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갑 안 채운 현행범이 피해자 살해... 국가 80% 책임

대구지법 "치안센터에서 수적 우세에도 1·2차 가해 막지 못한 과실"

등록 2011.03.15 20:37수정 2011.03.1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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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를 이용한 상해범죄를 저지르고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에 대해 경찰관들이 신체 및 소지품 수색을 하지 않고 수갑도 채우지 않는 바람에 그 피의자가 경찰서 치안센타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법원이 국가에 80%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경북 경산시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A(57, 여)씨는 2007년부터 K씨와 내연관계를 맺어 왔으나 K씨로부터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의심을 받아 다투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 2009년 5월 둘은 함께 술을 마시다 심하게 다투게 됐는데, K씨는 흉기로 위협하는 과정에서 A씨의 왼팔에 2cm 정도의 출혈상을 입혔고, 이에 A씨가 자신의 유흥주점으로 도망쳤다.

 

이에 K씨가 흉기를 들고 쫓아갔고, A씨의 부탁을 받은 직원들이 K씨가 유흥주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하자 K씨가 흉기를 휘둘러 Y씨의 왼쪽 손가락 동맥이 절단되는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K씨로부터 흉기를 압수했으나, 당시 상해범행의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K씨를 체포하지 않았고, 신체수색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있는 병원에 도착해 Y씨의 상해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경찰관들은 K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K씨가 자신들의 요구에 잘 따른다는 이유로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지구대 치안센터로 데려와 K씨를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K씨가 자신도 피해자이니 A씨, Y씨 등을 불러서 함께 조사해주지 않으면 나가겠다며 범행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K씨가 특별히 난동을 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갑을 채우지 않았고 소지품 수색도 하지 않았다.

 

상해사건 참고인으로 치안센터에 출석한 A씨는 K씨와 불과 3m 거리에 있게 됐는데, K씨는 A씨가 자신의 대화 요구를 무시하고 경찰을 향해 "저런 XX 말을 듣지도 말고 집어넣어라"라고 험담 및 욕설을 하자, 자신의 가방에서 20cm 정도의 흉기를 꺼내 A씨의 왼쪽 겨드랑이 부위를 1회 찔렀다.

 

이에 놀란 경찰관들은 가스총을 발사했으나, K씨가 오히려 경찰관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경상을 입는 등 제압에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K씨는 치안센터 구석에 웅크린 채 신음하고 있는 A씨의 왼쪽 가슴을 다시 찔렀다.

 

2차 가해행위가 벌어지자 경찰은 K씨의 허벅지에 실탄을 쏴 제압한 후 A씨를 병원으로 후송시켰으나, A씨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후 A씨의 남편 등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한편, 이 사건으로 경찰관 3명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위험한 흉기를 사용한 폭력 피의자에 대해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수갑을 채우지 않았고, 신체수색이나 소지품 검사 등을 하지 않았으며, 피의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참고인에 대해 피의자가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와 참고인을 분리시키거나 행동을 계속 감시하지 않는 등 피의자 관리를 태만히 했다"는 사유로 감봉 1개월의 징계가 확정됐다.

 

대구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강동명 부장판사)는 최근 망인 A씨의 남편과 자녀 등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총 8795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들은 흉기를 사용해 강력범행인 상해범행을 저지른 K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수갑을 채우지 않았고, 조사과정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서 치안센터 밖으로 나가려는 등 돌발행동을 했음에도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1차 가해행위 후 K씨를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했고 결국 경찰관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히 2차 가해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한 과실이 인정돼 유족들이 입은 물질적·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망인은 K씨로부터 상해를 입는 등 평소 폭력성을 잘 알고 있었고, 사건 당일에도 술을 마셔 흥분한 상태에서 상해범행을 저지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경찰관들의 감시도 제대로 받지 않고 수갑을 채워지지 않은 채 불과 3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상황에서 K씨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계속 험담해 자극했다"며 "이런 망인의 부주의가 사고 발생에 어느 정도 원인제공을 했다고 보이므로, 피고의 책임비율을 80%로 제한함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1.03.15 20:37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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