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보다 좋다는 초콜릿, 유혹의 화신"

[서평] 캐럴 오프가 쓴 <나쁜 초콜릿>

등록 2011.03.14 14:19수정 2011.03.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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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오프가 쓴 <나쁜 초콜릿> 겉 표지 ⓒ 알마

캐럴 오프가 쓴 <나쁜 초콜릿> 겉 표지 ⓒ 알마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오늘이 이른바 화이트데이입니다.

 
사탕과 초콜릿 과자를 선물하는 날이지요. 동네편의점과 대형마트에 사탕, 초콜릿 선물세트가 잔뜩 쌓여있더군요.

 

"실컷 초콜릿을 먹고 초콜릿에 파묻혀 뒹구는 꿈을 꾸곤 하죠. 초콜릿은 푸석거리지도 않고 맨살처럼 부드러워요. 작은 이빨 수천 개가 몸뚱이를 퍼덕거리는 작은 조각으로 뜯어 삼키는 느낌이죠. 초콜릿에게 부드럽게 먹혀 죽는 것이야말로 제가 겪어본 것 중에 가장 큰 유혹입니다."(조앤 해리스가 쓴 <초콜릿> 중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초콜릿은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는 '초콜릿'을 단순한 과자에서 사랑을 전하는 징표로 바꿔놓았습니다. 약삭빠른 상인들이 이성에게 초콜릿과 사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날을 구분하였지만, 어느새 초콜릿은 두 날을 모두 평정하였습니다.

 

그냥 단맛만 나는 사탕은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럽게 녹는 초콜릿에 비하면 한 참 뒤처집니다. 결국 초콜릿이 단맛 뿐만 아니라 사랑을 상징하는 달콤한 맛, 부드러운 맛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초콜릿은 그냥 단순한 과자 이상의 의미와 상징을 갖게 되었지요.

 

"초콜릿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을 중독자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초콜릿을 맛보기 위해 기꺼이 쌈짓돈을 턴다. 고급 초콜릿이 섹스보다 좋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있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초콜릿은 콜레스톨을 죽이고 성욕을 높여주는 등 무수한 이점을 지닌 건강식품이라고 한다. 초콜릿은 유혹의 화신이다."(본문 중에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초콜릿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초콜릿을 섹스보다 좋아한 덕분에 카카오 열매는 밭에서 자라나는 황금이 되었고, 초콜릿이 탐욕과 폭력, 전쟁과 죽음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나쁜 초콜릿>을 쓴 캐럴 오프는 캐나다의 언론인입니다. 다큐멘터리 기자로 이름을 떨쳤고, 걸프전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취재하였습니다.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취재한 그가 <나쁜 초콜릿>을 취재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카카오가 자라는 곳은 분쟁과 노예노동의 현장

 

왜냐하면 '액체 황금'인 카카오 열매가 자라는 곳이 바로 분쟁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세계 곳곳의 다른 분쟁 현장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건 위험한 취재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코트디아부르 시니코송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의 진실을 밝히려다 죽어간 프랑스 태생의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기 앙드레 키에페르'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카카오 생산지인 코트디아부르의 카카오 농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카카오로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들 농민들과 카카오 농장에서 노예 노동에 종사하는 아이들은 단 한 번도 초콜릿을 먹어 본 경험이 없다고 합니다.

 

서구에서 판매되는 초콜릿 가격은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사흘 치 품삯보다도 많으며 닭 한 마리나 쌀 한 자루와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며칠 동안 땀 흘려 일한 것을 지구 반대편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소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카카오를 따는 손과 판형 초콜릿을 집는 손은 둘 사이의 거리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멀다"는 것입니다.

