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보다 네 소리가 더 커야 득음하나니

[명창의 흔적을 찾아가다 3] 송만갑 명창의 수락폭포

등록 2011.03.11 14:08수정 2011.03.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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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폭포 구례 10경의 한 곳으로 송만갑명창이 득음을 위해 공부를 한 곳이다 ⓒ 하주성


증조부인 송흥록으로부터 전해진 소리를 하지 않고, 스스로의 소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부친에게서 독살까지 당할 뻔한 소리꾼 송만갑. 우리 소리의 창극화를 처음으로 시도한 명창 송만갑은 전남 구례읍 백련리에서 태어났다(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봉북리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봉북리와 백련리는 이웃하고 있는 마을이다).

자유분방한 소리를 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서 찬사를 받은 송만갑 명창은, 7세 때에 이미 소리를 시작하였으며 13세가 되었을 때는 명창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후일 관직에까지 나아갔던 송만갑 명창은, 1천여 명이나 되는 제자를 둔 소리꾼으로도 유명하다. 아마도 우리 판소리사에 있어, 가장 많은 제자들을 두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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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갑명창 판소리에 처음으로 창극을 도입했으며, 자유분방한 소리로 일가를 이루었다 ⓒ 인터넷 검색자료


명창집안에서 쫓겨난 어린 명창 

명창 송만갑의 집안은 소리꾼으로 대를 이은 명문이다. 가왕이란 칭호를 받던 증조부 송흥록을 비롯하여, 할아버지인 송광록, 아버지 송우룡 등 이미 3대가 명창 반열에 올랐다. 그런 송만갑 명창이니,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것이 소리였을 것이다. 7세에 소리공부를 시작하여, 13세에 전주대사습에서 소리를 해 명창소리를 들을 정도의 소리의 귀재였다.

가문으로 전해지는 동편제 소리를 이탈한 송만갑을, 부친인 송우룡이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집안에서 쫓겨난 송만갑 명창은 전국을 다니면서 산천경계를 벗 삼아 소리에 열중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이동백, 정정렬 등과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하였으며, 고종 앞에서 소리를 해 어전광대가 되기도 했다.

충정공 민영환과 함께 중국과 미국 등을 다니기도 했다는 송만갑 명창. 아마도 소리를 얻기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소리꾼 한 사람과 고수 한 사람이 이끌어가던 판소리를, 100여 명이 넘는 소리꾼들이 출연하는 창극을 만든 것도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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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폭포 폭포 위편은 신선대라고 한다.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산 59에 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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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바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와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바위 ⓒ 하주성


소리공부를 하던 수락폭포를 가다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산 59번지. 산동면 소재지에서 19번 도로를 이용하다가, 우측으로 들어가면 수락폭포가 나온다. 수락폭포는 높이 15m의 폭포로, 구례 10경 중 한 곳이다. 뛰어난 경치로 유명한 수락폭포 위에는 신선대가 있고 폭포 앞 우측으로는 '할미암'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이 할미암은 득남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돌을 치마폭에 싸들고 와, 이곳에서 빌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아마도 이 할미암의 주인이 삼신할매인가 보다. 수락폭포는 여름철에 폭포 밑으로 들어가 폭포 물을 맞으면, 신경통과 근육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수락폭포에 찾아 온 송만갑 명창은 득음을 위한 피나는 소리공부를 했을 것이다. 소리를 얻기 위한 독공 중에는 '폭포독공'과 '동굴독공'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이 수락폭포의 물은 갈수기에도 수량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하물며 5~6월 장마철에는 아마 폭음과 같은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 밑으로 들어간 송만갑 명창. 얼마나 피를 토하는 소리를 질러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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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독공 폭포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질러 폭포의 소리보다 더 커야한다는 득음방법 ⓒ KBS자료


폭포소리 가운데 소리 한 대목이 들리는 듯

이때는 어느 때냐. 사오월 이종시(모판에 있는 모를 논으로 옮겨 심는 시기)라.
농부들이 모조리 대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넓은 들에 삼삼오오 떼를 지어 이앙성(모심기소리)이 낭자하구나

두리둥실 꽹매꽹 어널널널 상사뒤여 ~ 어여루 상사뒤여
선이건곤 태평시절 강구미안 동요듣는 순임금이 버금이라
두리둥둥 꽹매꽹 어여루 상사뒤여
리음양 순사시는 삼정승 육판서 대관님네 직분이요
어여루 상사뒤여
상서학교 베풀은 성훈을 배우기는 도덕군자 할 일이오
어여루 상사뒤여
화간백상 늦은 봄에 주마투계(말달리기와 닭싸움) 노닐기는 호협소년 할 일이라
어여루 상사뒤여
대장부 세상에 나 할 일이 많건마는 우리 농부들은
일만하고 밥만 먹고 술만 먹고 잠만 잔다
어여루 상사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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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음정 수락 폭포 앞 바위위에 지은 득음정. 많은 소리꾼들이 이곳에 와서 소리공부를 한단다. ⓒ 하주성


들판에 퍼지는 송만갑 명창의 농부가이다. 1920년대에 빅타레코드에 취입이 되어있는 춘향가 중에서 농부가 더늠이다. 송만갑 명창이 득음을 위해 노력을 했다는 수락폭포. 3월 5일 찾아간 수락폭포는 한적하기만 하다. 폭포 옆에 지어놓은 득음정이란 정자 하나. 무수한 소리꾼들이 이곳을 찾아 와, 송만갑 명창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폭포 속으로 들어가 집에서 쫓겨난 서러움을 잊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에 전념했을 송만갑 명창. 물이 폭포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오늘따라 농부가 한 대목처럼 들린다.
#송만갑명창 #수락폭포 #구례 #폭포독공 #구례 10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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