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팟, 과연 '국영수'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창의적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 에듀팟, 입시에 밀리지 않았으면

등록 2011.03.24 10:29수정 2011.03.24 10:29
0
원고료로 응원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다른 곳과는 달리 학교는 3월이 한 해의 시작인 탓에 한 달이 그야말로 쏜살 같이 지나간다. 시간표를 조정하고, 한 해 동안 담당할 행정 업무 인계를 받으며, 교재 연구와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정작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

 

특히 올해는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 받는 고등학교 1학년과 2, 3학년이 다른 체제로 운영되는 탓에 새 학년의 시작이 학교마다 어수선한 실정이다. 교육과정만 바뀐 게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도 통째로 바뀌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교무업무시스템, 에듀파인(Edufine), 업무관리시스템 등이 업무 포털 로그인 방식으로 통합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아울러, 학교생활 중 교과외 활동 전반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가 누적, 기록하는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운영시스템(에듀팟)이 올해 1학년부터 전면 시행되면서 새로운 시스템 도입과 변화를 낯설어하는 교사들의 부담감은 상당한 상태다. 그러나 어쨌든 새 시스템이 정착되면 학교 교육의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예컨대, 에듀팟의 경우 학생 스스로가 만들고 꾸미는 '앨범'이자 '블로그'로, 교사가 학생을 평가해 기록하는 학교생활기록부와 더불어 대학입시의 전형 자료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생활기록부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학생 개인의 잠재력과 적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스'인 셈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수를 대폭 늘려놓았다. 학교마다 세부 영역별로 배정된 시수가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학급 자치활동과 행사 등의 자율 활동 영역과 동아리 활동 영역이 큰 폭으로 늘었다. 입시 위주의 학사운영을 탈피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과외 활동 경험을 제공하자는 취지다.

 

에듀팟은 과연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a

ⓒ 에듀팟

ⓒ 에듀팟

'제대로 된 학교'란 모름지기 도서관이 활성화되고 아이들 스스로 꾸려가는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학교라 했으니, 에듀팟의 전면 시행은 제도적으로 '제대로 된 학교' 만들기의 첫발은 뗀 셈이다. 듣자니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에듀팟을 전문적으로 관리해 주는 사교육이 등장했다지만, 이를 걸러낼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보완 장치만 마련된다면 큰 부작용 없이 학교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가 시도하는 다양한 공교육 개선방안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정부를 믿고 순순히 따랐다가 혼자 바보 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자조적으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를 가져와봐야 상황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할 지경이 됐다.

 

컴퓨터를 켰다하면 종일 게임만 하는 판인데,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착실하게 수능 준비를 해온 아이들에게 에듀팟이 괜한 바람만 불어넣을 것이라며 우려하는 교사들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학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이, 에듀팟에 접속해 자판 두드릴 시간 있으면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게 낫다고 여기는 아이들조차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마다 학급 자치활동은 자습 시간으로 활용되기 일쑤고, 이름과 종류는 많아도 그저 무늬만 동아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고심 끝에 에듀팟이라는 '멍석'을 깔아놓았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선뜻 그 위로 올라가 춤추려는 사람은 없다고나 할까.

 

그나마 개설된 동아리도 대개 대학 입시에 보탬이 될 만한 것들 일색이다. 논술, 시사토론, 미적분, 한국사능력인증시험준비, 영어회화, 토익, 텝스 동아리 등 방과 후 수업에 이은, 이른바 '제3의 교과 수업'이라 부를 만하다. 한때 동아리의 대명사격이었던 기존의 풍물패나 연극반, 록밴드, 댄스부 등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입시 준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밀려나 근근이 명맥만 유지되고 있을 따름이다.

 

언제부턴가 동아리 활동은 기껏해야 수능 공부에 찌든 심신을 달래기 위한 순간의 여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매일 연속되는 빠듯한 수업 일정에서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과 모여 수다를 떠는 '쉬는 시간' 정도로 여길 뿐,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아 소질을 계발한다는 동아리 활동 본연의 취지는 입시에 스러진 지 이미 오래다.