 

카카오 따는 아이들, 죽을 때까지 초콜릿은 구경도 못한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바로 '카카오를 따는 손과 판형 초콜릿을 집는 손'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오히려 '카카오를 따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검은 손과 초콜릿을 집는 아이들의 하얀 손 사이의 거리는 도저히 좁혀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검은 손의 아이들과 초콜릿을 입에 넣은 하얀 손의 아이들 사이에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과 부패한 정치권력이 결탁한 더러운 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카카오 농사를 짓는 농민들과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돈들은 대부분 전쟁자금과 정치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캐럴 오프가 쓴 <나쁜 초콜릿>은 부정부패와 탐욕의 더러운 결탁관계를 밝혀냈지만, 부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희망을 전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절망스럽습니다. 심지어 공정무역마저도 사악한 자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진실'을 보여줍니다. 세상 어디에도 '착한' 초콜릿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선진국의 소비자들 중에는 제 3세계의 농민들 그리고 어린이들과 공정한 거래를 하기 위하여 윤리적인 소비의 댓가로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 소비자들의 공정무역 초콜릿의 소비가 늘어나도 근본적인 구조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마야인들은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한다. 초콜릿 제조는 다른 이들의 몫이다. 유럽의 세관 장벽이 가공식품 수출을 막고 있다. 소비자 만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오로지 원료 수입만 허용된다." (본문 중에서)

 

공정무역 덕분에 카카오 농민 삶이 조금 더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초콜릿을 만들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유럽과 북미 기업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공정무역 회사가 정크푸드 회사의 소유?

 

한편, 그 보다 더 기가 막힌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기농과 공정무역을 통해 2000년대 초반 독보적인 성공을 일궈낸 그린&블랙이라는 미국회사가 캐드베리슈웹스라고 하는 다국적 기업에 지분을 매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라벨만 보고서는 대안식품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부 유기농 브랜드가 이제는 다국적기업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마스주식회사는 시즈오브체인지를 인수했다." (본문 중에서)

 

유기농과 공정무역으로 명성을 얻은 기업들이 정크푸드 납품업자들의 소유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상표와 회사들이지만 이런 사례는 많이 있다고 합니다.

 

"유니레버는 저항문호를 상징하는 아이스크림 제조사인 벤&제리를 소유하고 있고, 코카콜라는 과일즙과 그라놀라 매장을 운영하는 오드왈라를 소유하고 있다. 도축업계에서 노동환경이 좋지 않기로 악명이 자자한 포장업체 타이슨푸드 역시 네이처스팜오가닉을 소유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한때 대지로 돌아가자는 정신이 지배하던 유기농무역협회가(OTA) 이제는 돌(Dole), 크래프트(Kraft), GMA, 제너럴밀스, 타이슨을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OTA의 정책 연구와 지지지를 위한 대부분의 자금은 대기업에서 나온다." (본문 중에서)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선진국에서 유기농운동이 기업농업으로 전 세계 농민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시장 지배세력에게 침탈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정크푸드 회사들이 유기농 산업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초콜릿 대기업들이 공정무역에 뛰어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기농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공정무역 초콜릿마저 접수해버릴 위험은 아주 가까이까지 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숨을 건 취재를 끝낸 저자 캐럴 오프는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값싼 카카오 열매와 북미와 유럽의 공장에서 만들어 판매되는 고급 초콜릿 사이에서 일어나는 강제노동과 노예노동의 피땀 어린 역사는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콜럼버스 이래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이 불의의 사슬이 도저히 끊어질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착한 초콜릿으로는 세상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이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을 뿌리치기만 하면 밀림 속 농장에서 카카오 열매를 따는 어린이 노예노동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참으로 답답한 마음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무거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초콜릿의 발견, 초콜릿 가공품의 역사, 초콜릿 문화, 카카오 재배를 위한 노예무역, 초콜릿 제조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초콜릿을 중심으로 역사, 문화, 경제, 정치, 사회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유익한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나쁜 초콜릿> / 캐럴 오프(지은이) / 배현(옮긴이) / 알마 / 2011-01-26 / 2만2000원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초콜릿 #카카오 #공정무역 #코트디부아르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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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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