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소송과 보건교육권

등록 2011.02.23 13:35수정 2011.02.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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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소송 항소심에서 KT&G에 패소한 원고 측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읽었다. 12년 동안 원고 6분 중 5분이 돌아가시고, 처음에 함께 했던 변호사들도 그만 두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는 소회에서, 단순한 안타까움 이상의 그 어떤 절절함이 묻어났다. 더불어 항소심 재판부가 KT&G의 불법성을 입증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므로, 전국적인 소송을 진행하면서 담배 첨가물 목록 공개를 요구하겠다는 포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첨가물로 인한 발암 물질은 국민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므로 영업 비밀일 수 없으며, 이를 근거로 불법행위를 입증해내겠다는 계획이 반드시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갖게 됐다.

모든 학교에서 보건교사에게 보건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보건교과 입법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제헌부터 17대 국회까지 학교보건법 제․개정의 역사를 분석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초기 학교보건의 인프라 구축을 제외하고는, 법 개정 과정의 거의 80% 이상이 환경위생정화구역내 금지 시설에서 무엇을 제외하고, 추가할 것인지에 대하여만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환경위생정화구역은 학교 주변에 교육적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로 학교로부터 일정 구역을 설정하여, 그 구역 내에는 유해 시설 내지는 업소를 설치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호기심에 학교보건 관련 판례를 검색했었다. 학교보건 판례 역시 환경위생정화구역내 금지 시설로 규정된 시설이나 업소의 직업 선택의 자유 보장에 관한 소송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학교 보건에 관한 국정감사 기록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당 기간  교실 조도, 적절한 책걸상 크기, 환경위생정화구역 정비 사항 등이 매년 되풀이되면서 주를 이루다가 2000년도에 이르러서야 보건교육 문제가 조금씩 다뤄지기 시작했다. 미래 생산 인구인 학생들의 건강행위 지표나 건강 상태는 해마다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제 법제 안에는 실효성 있는 내용이 제대로 내포되지 못했던 것이다. 일례로 2007년 보건교과 설치 학교보건법 개정이 있기 전까지 무려 50여년 동안, 교육법인 학교보건법 법률에는 '보건교육'이란 용어가 규정된 적이 없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금언에 비추어본다면, 결국 학교보건 관련 권리를 가장 많이 외치고 주장한 분들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내 금지시설 당사자들이었구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배금자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학교보건법의 역사와, 판례, 국정감사의 주요 내용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 보건교육의 중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우스겟 소리로 입법 운동을 통해 보건교육을 의무화하는 학교보건법이 개정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보건교사 중 누군가 감옥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국민건강권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농담을 했었다. 2007년 학교보건법이 개정되면서 학생들의 보건교육권이 명징하게 규정되었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흡연예방 교육 등을 비롯한 보건교육 과정 운영은 미진하다. 학교 여건상 학교에 1명밖에 없는 보건교사로서는, 학교교육과정 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수결의 원칙을 혼자서 넘기 힘든 구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국 초중고 학생 중 단 1명이라도 누군가가 학교보건법 법률에 명시된 보건교육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한다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현재 담배 소송에 나선 원고들의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서의 보건교육권이 법률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법률에 명시된 흡연․음주 등 약물 남용 예방, 성교육, 질병의 예방 교육 등 보건교육권을 근거로 단순히 KT&G뿐만 아니라 교육당국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담배의 해악, 담배 광고의 상술, 담배 정책의 문제점 등을 보건교육으로 체계적으로 배운 국민들이라면 어떻게 사회적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담배 소송 원고 패소의 판결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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