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 부럽지 않은 식탁, 한 방에 갈라

핵발전소 위험성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은 보세요

등록 2011.04.17 10:32수정 2011.04.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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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파,머위,시금치 등의 겨울을 낸 채소를 비롯해 바다에서 갓 건저 온 돌미역, 톳 등으로 풍성하게 차린 식탁. 거기다가 직접 담군 된장과 며칠 액젓까지 올해 시작할 2천평의 쌀농사까지 더 하면 땅과 바다를 통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 송성영


우리밭에서 냉이는 지슴(우리 마을에서는 풀을 '지슴'이라 합니다)이 아닙니다. 냉이와 더불어 마늘, 양파, 시금치, 상추가 함께 자랍니다. 오늘은 마늘 밭 사이사이에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냉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상추씨를 뿌렸습니다.


우리 밭에는 지천에 냉이 꽃이 피어 있습니다. 살짝 건들기만 해도 꽃잎이 풀풀 날리고 있습니다. 냉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입니다. 윗 지방에서 한창 냉이를 뜯느니 어쩌니 할 때 이미 꽃대를 올렸습니다.

"집 주변이 온통 풀 천지구먼...놀고 있는 땅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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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으로 이사온 첫해인 지난 봄, 밭을 온통 냉이꽃으로 수 놓았다. ⓒ 송성영


전남 고흥으로 이사 온 첫 해, 우리 집 주변은 그야말로 사방천지가 냉이 밭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혀를 찼습니다.

"아이구 저 풀 좀 어떻게 해봐"
"냅둬, 보기 좋잖아? 안개꽃처럼 화사하니…."
"보기 좋으면 뭘 해. 집 주변이 온통 풀 천지구먼. 놀고 있는 땅이 아깝다, 땅이 아까워."
"땅도 좀 쉬어야지"
"게을러서 그렇지 뭐."
"게으르다고? 꽃이 지면 씨가 지천에 떨어질 것이고, 두고 보라고 그 게으름 덕분에 겨우 내내 냉이를 뜯어 먹을 수 있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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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양파 밭에 올 겨울 단 한차례 눈이 쌓였는데 여전히 눈 속에 여전히 냉이가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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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도 푸르렀던 우리밭. 마늘 밭에 사이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냉이. ⓒ 송성영


게으름, 아니 느려터진 천성으로 말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 판단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가을, 냉이가 지천이던 밭을 갈아 마늘과 양파를 심었는데 비닐을 깔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부러 듬성듬성 심었습니다. 그러자 마늘 사이사이에서 냉이가 수없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내 냉이 국을 끓여 먹고 무쳐 먹고 몇몇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심을 썼습니다. 아무리 캐도 냉이는 수 없이 솟아 올라왔습니다. 호미를 들고 마늘 밭과 양파 밭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잠깐만 캐도 한 소쿠리였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냉이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향이 진했습니다.

저 많은 냉이들을 다 어떻게 할까? 고민 하다가 아내와 볕 좋은 곳에 쪼그려 앉아 냉이를 잘 다듬어 평소 신세를 졌던 주변 사람들에게 한 소쿠리씩 덥석덥석 택배로 부쳤습니다. 한 겨울에 냉이를 받아든 사람들은 무척이나 고마워했습니다. 우리 부부 또한 고맙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그마한 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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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자 마늘에 무당 벌레들이 날아들었다. 마늘 주변의 푸르게 올라온 냉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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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국에 냉이 무침를 해먹고 몇몇 마을 사람들도 캐가고 평소 신세를 졌던 주변 사람들에게 택배로 부쳐주었다. ⓒ 송성영


"냉이 뜯어다가 팔았으면 돈 좀 됐을 것이오."

풀 안 뽑고 뭐하고 있냐며 지청구를 주었던 사람이 올해는 유난히 냉이 값이 비쌌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사실 냉이를 뜯어 오일 장에 나갈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냉이 한 소쿠리 들고 나와 장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생각해 그만두었습니다. 나까지 나서면 그만큼 할머니들의 용돈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을 이겨낸 새 순들로 차리는 풍성한 식탁

밭에는 냉이와 마늘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 가을, 밭 한구석에 씨 뿌려 놓았던 상추도 잘 자라 여기가 남녘 땅이로구나 실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겨울 적어도 12월 초까지, 한파가 몰아치기 전까지 푸른 상추를 뜯어 먹을 수 있었고 3월이 되자 다시 새 순이 올라와 지금까지 풍성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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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견뎌낸 싱싱한 상추. 한파가 몰아 칠때도 잘 버텨 냈다. ⓒ 송성영


시금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해풍 맞은 시금치는 그 맛이 더 좋다고들 하는데 겨울을 견딘 시금치는 달콤했습니다. 시금치는 벌써 꽃대가 올라와 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노지에서 겨울을 난 봄 동 배추, 이 녀석들은 충남 공주에서 6대째 씨를 받아 재배한 것들입니다.

