즘의 대두로 인해 유럽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던 반파쇼 운동가나 파시즘 비판가들 중 상당수는 전후 미국에 정착한다. 그러나 전후, 냉전과 그에 수반된 '매카시즘'의 공포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망설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귀국을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우스트 박사'의 저자 토마스 만은 그 중 대표적인 인사다.

설령 귀국을 하지 않더라도, 매카시 선풍 기간 동안 반공주의 서약 거부 등으로 자신의 안락한 지위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체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 정신 분석가이며 일반적으로 자아심리학자로 알려진 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였던 에릭슨이 대표적인 예다.

에릭슨은 1950년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요구한 충성서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뒤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교수라는 지위에 있던 사람마저도 불안에 떨게 했던 매카시 선풍은 평범하게 미국시민권자로 자리를 잡고 있던 많은 망명자들을 강제로 '서약'하게끔 만들 만큼 폭압적인 것이었다. 미국은 '충성서약' 강제를 통해 유능한 인재들을 내치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국민통합에도 실패했던 전례가 있었음을 법무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새내기 국민에게 행사되는 폭력, 묵인할 것인가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귀화 신청자가 서약서 제출을 거부한다면 당연히 귀화를 불허할 방침이라고 천명했다. 물론 귀화제도는 외국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외국인이 국가 정체성, 기본원칙 등을 인정하면서 기존 국가 구성원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상과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까지 감수하며, 서약서 작성을 강제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전략적인 정치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체제 우위를 선전하는 도구로 삼겠다는 것이고, 특정 국가 출신의 이주민 전부를 잠재적 위협으로 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약서 제출 요구는 귀화를 신청하는 자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며, 그 외의 어떠한 사상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귀화 제도를 체제 우위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원한다면,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권 국가 출신 귀화 신청자들의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록 당신의 모국, 출신국에서는 집회, 결사, 의사,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없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당신의 양심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국가가 강제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귀화 때부터 알려주는 것이다. 굳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라는 문서를 통해 조건부 귀화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치졸한 일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자유'이자, 개인의 사상과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이다. 오직 충성만을 강제하는 것은 전제주의 국가나 군대와 같은 특수집단에서나 하는 행위다.

우리사회 이주민이 120만 명이 넘고, 이는 한국민의 2.4%에 해당한다. 앞으로 더 많은 이주민들이 귀화 신청을 하리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당사자가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첫 발을 내딛는 새내기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요, 건강한 다문화 사회이다. 우리사회가 다양한 의견과 사상이 존중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선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귀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 #자유민주주의체제인정서약서 #다문화 #사상전향서 #충성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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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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