 

그나마 고3 때는 그런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다 그럴 테지만, 동아리 활동은 오직 고2까지, 오직 2년만 학생들에게 보장될 뿐이다. 수능에 '올인'할 수 있도록 학교가 강제하는 것이긴 하지만, 기실 학생들 스스로가 으레 당연하게 여기며 심지어 2학년 2학기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동아리 활동 열심히 해 대학 갈 게 아닌데, 괜한 헛심 쓸 필요 없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다. 교사든 학생이든, 그저 남들 다 가는 길을 따라 가며, 남들 하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덜 위험하다고 여긴다. 최고는 아닐지언정 최선의 선택은 바로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 재능을 찾아보겠다며 예체능 관련 학원을 이곳저곳 기웃거려보고, 때로는 독서 습관을 들인답시고 부모와 함께 도서관을 들락거리곤 했지만, 그들 중 십중팔구는 결국엔 남들 다 하는 대로 따라 간다. 그들에게 안전한 선택이란 역시 수능 준비고, 곧, 돌고 돌아 '국영수' 문제 풀이로 귀결된다.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해 하루 열너댓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해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창의적 체험활동의 전면 시행이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교과와 수능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입시 구조를 변화시켜 공교육의 정상화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무작정 대세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에게 무한 신뢰를 받을 수 없다면 또 하나의 실패 사례로 남을 게 뻔하다.

 

벌써부터 창의적 체험활동 시수만 늘려놓으면 뭐하냐는 조소가 곳곳에서 들린다. 교과와 수능 중심의 입시 구조가 완고한 상황에서 어차피 형식적으로 운영될 텐데, 학생이나 교사나 쓸데없는 일거리만 늘어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과정 편성에 있어서 20%를 학교 재량에 맡겼더니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 몫만큼 국영수의 비중을 늘렸다는데, 창의적 체험활동이라고 멀쩡하겠냐는 것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우리 교육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어떤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결국엔 대학 입시를 위한 도구로 변질돼버린다는 점이다. 곧, 대학이 변하지 않고서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아무리 뜯어고친다한들 지금과 달라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입시에 도움되는 것만 하는 아이들, 아쉽다

 

그럼에도 지금의 아이들을 보노라면 아쉬움은 남는다. 입시 전쟁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20여 년 전 고등학교 학창시절, 그저 좋아서 틈틈이 악기를 배웠고,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바둑과 당구 같은 잡기도 즐겼으며,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길거리 농구대회에도 참가하곤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제법 많은 아이들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의 '애어른'들은 영 딴판이다. 악기도 입시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바둑이나 태권도도 공인 급수를 꼭 따야 하며, 축구대회나 하다못해 풋살대회 같은 것도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겨 입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야만 기꺼이 참가한다. 그나마 국영수 등 교과학습 대비 기회비용을 감안한 선택이니, 20여 년 전보다 훨씬 영악해졌다고나 할까.

 

학교와 학부모들은 물론 아이들 스스로조차도 고등학교 생활에서 입시 준비 외 다른 일체의 활동을 불허한다. 공부 외의 모든 걸 대학 진학 이후로 미루며 수많은 욕구를 스스로 억누르는 것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격언은 적어도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생들의 공통된 좌우명인 셈이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 합격증을 받아들게 되는 순간, 그들은 과연 수 년 동안의 짓눌림으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게 될까. 취미도, 특기도 오로지 국영수 공부인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대학의 단조로운 일상에 얼마 못 가 허탈감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는지.

 

컴퓨터를 켜고 깔끔하게 디자인된 에듀팟에 접속했다. 아직은 빈껍데기로 남아있지만, 아이들이 기록한 자료들로 차츰 채워져 갈 것이다. 솔직히 많은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 부디 대학 입시만을 위한 형식적인 도구로 변질돼 뭇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단지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다.

#창의적 체험활동 #에듀팟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