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교 보내주겠다더니, 목사님 성노리개로?

[서평] 현대판 노예의 실태를 고발한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등록 2011.02.21 11:43수정 2011.02.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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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깔끔하고 맛도 좋은 데다가 직원들도 친절해 몇 년 째 자주 찾는 식당이 있다. 쉽게 말해 그 식당의 단골인 것이다. 맛도 맛이지만, 손님들에게 늘 친절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이 집을 즐겨 찾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알고 보니 그 식당의 종업원들이 주인이 돈을 주고 사서 부려먹는 노예였다면? 부당한 노동착취와 그로 인한 갖은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삼엄한 감시 속에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그런 노예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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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겉그림 ⓒ 알마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엄연하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는 지난 4세기 동안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팔려간 노예('노예'하면 떠오르는 그런 세계사 속 노예)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먹는가>(알마 펴냄)는 우리들이 흔히 '노예'하면 떠올리는 그런 노예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오늘날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 문제를 다룬 르뽀 형식의 글들을 엮은 책이다.

'그들은 누구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노예가 되(었)는가. 오늘날 어떤 형태의 노예가 있으며, 그 실태는 어느 정도인가. 노예 근절을 위해 세계와 국가, 단체와 개인들은 어떤 노력들을 하는가'가 이 책의 주요내용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뱃스톤'은 들어가는 글 '이웃집 소녀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글에서 자신이 어떻게 이 책의 주제인 현대판 노예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먼저 밝히고 있다.


아내와 함께 호감을 가지고 몇 년 째 즐겨 찾던 집 근처의 한 인도식당이 바로 현대판 노예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그런 식당이었던 것.

그 식당의 종업원인 한 소녀가 식당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동료와 여동생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주인은 병원은커녕 자신의 일당을 데리고 나타나 생사를 헤매는 소녀들을 카펫에 둘둘 말아 폐기처분(?)하려 한다. 이때 소녀도 다른 곳으로 매매하려고 하는데, 격렬하게 저항하는 소녀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한 주민의 신고로 식당 주인 레디의 범행이 밝혀진 것이다.

레디와 그 가족들은 비자와 신분증을 위조해 인도인 수백 명을 미국으로 인신매매했는데,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하는 고급인력인양 위장해 비자를 발급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자가 즐겨 찾았던 문제의 그 인도식당과 자신이 소유한 여러 개의 다른 식당으로 보내 최저임금으로 장시간 부려먹었던 것이다.

그나마 받은 돈도 레디가 소유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대가로 치르면서 도망치면 당국에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는 협박 속에 살았던 것이고.

오늘날 이 세계에는 2700만 명의 노예가 존재한다. 오늘날 세계 주요 도시의 뒷골목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는 것은 사람장사다. 노예는 멀리도 아니고 바로 우리 이웃에 있을지도 모른다.…파산드 마드라스(사례의 식당)와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금도 미국에는 10만 명이 훨씬 넘는 노예들이 있으며 매년 새로운 피해자 1만 7500명이 추가로 미국 국경을 넘는다. 미국을 거쳐 다른 나라로 팔려가는 노예들은 3만명에 이른다. 2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던 노예들처럼 오늘날의 노예도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고 정복자들(식장주인 레디와 같은)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강제 동원된다. 감히 탈출을 꿈꾸는 노예는 신체적 폭력이나 가족들을 향한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 - 책에서

저자는 한 인권 운동가가 이끄는 단체에서 조사한 것을 근거로 현대판 노예가 2700만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제시한다.

저자와 '낫 포 세일 캠페인'은
데이비드 뱃스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윤리학 교수로 사회 변혁을 꿈꾸는 진보적인 정치·종교·문화 잡지 <소저너스>(Sojourners)의 편집장이며 웹진 <소조메일>을 창간했다. 또한 비즈니스 잡지 <모토>(Motto)의 수석편집인이며 <비즈니스 2.0>의 창간 멤버로 기술 및 기업 윤리에 대한 집필 활동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에는 중남미 국가에서 경제 및 인권 신장을 위한 비정부 기구를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낫 포 세일 캠페인www.notforsalecampaign.org은 2007년에 저자가 이 책<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를 출간하면서 시작한 노예제 폐지 운동으로 노예제 폐지 포럼과 행사를 개최하고, 노예제 폐지 관련 단체나 운동가를 지원한다. 이 운동이 기존의 노예제 폐지 운동과 다른 점은 전 세계의 개인과 소규모 단체를 이어 지역사회에서 노예제를 근절하기 위한 고유의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책에서 정리
어떤 책에서 4500만이라는 숫자도 보았지 싶다. 누가 어떤 숫자를 제시하든 분명한 것은 노예매매가 음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유엔조차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처럼 그 누구든 자신들이 제시하고 있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노예가 존재할 거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여하간 국제노동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인신매매로 거래되는 사람은 연간 총 240만 명, 이로 인해 연간 4백억 유로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특히 여성 매매는 많은 이익을 남기기 때문에 인신 매매범들의 주요 표적이 되기 일쑤인데, 가난한 나라에서 납치되어 국경 너머로 팔려간 피해자들 중 80%가 여성이고 50%가 어린이라고 한다.

