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그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리뷰] 유광수의 <왕의 군대>

등록 2011.03.22 09:54수정 2011.03.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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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군대> 겉표지 ⓒ 휴먼앤북스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젊은 지식인들이 주축이 된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이다.

이 정변을 통해서 급진개화파는 청나라에 의지하며 권력을 유지하던 민씨정권을 몰아내고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창덕궁으로 진입한 청나라 군대에게 패하면서 개화파의 정권은 3일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김옥균과 개화파의 핵심멤버들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조선에 남아있던 개화파 인물들은 모두 색출돼서 사형당했다.

그야말로 '삼일천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건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다고 한다. 하긴 3일 동안 고종과 명성왕후가 개화파의 감시아래 있었고 민씨정권의 실세들이 상당수 죽임을 당했으니 국정도 마비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그려내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그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광수는 자신의 역사소설 <왕의 군대>를 통해서 그 사라진 3일을 복원하고 있다. 작품에는 고종과 명성왕후, 김옥균, 박영효 등 많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러 차례 일본에 다녀온 김옥균은 일본의 힘을 빌어서 왕정을 끝내려 하고 반면에 명성왕후는 개화파의 젊은이들을 멀리한다.

권력을 잃고 운현궁에 틀어박힌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정권의 전면에 나서지만 청나라 군대에 납치되서 중국의 천진에 머무르게 된다. 고종은 개화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실존인물들과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만 나온다면 별로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가상인물 그것도 잔인한 연쇄살인범을 작품에 등장시키고 있다. 작품의 시작은 1876년이다. 거듭된 흉년으로 고향을 버리고 유랑하는 백성들이 많아졌고, 탐관오리의 횡포로 화적이 된 사람들도 있다.

청나라의 공물요구가 더욱 거세졌고 서양 귀신들이 나타나서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퍼지던 시절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온갖 방법으로 재물을 쌓아올리지만, 관리에게 뜯기고 아전에게 치이는 백성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흑표'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난다. 검은 복면에 검은 복장을 하고 바람처럼 빠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흑표는 이조참판, 예천군수, 호조참의 같은 벼슬아치들을 노려서 연속으로 살인을 한다. 흑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술의 고수라는 것은 분명하다. 희생자들은 모두 저항한 흔적도 없이 한칼에 깨끗하게 목숨을 잃었다.

조정의 관료들은 이 흑표를 잡기 위해서 훈련도감의 종사관 송치현을 불러들인다. 송치현은 조선팔도 전체에서 검술로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만큼 뛰어난 검객이다. 단순하게 검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그는 불의를 응징하고 약자를 도와 조선에 바른 정도를 세우기 위해서 검을 든 인물이다. 흑표와 송치현, 희대의 검객 두 명은 이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팩션(Fact+Fiction)

흑표가 벌이는 연쇄살인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작가가 보여주는 19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도 흥미롭다. 양반의 자제들로 구성된 신식군대 별기군과 구식군인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충돌이 일어난다. 구식군인들에게 지급될 급료는 열세 달이나 미루어졌고, 이후에 지급된 쌀에는 모래와 겨가 반 이상 섞여있다.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1882년의 임오군란이 터지게 된다. 작가는 임오군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역시 갑신정변이다. 작품의 절반가량을 갑신정변의 3일에 할애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김옥균을 포함한 개화파의 젊은이들은 희망에 부풀고 불안감에 떨고 때로는 갈등에 빠진다. 거사를 단행했지만 이를 유지할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개화파의 인물들은 자신을 구해줄 '왕의 군대'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 안에서 송치현에게 쫓기던 흑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갑신정변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위로부터의 쿠데타'였다. 갑신정변의 한계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그 정변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많은 실존인물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당시를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쓸데없는 가정일지 모르지만,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까. <왕의 군대>를 읽다보면 더욱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왕의 군대> 유광수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덧붙이는 글 <왕의 군대> 유광수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왕의 군대 #갑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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