어디 이것들뿐이겠습니까? 매실 꽃이 필 무렵 찾아 든 반가운 나물, 머위도 있습니다. 얼마전 30그루 가까운 감귤 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그곳은 본래 머위 밭입니다. 또 지난 가을부터 노지에서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양배추도 있습니다.

이빨이 시원찮아 육식을 멀리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늘과 땅은 고기대신 풍성한 채소 식탁을 차려 주었던 것입니다. 아내의 맛깔스런 손길로 식탁을 채려놓고 보니 공주에서부터 담궈 온 된장에 고흥으로 이사 와 주변 아줌마의 도움으로 담근 멸치 액젓까지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요즘은 바다에 나가 채취한 돌미역에 톳까지 식탁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나마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상금으로 겨우 이빨 치료를 하고 나자 통장에 찍힌 전 재산이 20여만 원 정도에 불과했지만 제왕 부럽지 않은 자연산으로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일본 원전 사고로 생각해보는 우리 핵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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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식탁에 머위나물도 한몫을 했다. ⓒ 송성영


하지만 하늘과 땅이 주신 이 풍성한 식탁을 위협하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핵 방사성 물질이 일본에서부터 바람과 파도를 타고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주는 땅과 바다를 위협하고 있는데 사람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 안전하다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먹을거리가 안전하겠구먼."

땅이 위협 받고 있는데 비닐하우스 안으로 꽁꽁 숨어들면 뭐가 달라질까요. 이렇듯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안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회피해 가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체르노빌이나 일본과 같은 대형 사고가 없었기에 여전히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수없이 많은 핵발전소 고장 사고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건의 사고가 없다'라고 혹세무민하고 있는 핵발전소 관계자들의 말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도시 근교에서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땅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핵발전소에 대한 심각성을 그 누구보다 인식해야 합니다, 체르노빌이나 일본 핵발전소의 대형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재앙은 바로 핵발전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핵발전소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수없이 강조해서 말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합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라는 표정들입니다. 큰 재앙이 몰아치고 있는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 사례를 눈으로 빤히 지켜보고 있음에도 바다 건너 불난 일본 구경하듯이 여전히 그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핵 만능주의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건설을 가열차게 추진해 왔고 그 사실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나 또한 전남 고흥에 핵발전소 유치 신청 지역으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그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막상 현실로 부닥치고서야 핵이, 핵발전소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핵발전소 유치 반대 운동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좀 더 많이 가지겠다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 덩어리는 바로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에너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욕망을 부채질 하는 핵에너지는 어떤 식으로든 큰 화를 불러 오기 마련입니다. 나 같이 우둔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차라리 대한민국 전체에 핵발전소 유치 신청지역으로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핵발전소에 대한 그 심각성을 인식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우리에게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내주는 하늘과 땅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고 우리 후손들에게 진정으로 물려 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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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양파 대파 밭 사이사이에 자란 냉이꽃대를 땅으로 돌려 놓고 그 틈새에 초 여름에 먹을 상추 씨를 뿌렸다. ⓒ 송성영


오늘은 한나절 내내 마늘 밭 사이사이에 무성하게 꽃대가 올라온 냉이를 뽑아 땅으로 돌려주었습니다. 문득 흰 민들레 한 포기와 마주쳤습니다. 충남 공주에서 이사 올 때 홀씨를 채취해 밭 곳곳에 뿌려 놓았는데 그 후손 중에 한 녀석이 용케도 살아남아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 한 포기의 민들레에 불과했지만 힘겨운 밭 일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온갖 물질 문명의 홍수 속에서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것, 새삼스럽게 그것 자체로 희망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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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집 주변에 자랐던 홀씨를 받아 밭 곳곳에 뿌렸는데 그 중 단 한포기의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 송성영


#땅 #냉이밭 #풍성한 식탁 #핵발전소 #민들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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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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