2010년 10월, 미 의회는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VPA)'이라는 매우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미국 정부는 이 법안을 발표하면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영향력을 동원해 지구상에서 인신매매를 추방할 것을 약속했다.

법안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매년 각국 정부들의 인신 매매 근절 노력을 평가하여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행하는데, 각 나라의 인신매매 발생률을 도표로 만드는 한편 각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행하는 구체적인 법률과 정책, 전략 등을 평가하여 '▲1등급: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의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는 국가 ▲2등급:위 법안의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나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국가 ▲3등급:위 법안의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만족시키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국가'로 등급을 나눈다는 것.

아울러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①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인신매매 근절에 소극적이거나 비협조적인 국가를 난처하게 만들어 태도를 변화 시킨다 ② 3등급 국가에는 외국의 원조를 끊고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신청했을 시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의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

2001년 7월 환영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첫 <인신매매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평가 대상에 미국은 포함되지 않은 이 보고서에서 러시아, 이스라엘, 한국, 루마니아, 알바니아, 그리스를 포함한 23개국이 3등급으로 분류되었다. - 책에서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는 평가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난 날 미 국무부의 우리에 대한 3등급 판정이 아주 틀리지 않았음은 우리 사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공연한 사실 아닐까?

현재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3등급에서 벗어났지만 안타깝고 부끄럽게도 일부 어른들의 범행에만 머물지 않고 일부 청소년들이 성매매의 포주가 되어 자신들보다 어린 아동·청소년이나 친구를 성매매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예전보다 사례가 훨씬 많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는 전세계 곳곳에 실존하는 수많은 노예제 피해자들의 사례를 르포 형식으로 소개하는 틈틈이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여러 국가들의 정책이나 법안, 노력, 관련 단체들이나 여러 운동가들의 활동 등을 피해자들의 사례와 맞물려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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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겉그림 ⓒ 난장이

학교에 보내주고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해주겠다는 목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목사의 집안 일과 교회의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부인이 있는 목사의 성노리개로 살아야만 했던 킴 메스톤, 방앗간 주인에게 빌린 몇푼의 돈을 갚지 못해 노예가 되어 18시간씩 일해야만 했던 본다, 어린 아들을 키울 돈이 없어서 도움을 청한 가장 친한 친구에 의해 성노리개로 팔려간 나디아….

책속 사례 주인공들은 모두 실존인물들. 저자가 지난 수년간 노예제 폐지 운동(낫 포 세일 캠페인)을 하며 직접 만난 사례들이 이 책의 바탕이 되고 있는데, 사례들은 끔찍하고 비극적이며 분노스럽다.

무엇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속에 노예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고통받고 숨죽이며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책의 목적은 현대판 노예 문제에 국가나 사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단호하고 마땅한 방법들을 통해 노예제도 혹은 인신매매를 근절시키자는 것이다.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란 부제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E. 벤저민 스키너 씀, 2009년 4월 난장이 펴냄)도 같은 목적으로 쓰여진 책,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노예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는 현대판 노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난과 정치적 불안, 부정부패가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어떻게 벼랑 끝으로 모는지 알려준다. 아동 노동자, 성노예, 소년병, 강제노역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회용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밟는 카펫, 우리가 먹는 설탕, 우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우리가 낀 반지를 만든 이가 노예일지 모른다. 만일 내가 사창가에 강제로 감금되었다면? 벽돌 공장의 노예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인신매매 피해자라면?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구출되기를 간절히 희망할 것이다. 이 사람들이 우리의 관심을 긴절히 기다리고 있다. - 책에서

덧붙이는 글 |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데이비드 뱃스톤 (지은이)|나현영 (옮긴이)|알마|2010-08-14|정가 : 15,000원


덧붙이는 글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데이비드 뱃스톤 (지은이)|나현영 (옮긴이)|알마|2010-08-14|정가 : 15,000원
#노예제도(현대판 노예) #인권유린 #노동착취 #인권운동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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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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